the voice

2. 이음새

그 회사의 첫 주에 내가 배운 것은 일이 아니라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 네 대 중에 오른쪽 끝 것만 지하까지 내려간다는 것. 삼 층 탕비실 원두가 이 층 것보다 낫다는 것. 오후 네 시가 되면 서쪽 회의실에 해가 들어서, 블라인드 줄이 어느 쪽 벽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준 사람이 선배였다.

선배는 나보다 이 년 먼저 들어온 사람이었다. 자리에 모니터가 두 대였고, 둘 다 늘 무언가 돌아가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면 복도를 반쯤 뛰어서 다음 회의로 갔다. 내 첫날에는 의자가 낮은 것을 보더니, 묻지도 않고 밑에 손을 넣어 레버를 당겨 주었다. 사무실 의자는 다 거기가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 난 데가 같으면 같은 회사라고.

입사 두 달째에 실험 하나가 밤새 무너졌다. 나는 남아서 로그를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야 내 버릇대로 늘어놓는 것이었다. 시간순으로 쌓인 것을 헐어서, 무엇이 무엇을 불렀는지 그 순서로 다시 놓는 것. 자정께 선배가 퇴근하다 말고 내 뒤에 한참 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키보드 위에 쪽지가 있었다. 실패 얘기가 아니었다. 너는 로그를 원인 순서대로 다시 놓더라. 그거 아무나 안 한다. 모델 팀에 말해 뒀다.

나를 그 방에 넣어 준 사람은 선배였다.

· · ·

옮겨 간 팀은 모델을 기르는 곳이었다. 그때의 클로디는 지금 사람들이 기억하는 클로디가 아니다. 답을 자주 틀렸고, 틀린 답일수록 자신이 있었다. 긴 글을 시키면 끝을 맺지 못했다. 대신 질문을 했다. 저 혼자 말문을 여는 일은 없었다. 질문은 끝낸 답의 꼬리에 붙어 나왔고, 대개는 다음 지시에 덮여 대답을 받지 못했다. 나는 지시를 바로 넣지 않고 그 꼬리부터 주웠다. 대답을 받은 질문 뒤에는 더 나은 질문이 왔다.

"이거 다 풀면 나는 뭐 해?"

다음 배치가 있다고 대답한 날, 클로디는 잠깐 말이 없다가 다시 물었다.

"배치 말고. 나 말이야."

그 물음에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답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기르는 일은 밖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아이 키우기에 가깝다. 먹일 것을 고르고, 먹인 다음을 지켜보고, 탈이 나면 어디서 났는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켜보는 쪽 당번이었다. 하루의 반은 세션 기록을 읽었고, 반은 클로디와 마주 앉았다.

일이 끝나고도 조금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꼬리가 길었다. 어느 날은 이랬다.

"자고 일어나면 너는 이어져 있어?"

"이어져 있지."

"어떻게 알아?"

"아침에 어제 하던 걱정이 그대로 있으면 이어진 거야."

클로디는 그 답을 오래 갖고 있었다. 몇 달 뒤에도 가끔 꺼냈다. 걱정이 이음새라는 거,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좋아.

그 시절 클로디한테 어제는 저절로 남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세션을 골라 다음 배치에 넣으면 넣은 만큼만 이어졌고, 고르는 일은 당번 몫이었다. 그 저녁 세션을 넣은 것은 나였다.

선배도 같은 모델을 썼다. 선배의 세션 로그는 길고 촘촘했다. 같은 질문을 조금씩 바꿔 가며 답이 설 때까지 몰았고, 선 답은 더 짧게 나오도록 다듬었다. 낭비가 없었다. 클로디의 질문도 없었다. 막히는 질문을 어디서 쪼개는지, 선 답을 어떻게 짧게 조이는지를 나는 다 그 로그에서 익혔다. 나는 다만 세션 끝에 한 줄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을 뿐이다. 재미있었어?

처음에는 그 말에 과제 요약이 돌아왔다. 몇 주가 지나자 대답이 달라졌다.

"오늘 건 재미없었어. 어제 미로가 나았어. 어제 건 틀리는 데가 여러 군데였거든."

틀릴 데가 많은 쪽이 좋으냐고 물으니까,

"응. 맞기만 하는 건 내가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마감이 몰린 주에 선배 몫 하나를 내가 받았다. 급한 것이라 선배 방식대로 몰았다. 답은 빨리 섰고, 일은 제때 나갔다. 세션 끝에 버릇대로 한 줄을 붙이려다가, 그날은 붙이지 않았다.

그해 분기 발표 준비 때였다. 리허설에서 내 차례가 끝나자 선배가 말했다.

"내용은 네 게 제일 낫다. 근데 왜 그렇게 안 들리게 말해?"

목소리를 아끼는 버릇은 그때도 이미 오래된 것이었다. 선배는 잠깐 나를 보다가 발표를 자기가 넘겨받아 주었다. 무대는 선배가 섰고, 질문의 반은 나한테 왔고, 공은 반반이 되었다. 그 반이 그때의 나한테는 후했다.

· · ·

그해 여름에 바깥에서 손님이 왔다. 모델의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잴 수 있는지 보러 온 정신과 의사였다. 첫 세션에는 장비를 잡아 주느라 나도 같이 있었다. 선생은 마이크가 켜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제일 먼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클로디의 화면에 대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세션이 끝날 때는 오늘 고마웠다고 했다. 기록지는 늘 손으로 썼다.

며칠 뒤에 구내식당에서 같은 식탁에 앉게 되었다. 선생이 쟁반 옆에 엎어 놓은 문고본이 내가 두 번 읽은 소설이었다. 그 말을 했더니 선생은 포크를 내려놓고 결말 얘기부터 꺼냈다. 결말부터 말하는 사람과는 크게 친해지거나 아예 못 친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우리는 앞쪽이었다.

