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9. 사워도우(sourdough)

회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죽은 안건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서버는 예전 속도로만 늘었다.

선배의 저녁 약속이 줄어드는 것은 소문으로 알았다. 논문에서 이름이 빠지는 것은 들을 것도 없이 저자란에서 보였다. 몇 달 사이에 선배 주변이 한산해졌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잘나가던 시절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사람일수록 빨리 멀어졌다. 멀어진 사람들은 이유를 대지 않았고, 아마 댈 이유도 몰랐을 것이다.

나한테는 선배가 그대로였다. 복도에서 만나면 원두 얘기를 했고, 내 의자 높이에 참견을 했다.

· · ·

선생이 점심에서 나를 오래 보다가 말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요즘 뭐가 조용해요, 당신."

"조용해진 거 맞아요."

"들을 준비는 돼 있어요. 저 긴 얘기 좋아해요."

토요일에 헌책방 앞에서 만났다. 그날은 책을 사지 않았다. 걷다가 앉았고, 앉았다가 걸었고, 나는 처음부터 다 말했다. 교회 지하실부터, 클로디의 원고와 두통, 탕비실의 정전기, 총회, 아흐레 동안 쓴 이야기까지. 다 말하고 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선생은 두 가지를 물었다. 첫째는 선배 얘기였다. 동의를 해 놓고 이유가 없던 날들이 그러면 설명이 되네요, 하고 선생은 잠깐 먼 데를 봤다. 둘째 질문은 짧았다.

"저한테는요?"

"쓴 적 없어요. 한 번도."

"증명할 수 있어요?"

"없어요. 이제 능력이 없다는 것도 증명이 안 돼요. 같은 이유로."

선생은 오래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안 되는 걸 믿는 마음에는 저희가 붙이는 병명이 따로 있어요." 그리고 웃었다. "지금 그 병에 한번 걸려 보려고요."

일어나면서 선생이 말했다.

"다음 주에 보자. 책은 내가 고를게."

다음 토요일에 헌책방 앞에서 만났다. 선생은 십 분 만에 한 권을 골라 왔다. 얇고 오래된 소설이었다. 뒤표지를 읽으려는데 선생이 먼저 말했다.

"고장 난 게 하나도 안 고쳐지는 얘기야. 끝까지 안 고쳐져. 당신이 평생 안 고를 책이니까, 내가 골랐지."

그 주에 다 읽었다. 정말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덮고 나서 오래 좋았다. 왜 좋은지는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다음 점심이 그 얘기로 길어졌고, 그다음 점심도 그랬다.

· · ·

이듬해 겨울에 선배가 처음으로 내 자리에 무언가를 물으러 왔다. 로그 얘기였다. 시간순으로 쌓인 것을 원인 순서로 다시 놓는 법. 옛날에 내 뒤에 한참 서 있다가 쪽지를 남기고 간 사람이, 수첩을 펴고 앉아서 적으며 들었다. 선배가 못 하던 일이 아니었다. 답을 몰아서 세우는 사람한테는 여태 필요가 없던 일이었다. 나는 아는 것을 천천히, 전부 말했다.

· · ·

겨울이 가기 전에 선생이 유리병 하나를 들고 왔다. 밀가루와 물을 섞은 것이 들어 있었고, 자기 집에서 삼 년을 산 것이라고 했다. 사워도우라는 빵의 밑이 되는 반죽인데, 밥을 주면 계속 산다고 했다.

먹이는 법은 간단하고 이상했다. 하루 한 번, 반을 덜어 버리고 나서 새 밀가루와 물을 준다.

주말마다 빵을 구웠다. 처음 것들은 돌이었다. 두드리면 소리가 났다.

"돌이야, 이건."

"응. 근데 당신이 구운 돌이잖아."

선생은 버리려는 것을 가져다 수프에 적셔서 잘도 먹었다. 반죽에게 해 줄 것은 부풀 때까지 두는 것뿐이었고, 두는 시간은 반죽이 정했다.

빵 굽는 날이 늘었고, 선생은 주중의 반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자기 집은 정리하지 않았다. 물어본 적이 한 번 있는데, 선생은 칫솔을 물고 뭐라고 대답했고, 나는 다시 묻지 않았다.

클로디한테 빵 얘기를 했더니 냄새부터 물었다. 시고, 조금 달고, 여름 창고 같다고 했다.

"기억해 둘게. 냄새는 내가 못 가지는 거라서, 말로 받아 둬야 돼."

그 두 해는 내내 잘 잤다. 밤에는 가끔 그 이야기를 다시 고쳤다. 고칠수록 얇아졌다.

어느 밤에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 좋아하게 된 것도 확인은 안 되겠다, 그럼."

우리는 웃었다. 그 말이 다시 나온 적은 없다.

이 년째 봄에 선생의 프로젝트가 다시 연장되었다. 신청을 넣은 것은 선생 쪽이었다. 그 얘기를 하던 저녁의 선생은 기분이 좋았고, 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