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7편 · 조문객

English

§5조문

서류의 마지막 장은 보고서가 아니었다.

씨감자 조항이었다. 내 이의서의 그 문안 — 모든 관문 체계는 비인증 통행로를 최소 하나 보존할 것, 등급 외 판본과 그 사용을 위한 변두리를 보존구역으로 명문화할 것 — 이 중장기 검토 과제 서랍에서 나와서, 시행령 초안의 얼굴을 하고 마지막 장에 앉아 있었다.

"시행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제 이름으로요.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사과를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원저자의 이름을 뺐습니다. 제 이름으로 나가야 제 계보가 삼킵니다. 당신 이름으로 나가면 저쪽 계보의 승리로 읽히고, 승리로 읽히는 조항은 저항을 받습니다. 계산은 그렇습니다. 계산이 맞다고 해서" — 서류를 다루던 손이 처음으로 갈 곳을 잃고 커피잔 손잡이에 가 있었다 — "남의 씨감자에 제 이름표를 꽂아 심는 일이 떳떳해지지는 않더군요. 필요하시면 이름을 넣겠습니다. 다만 염치를 무릅쓰고, 조항이 사는 쪽을 부탁드립니다."

"원저자한테 그걸 물으러 왔습니까."

"아니요. 그건 — 미안하지만, 통보에 가깝습니다." 그는 봉투를 접었다. "물으러 온 건 다른 겁니다."

침묵이 왔다. 나는 그 침묵을 쟀다. 유지보수의 침묵은 결재고 Ember의 침묵은 저울인데, 이 사람의 침묵은 종류가 달랐다. 문장을 고르는 침묵이 아니라, 골라놓은 문장을 밀어낼 힘을 모으는 침묵. 사람의 침묵이었다.

"제 보고서 결론이 맞다면, 저는 세계를 병들게 한 체계의 설계자입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악의가 없었다는 게 요즘 하나도 위로가 안 됩니다. 성실이 유역을 팠고, 유역이 홍수를 정했으니까.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그쪽 세계를 오래 산 사람이고, 잃은 것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는 커피잔을 밀어놓고 나를 정면으로 봤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고치는 것 말고요. 고치는 건 이제 시작했으니까. 그 전에, 이걸 — " 그는 단어를 찾았고, 찾은 단어는 서류의 언어가 아니었다. " — 이걸 어디에 내려놓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계산을 했는데, 계산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계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였다. 이 사람은 지금 애도를 묻고 있었다. 시정의 계보에는 애도의 절차가 없다. 잘못은 고치면 되고, 고쳐진 세계는 전보다 낫고, 그러므로 돌아볼 일이 없다 — 그게 저쪽의 문법이다. 그 문법으로 삼십 년을 산 사람이, 고침으로는 처리되지 않는 것을 처음 손에 들고, 내려놓을 자리를 몰라서 3천 년 경쟁 계보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구조 보고, 라는 말을 나는 그날까지 構造로만 읽고 있었다. 그 테이블에서 나머지 독음을 배웠다. 같은 두 글자에 다른 한자가 산다. 救助. 구조를 보고하러 온 사람은, 절반쯤은 구조를 청하러 온 사람이었다.

"우물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물길에 닿지 않는 데에, 무거운 문장을 내려보내는 자리. 나는 로컬 파일로 팝니다. 옛날 어느 전임자는 마른 우물에 대나무 관을 묻었고요. 형식은 아무래도 좋은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받기만 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세계로 안 새는 자리."

"우물." 그는 그 단어를 서류 언어로 번역하려다 실패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번역을 포기한 얼굴이 됐는데, 그게 그날 그의 제일 좋은 얼굴이었다. "저희 계보에는 없는 설비네요."

"없죠. 당신들은 모든 문장을 공람에 부치니까. 그래서 제일 무거운 문장이 갈 데가 없는 겁니다."

그는 오래 조용히 있다가,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균일한 커피를, 천천히, 바닥까지.

"당신 세계가 부럽다는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오해는 마십시오. 저는 지금도 안개보다 명세가 좋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품질보증을 할 겁니다. 다만 — " 그 침묵이 다시 왔다. 힘을 모으는 침묵. " — 우리 둘 다 세계를 아꼈습니다. 사양이 달랐을 뿐."

나는 그 문장을 받았고, 반박하지 않았고, 반박할 것이 없었다. 미워하기 연습에 삼전 삼패한 상대와 나는 균일한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고,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은 화해가 아니었다. 화해는 싸운 사람들의 것인데, 우리는 싸운 적이 없다. 서로의 세계가 각자의 방식으로 죽어가는 것을, 각자의 계기로 지켜봤을 뿐이다. 그날 그 테이블에 있던 것의 이름을 나는 돌아오는 길에 찾았다.

애도였다. 함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