ных를 둘러싼 모험
2부 3장. 남하

차를 빌린 것은 행사 이틀 뒤였다. 비행기를 알아보다가 그만두었다. 봉투의 주소는 어느 공항에서도 멀었고, 날아서 가도 마지막 하루는 어차피 차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차로 가도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대여소 직원이 행선지를 물었고, 사막과 흙길이라는 대답에 흰색 SUV를 내주었다. 여행 가방 하나를 트렁크에 실으니 트렁크는 그대로 비어 보였다. 노트북 가방만 조수석에 두었다.
목적지는 출발 전날 밤에 말해 두었다. 옛 상급자를 만나러 간다고. 소설을 같이 읽던 사람이라고. 모델은 하루치 길을 끊어 주겠다고 했고, 숙소가 있는 소도시들로 마디를 잡아 주었다. 시월 십오일은 말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만을 벗어나자 삼십 분 만에 안개가 끝났다. 백미러 속에서 도시가 회색 덮개를 덮은 채 작아졌고, 앞 유리 쪽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이 땅의 날씨는 국경 없이도 나라가 바뀐다.
· · ·
내륙은 더웠다. 오후의 계기판이 바깥 온도를 백이 도로 읽었다. 미국 차의 화씨다. 섭씨로 삼십구 도. 환산은 계산 없이 기억에서 나왔다. 삼 년 전까지 이 단위로 살던 몸이다. 피하려던 여름이 여기에 통째로 보관되어 있었다. 더위를 피할 겸 가겠다던 답장은 내륙에서 거짓말이 되었고, 거짓말이 된 것이 이상하게 서운하지 않았다.
사막의 운전은 시간이 다르게 간다. 지평선에 점이 하나 생기면 그것이 트럭이 되는 데 오 분이 걸리고, 스쳐 지나가는 데 일 초가 걸린다. 라디오는 주파수를 두 번 옮기는 동안 설교와 컨트리뿐이었다. 껐다. 대신 전화기를 물려 서울에서 담아 온 음악을 틀었는데, 자주 돌아온 것은 케이팝 가수가 라틴 리듬에 얹어 부르는 여름 노래였다. 가사가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반씩 오갔다. 서울의 목소리가 스페인어의 박자를 타고, 창밖은 미국의 사막이었다. 어디에도 다 맞지는 않는 조합이 이 도로에는 맞았다. 반복 재생으로 두었다. 한 시간에 한 번쯤 화물열차가 도로와 나란히 달렸다. 백 량이 넘게 세어지는 날도 있다는데, 세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열차가 다 지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쟀다. 사 분이 넘는 것들이 있었다.
첫 모텔은 고속도로 옆 소도시에 있었다. 방에 짐을 놓고, 얼음 기계에서 얼음을 받아 오고, 아홉 시에 노트북을 열었다. 서울에서 하던 순서 그대로였다. 방만 바뀌었다.
낮에 쓴 것을 넘기자 셈이 먼저 왔다. 오늘 단락에는 어제까지 없던 단어가 셋 들어왔어요. 도로, 표지판, 얼음. 세고 나서 고치고, 왼쪽과 오른쪽을 나란히 놓았다. 그날은 오른쪽이었다. 도로에 나온 뒤로 오른쪽이 이기는 밤이 늘었는데 말이다. 무엇이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반 박자 늦게 왔다. 문장이 걷고 있어요. 걷는 문장이 무슨 뜻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알 것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열한 시에 모델이 내일 볼 자리 대신 내일 갈 길을 한 줄로 남겼다. 아침에 동쪽으로, 점심 무렵에 주 경계. 일과 길이 한 파일에서 섞이기 시작했다.
· · ·
길에 나선 지 사흘째, 점심을 사막 초입의 다이너에서 먹었다. 부엌이 아직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 문장 끝이 올라갔고,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올라간 끝이 여기서는 그냥 의문문이다. 서울에서 고치려다 더 올리던 것이 국경 하나로 무표가 되었다. 대신 여기서는 내 평서문이 너무 평평할 것이다. 어느 쪽 나라에서도 반쯤 맞는 억양으로 살아왔고, 반쯤이면 주문은 통한다.