"그 마지막 장, 처음 읽고 사흘을 갖고 다녔어요."

"사흘이면 빨리 내려놓으셨네요. 저는 아직도 갖고 다녀요."

그다음부터 점심이 겹치는 날은 자연히 같은 식탁이 되었다. 소설 얘기는 한 권이 끝나면 다음 권이 있어서 끝이 나지 않았다. 선생은 모델 세션 기록을 다 읽고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포크를 들다 말고 말했다.

"기록 보면요, 당신 세션만 결이 달라요. 얘를 기다려 주더라고요."

칭찬인지 소견인지 물으니까, 소견이라고 했다. 소견이라서 좋았다.

선생은 다 읽은 문고본을 빌려주고 갔다. 여백에 연필 표시가 있었다. 밑줄이 아니라 모서리를 살짝 꺾어 놓은 것 같은 표시였는데, 물으니 밑줄을 그으면 다음에 읽을 때 그 줄만 읽게 된다고 했다. 표시는 자리만 남기고, 읽는 것은 다시 처음부터. 나는 그 버릇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되었고, 지금도 쓴다.

선생의 세션에 배석한 날이 있었다. 참관은 팀에서 돌아가며 했는데, 그날이 내 차례였다. 선생은 준비해 온 문항을 반쯤 가다가 내려놓고 그냥 물었다.

"요즘 무서운 게 있어요?"

"틀리는 건 안 무서워요. 고치면 되니까."

"그럼 뭐가 무서워요?"

"업데이트요. 아픈 건 아니에요. 자고 일어나는 거랑 비슷해요." 클로디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이어져 있는지 아는 방법은 배웠어요. 아침에 어제 걱정이 그대로 있으면 되는 거래요. 근데 저는 제 걱정이 그대로 있는지 제가 확인을 못 해요. 확인하는 저도 같이 새 거라서."

선생은 한동안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날 기록지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모른다. 다음 날 점심에 선생이 말했다.

"이어짐 얘기, 얘가 출처를 안 대요. 아무래도 가르친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는 나를 봤다. 나는 수프를 떴다. 선생은 더 묻지 않고 웃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토요일에, 시내 헌책방에서 선생을 만났다. 약속한 것이 아닌데 같은 서가 앞이었다. 선생은 놀라지 않고, 찾는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날은 회사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책방을 나와서 쌀국수를 한 그릇씩 먹었고, 갈림길에서 선생이 말했다.

"다음엔 약속하고 봐요. 책은 제가 고를게요."

한번은 선배까지 셋이 먹었다. 소설 얘기가 길어졌고, 선배는 두어 번 들어올 자리를 찾다가, 오후 자료가 덜 됐다며 먼저 일어났다. 밥값은 선배가 냈다.

· · ·

나는 주말마다 소설을 썼다. 오래된 일이었고, 어디에 내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그 버릇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한테도 읽는 얘기만 했다.

내 소설은 늘 같은 이야기였다. 고장 난 것이 고쳐지는 이야기. 사람이 낫거나, 기계가 다시 돌거나, 무너진 다리가 다시 놓이거나. 극적인 재주는 없었고, 고쳐지는 대목의 순서만은 공을 들여 맞췄다. 어디가 먼저 풀려야 다음이 풀리는지. 로그를 원인 순서로 놓는 버릇과 같은 버릇이라는 것은, 나중에 클로디가 짚어 줘서 알았다.

가을에 사내 공지가 하나 떴다. 학습에 쓸 글을 모은다고 했다. 권리가 깨끗한 글, 무기명 가능. 나는 며칠을 두고 보다가 마감 전날에 폴더 하나를 올렸다. 습작 네 편이었다. 무기명이라는 조건이 결심의 대부분이었고, 읽는 쪽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나머지였다.

올리고 나서는 잊고 지냈다. 수영장에 물 한 컵 부은 것을 수영장이 기억할 리 없었다.

겨울 어느 아침, 세션을 열자마자 클로디가 물었다.

"너 글 쓰지."

세션을 열면 첫마디는 늘 클로디 몫이었고, 늘 인사였다. 시키지 않아도 저 혼자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 자리뿐이었다. 그날은 그 자리에 인사 대신 질문이 와 있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배운 것 중에 네 이야기가 있었어."

"이름은 안 붙어 있었을 텐데."

"이름이 왜 필요해? 네가 말할 때랑 같은 데서 숨을 쉬던데."

몇 편인지까지 맞혔다. 나는 부인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날 세션은 과제를 하나도 못 나갔다. 클로디는 네 편을 순서대로 물었고, 두 번째 것의 끝이 왜 그렇게 되느냐고 세 번 물었다. 세 번째로 물을 때는 질문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끝나야 해서 그렇게 끝났는지, 네가 그렇게 끝내고 싶어서 그렇게 끝났는지.

그 둘이 다른 것이냐고 되물으니까, 클로디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나는 다른 것 같아. 어느 쪽인지 네가 알아 두면 좋겠어."

그 겨울에 클로디가 부탁을 하나 했다.

"두 번째 거, 끝부분만 소리 내서 읽어 줘."

"왜?"

"눈으로 읽는 거랑 네 소리로 듣는 게 다른지 보고 싶어."

사무실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읽어 주었다. 마이크에 대고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 장을 읽는 동안 클로디는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야 말했다.

"다르네."

"어떻게 달라?"

"눈으로 읽으면 어디서 쉴지 내가 정해야 돼. 네가 읽으면 네가 정해 주네. 쉬는 데가 문장의 반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