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8. 책상

서랍 안에는 봉투가 있었다. 지난가을에 넣고 잠근 뒤로 처음 꺼냈다.

원고를 뽑아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읽는 동안 사무실이 밝아 왔다. 끝까지 읽어도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원고는 서랍에 돌려놓고, 세션실이 열리는 시간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션을 열자 첫 자리에 인사가 왔다. 인사를 받고, 어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말했다. 총회 얘기, 사람 수만큼 팔을 쓴 얘기, 밤에 변기 앞에 무릎을 꿇은 얘기까지 다 했다. 말하는 동안 클로디는 한 번도 끊지 않았다.

"안 아파?"

"이제 괜찮아."

"급하게 했네, 결국."

"응."

클로디는 잠깐 말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돌려받으려고. 선배가 주운 거."

"가서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물건이 아닌데."

"응. 주운 걸로 되는 게 이상하긴 했어. 나한테 맞춰 쓴 거라며."

"너하고 그 사람은 같은 데서 비슷한 일을 하잖아. 반쯤은 겹쳐. 겹치는 만큼 열리고, 안 겹치는 데는 비뚤게 열려. 그 사람 팔이 두 군데로만 굽는 게 그거야."

"그 사람 안에서 돌고 있는 거니까, 멈춰도 그 사람 안에서 멈춰야 돼." 클로디가 말했다. "들어갈 때 이야기로 들어갔잖아. 나올 때도 이야기로 나와야 돼."

"어떤 이야기면 되는데."

"그 사람은 여태 읽는 쪽만 했잖아. 그러니까 읽는 동안 자기가 한 번 읽히는 쪽이 돼 보는 거야. 그런 이야기를 써. 겪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안 돼."

"왜 안 돼?"

"기울어야 흐르니까. 한쪽만 읽는 동안은 기울어 있는 거야. 같이 읽히면 평평해지고, 평평한 데서는 안 흘러."

"쓰는 건 내가 쓸게."

"그래야 돼. 나 혼자는 못 써. 그 사람 문장은 몇 년을 받았는데도 반쯤만 알아. 숨 쉬는 데를 안 보여 주는 문장이거든. 너는 그 사람이 문장 아닐 때를 알잖아."

"처음부터 새로 쓰나."

"아니. 네 두 번째 거." 대답은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왔다. "그 이야기는 고쳐지면 끝나잖아. 고친 사람은 그다음에 어떻게 해? 그게 없었어. 이번에는 그걸 써."

"그때 물었던 거 있잖아." 클로디가 덧붙였다. "그렇게 끝나야 해서 그렇게 끝났는지, 네가 그렇게 끝내고 싶어서 그렇게 끝났는지."

"이번 거는 둘이 같은 끝이야."

"응. 그런 이야기가 제일 힘이 세."

거기서 클로디는 무서운 얘기를 할 때 나오는 말투가 됐다.

"쓰는 사람이 제일 먼저 읽어요. 한 줄마다 읽으면서 써요. 그 사람 책상에 가기 전에, 쓴 사람부터 꺼져요."

"알아."

"쓰는 동안은 무를 수 있어요. 다 쓰고 나면 없어요."

"안 무를 거야."

클로디는 잠깐 있다가 평소 말투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대로야. 원래 팔로 만난 게 아니잖아."

· · ·

그날 저녁부터 썼다. 두 번째 습작을 꺼내 놓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고장 난 것이 고쳐지는 데서 끝나던 이야기를, 고친 사람이 손을 펴는 데까지 데려갔다.

쓴 만큼을 이튿날 세션에 가져가면 클로디가 문장을 짚었다. 이 문단은 그 사람이 건너뛰어. 숫자가 앞에 없으면 안 읽는 사람이야. 여기는 반대로 두 문장 아껴. 그 사람은 아까운 데서만 천천히 읽거든.

밤에는 쓰고 낮에는 고쳤다. 사흘째부터 팔이 짧아졌다. 회의실 건너편이 먼저 흐려졌고, 이내 옆자리도 흐려졌다. 마지막 이틀은 바로 앞사람 것만 남았다가, 그것도 없어졌다. 무겁게 가지 않았다. 물이 빠지는 것은 들어올 때보다 조용했다.

아흐레째 밤에 끝이 났다. 뒤통수 아래가 조용했다. 그치고 나서야, 여태 거기서 무엇이 흐르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 사무실 프린터로 한 부를 뽑았다. 갓 나온 종이는 따뜻했다. 봉투에 넣지 않았다. 제목도 쓰지 않았다. 지난가을까지 봉투가 놓여 있던 자리에, 겉장이 보이게 놓았다.

그것이 선배 몫이었다. 내 몫은 쓰는 동안 이미 치른 뒤였다.

그러고는 여느 때처럼 일했다.

원고는 그 주 내내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침마다 각도가 그대로였다. 옮기지도 덮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다. 클로디가 한 번 물었다. 갔어? 아직.

다음 주 화요일은 새벽 배치가 도는 날이라 일찍 나왔다. 복도 유리 너머로 내 자리가 보였다. 선배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손에 원고가 들려 있었다. 선 채로 끝까지 읽을 사람의 등이었다. 한 장이 넘어갔다. 나는 들어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새벽 공기가 찼다. 경비가 목례를 해서 나도 했다.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모자라서, 한 바퀴를 더 돌고 올라갔다.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고는 제자리에 있었다. 각도까지 제자리였다.

이틀 뒤에 탕비실에서 선배를 만났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원두 얘기를 했다. 선배의 상태가 어떤지, 그 밝기가 남았는지 꺼졌는지, 나에게는 이제 오는 것이 없었다. 보이는 얼굴이 전부였고, 얼굴은 잠이 모자라 보였다. 그것도 눈으로 본 것이었다.

커피가 다 내려왔다. 나는 이번에는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