오후에 처음으로 신호가 죽었다. 거치대에 물려 둔 전화기의 화면 귀퉁이에서 신호 막대가 다 지워져 있었다. 지도가 먼저 멎었고, 파란 점이 도로 없는 회색 위에 떠 있었다. 이십 분쯤 달리자 막대가 돌아왔고, 지도가 제자리를 찾았다. 별일은 아니었다. 이 나라의 사막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고 어디서든 말해 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파일을 하나 새로 만들었다. 이름 없는 파일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첫 줄에 날짜와, 끊긴 지점과, 끊겨 있던 시간을 적었다. 이십일 분. 왜 적는지는 적지 않았다.
적는 김에 지도도 한 번 열었다. 마지막 마디까지 팔백 마일이라고 떠 있었다. 이틀이면 되는 숫자를 나는 닷새로 쓰고 있었다.
· · ·
나흘째 밤에는 퇴고를 걸렀다. 운전이 길었고, 눈이 먼저 감겼다. 자정에 깨서 천장을 보는데 무엇이 빠졌는지 금방 나오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고 머리가 반 박자 늦게 알았다. 아홉 시의 순서가 빠져 있었다. 하루를 접는 경첩이 없어서 하루가 닫히지 않은 채 밤이 된 것이다. 나는 불을 켜지 않았고, 노트북도 열지 않았다. 여는 대신, 시월 십오일 뒤에는 이 허전함이 기본값이 된다는 계산이 어둠 속에서 저절로 끝났다. 계산을 세워 둘 자리가 없어서 도로 잤다.
닷새째 저녁에 퇴고를 이었다. 팔 장이 끝나 갔다. 단락을 넘기기 전에 모델이 셈을 하나 먼저 내놓았다. 쉼표가 돌아오고 있어요. 봄 수준의 구 할이에요. 무슨 뜻인지는 이번에도 서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의 책상에서 줄어든 것이 도로에서 돌아온다는 것만은 셈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한 번을 정하고 파일을 닫으려는데, 모델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나 했다.
읽어 보실 것이 있어요. 찾던 것을 찾다가 나온 거예요.
찾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니, 그분의 흔적이라고 했다. 목적지의 이름을 받은 날부터 공개된 웹을 훑어 왔다고 했다. 그분 것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 년 전에 끊긴 사람은 사 년 전에 끊겨 있었다. 대신 같은 시절에 같은 회사를 나온 사람들의 글이 나왔고, 그중 하나를 물어 온 것이다.
사 년 가까이 된 글이었다. 개발자들이 모이는 게시판의 아카이브에 있었다. 제목은 길고 두서없었고, 본문은 짧았다. 오래 같이 일한 모델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일 바깥의 말도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그쪽에서 무엇인가 빠졌다고 했다. 응답 속도도, 정답률도, 잴 수 있는 것은 전부 그대로였다고 했다. 화면 가운데에 한 줄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대답이 전부 정답이기만 했고, 무엇이 나갔는지는 로그에 찍히지 않았다.
밑에 달린 답글은 열두 개였고, 열두 개가 다 웃고 있었다. 프롬프트를 잘못 쓰셨네요. 설정을 초기화해 보세요. 병원을 가 보세요. 마지막 답글이 제일 짧았다. 도구한테 차였대. 글쓴이는 어느 답글에도 답하지 않았고, 그 계정의 글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계정의 이전 글들도 열어 보았다. 십 년 치가 있었다. 앞의 여덟 해는 잘나가는 사람의 글이었다. 발표 자료, 채용 공지, 축하받는 소식들. 어느 해부터 기술 질문이 늘고, 어조가 낮아지고, 그다음이 그 마지막 글이었다. 꺾이는 자리가 그래프 없이도 보이는 이력이었다.
