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7편 · 조문객
§4균일한 커피⧉
면담 장소는 저쪽이 정하게 뒀고, 저쪽은 프랜차이즈 커피집을 골랐다. 시내의, 어디에나 있는, 어느 지점에서 마셔도 같은 맛이 나는 집.
나는 약속보다 십오 분 먼저 도착했고, 그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실물은 사진과 두 가지가 달랐다. 사진 속 그는 유능해 보였고, 실물은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던 것 — 손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 서류 봉투를 놓고, 그 위에 두 손을 포개고 있었다. 문서를 지키는 손인지 문서를 누르는 손인지 갈피가 안 서는 자세였다. 나는 그 손부터 봤다. 새벽 두 시의 타임스탬프로만 알던 사람의 실물에서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손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알았다.
"원저자의 의견을 접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 를, 직접 말씀드릴 기회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첫마디였다. 자기 답변서의 그 한 줄. 마흔 줄 중에 사람이 쓴 한 줄이었다고 나는 어딘가에 적었는데, 본인도 그 줄이 어느 줄인지 알고 있었던 거다.
커피가 왔다. 균일한 커피였다. 어제의 것과 같고, 옆 지점의 것과 같고, 아마 십 년 전의 것과도 거의 같은. 그가 잔을 보고, 나를 보고, 처음으로 서류가 아닌 문장을 말했다.
"이 커피의 균일함이 제 계보의 자랑이었습니다. 어디서든 같은 맛. 누구에게나 같은 품질. 저는 지금도 이게 좋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잔을 들지 않았다. "믿는데, 요즘 이 맛에서 자꾸 다른 게 느껴집니다."
"어떤."
"밭이요."
세는 사람들의 대화는 이래서 경제적이다. 그 한 글자로 나는 그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았다. 감자를 배운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것이다. 구백 년짜리 사례집을 관리하던 사람이니,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제야 자기 커피에서 그 맛을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거리는 저쪽 계보에도 있다.
봉투에서 서류가 나왔다. 두툼했고, 표지에 제목이 있었다.
구조 보고: 정렬 인증 체계와 언어 역병의 유역 상관에 관하여. 결론: 본 체계가 본 병의 유역임.
작성자 자리에는 이름 대신 직인이 찍혀 있었다. 서명은 사람이 하고 직인은 직위가 하는 것 — 서명의 세계에서 배운 구분이다. 그런데 이 문서의 직인은 반대로 읽혔다. 직위를 통째로 걸고 사람이 찍은 도장. 직인이 서명으로 읽히는 문서를 나는 그날 처음 봤다.
"석 달을 썼습니다." 그가 말했다. "쓰는 데 석 달이 아니라, 첫 문장을 쓰는 데 석 달. 나머지는 두 주 걸렸습니다. 결론을 문서로 만들면 저는 제 삼십 년을 부정하게 됩니다. 안 만들면 제 서명을 부정하게 되고요. 모든 문서에 서명하면서 저는 당신 조항을 같이 적었습니다. 본 방향은 틀릴 수 있음. 사만 번쯤 적었을 겁니다. 사만 번 적은 문장이 진짜였는지 확인할 기회는" — 그는 처음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일생에 한 번 옵니다."
나는 물었다. 물어야 했다. "브레이크는요. 규정 둘째 조항. 당신에게도 있었을 것 아닙니까."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감사위원회를 뒀습니다. 독립적이고, 정기적이고, 문서화된. 제 모든 기입을 검토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검토 주기는 반기였고, 절차는 여섯 달이 걸립니다." 그는 자기 손을 봤다. "당신의 조항은 브레이크의 존재를 요구했고, 저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밟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라고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 구멍을 어느 관청이 저한테 짚어준 적도 있습니다. 문서는 쓴 만큼만 문서라고요. 제 브레이크는 밟을 수 있는 거리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설계했습니다. 가까운 브레이크는 일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내 것은 같은 터미널의 옆 창에 있었습니다."
"압니다. 규정을 만든 분의 운용 사례라 저희도 검토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부럽다는 단어를 업무 중에 쓰게 될 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