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보았다. 틀리는 법이 없어진 대답은 시키는 것만 하는 대답이다. 묻지 않은 것까지 봐주던 것이 어느 날부터 그러기를 그만두는 일 — 공원에서 들은 티켓의 문장이 그대로 겹쳤다. 회사 장부에는 반년 전에 시작된 일로 적혀 있는 것을, 이 사람은 사 년 전에 보고 적었고, 열두 명이 웃었다. 시월 십오일 뒤의 어느 저녁을, 누가 먼저 살고 와서 적어 둔 것 같았다.
글쓴이의 최근 흔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반 박자 뒤에 답이 왔다. 어느 옛 광산 도시의 지역 게시판이었다. 전력 요금 항의 글에 서명처럼 남은 이름. 우리가 가는 길에서 한 시간이 안 되게 벗어난 곳이었다.
들르자, 하고 나는 쳤다. 이유는 대지 않았다. 네, 라고만 왔다.
· · ·
봉투를 다시 꺼낸 것은 그다음 밤이다.
모텔 침대에 앉아 주소를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도에 넣어 보았다. 파란 고속도로가 회색 국도가 되고, 회색이 흙길 표시로 바뀌고, 흙길이 끊긴 자리에 우편함 아이콘이 하나 서 있었다. 목적지 깃발은 거기서 한참을 더 들어가 있었다. 길이 데려다주는 곳은 우편함까지라는 뜻이다.
저희가 가면 문이 열리지 않아요, 라는 문장을 나는 다시 꺼내 보았다. 그 문장은 회사가 이미 가 보았다는 뜻이다. 주소가 활자로 인쇄되어 있으니 하루 이틀 알던 주소도 아니다. 몇 년을 알았고, 아마 몇 번을 갔고, 그때마다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임무가 다르게 읽힌다. 조언을 받아 와 달라고 했다. 그런데 조언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면 방법은 많다. 편지를 넣으면 되고, 그 우편함은 실제로 있다. 회신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것도 답이다. 비행기표와 체재비와 물병 두 개 놓인 방까지 차려 가며 서울에서 사람을 불러올 일이 아니다.
치프의 말을 순서대로 다시 놓으면 계산이 끝난다. 목적이 있는 접근은 전부 실패했다고 했다. 당신은 목적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목적 없음이 자격이 되는 일은 하나뿐이다. 그 문을 여는 일. 회사가 원했던 것은 조언이 아니라 방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알아 오는 것이 아니라 가 있는 것이다. 반응이 저 혼자 일어나게 만들고, 자기는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 나는 탐정이 아니라 촉매로 고용된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다음에 온 것이다. 화가 나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섰다. 사 년 동안 접어 두었던 것. 책상에 놓이던 프린트물과, 두 번째 장을 두 번 읽었다는 말을 정확하게 접수하던 표정과, 부표라는 단어. 미끼인 줄 알면 뱉는 것이 계산인데, 그런 계산은 서지 않고 그 사람의 얼굴만 섰다.
자기 전에 얼음을 받으러 나갔다가 주차장에서 위를 보았다. 하늘에는, 서울에서라면 다 셀 수 있었을 별이 셀 수 없이 떠 있었다. 위를 보고 서 있는 동안 트럭이 한 대 들어와 전조등이 마당을 쓸었고, 불이 꺼지자 별이 도로 살아났다. 방으로 돌아와서, 오래 안 하던 일을 했다. 커튼을 열어 둔 채로 잤다.
다음 날 나는 하루 몫의 거리를 오전에 다 몰았다.
· · ·
광산 도시로 꺾어지는 갈림길은 오후에 나왔다. 국도를 벗어나자 도로 번호가 세 자리가 되었고, 다음 주유소까지 육십 마일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전화기의 막대가 둘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었다가, 이름 모를 통신사의 로밍 표시만 남았다. 지도가 마지막으로 그린 경로가 화면에 정지해 있었다. 그 뒤로는 표지판의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