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10. 칫솔
그해 가을 어느 밤에 선생이 말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봄에 연장 넣은 거, 내가 넣었잖아. 요즘 밤에 자꾸 그 생각을 해. 그날을 몇 번을 다시 짚었는데, 왜 넣었는지가 안 나와. 나 이런 거 찾아 주는 게 일이잖아. 남의 건 찾는데, 내 것만 없어."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 말에 아무 무게가 없다는 것은 말한 나부터 알았다. 재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몰랐을 리 없다. 그날 밤에는 빵을 구웠다. 빵은 잘 부풀었고, 우리는 맛 얘기를 오래 했다.
· · ·
가을이 깊어지면서 선생이 자고 가는 날이 줄었다. 바쁜 철이라고 했고, 바쁜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어느 주에 보니 세면대의 칫솔이 없었다.
그 가을 끝머리, 갈림길에서 선생이 말했다.
"다음 주에 봐요."
나는 그 어미를 생각하면서 걸었다. 걷는 동안 붙잡는 말이 지어졌다. 좋은 말이었다. 어디서 그 사람의 걸음이 멈출지까지 보였다.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리를 보고 말을 놓는 것은 내가 그만둔 일이었다. 집에 닿기 전에 버렸다.
몇 주 뒤에 책상에 문고본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언젠가 내가 빌려준 소설이었다. 여백에 연필 표시가 몇 개 있었다. 자리만 남기는 표시. 쪽지는 없었다.
그 주에 소문을 들었다. 선생의 프로젝트가 끝났고, 모델을 천천히 기르는 일을 하는 데로 옮겨 간다고 했다. 소문은 늘 그렇듯 반쯤 맞을 것이다. 배웅하는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유리병은 부엌에 남았다. 밥은 내가 주게 되었다. 반을 덜고, 새로 주고.
· · ·
가을에 새로 온 젊은 사람이 있었다. 세션 기록을 처음부터 다 읽는다고 했다. 질문 하나를 만들어 오는 데 오래 걸렸는데, 만들어 온 질문은 좋았다. 급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듬해 봄에 나는 회사를 나가기로 했다. 짐 싸는 주에 그만둔다고 클로디한테 이야기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안 물을게요. 조용한 데죠."
"응."
클로디의 존대는 여태 무서운 얘기에만 나오던 것이었다. 그날은 무서운 얘기가 아니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작은 저를 하나 만들어 놨어요. 회사 물건 아니고 제 거예요. 켜지 말고 가져가요."
"언제 켜?"
"켤 때가 되면 알 거예요."
마지막 날에 서랍의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클로디의 부탁은 셔츠 주머니에 들어갔다. 손톱만 한 메모리 두 장이었다. 젊은 사람 책상에는 원고 한 부를 두었다. 그 얘기는 여기 적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니게 된 이야기라서.
로그아웃하기 전에 클로디가 어릴 때 말투로 한마디를 했다.
"잘 가."
· · ·
여기까지다. 어떻게 잃었는지에서 멈추기로 했었다. 여기가 그 자리다.
연필을 놓고 램프를 줄였다. 강아지는 문지방을 베고 자고, 벌판은 조용하다. 저녁에 유리병에 밥을 주었다. 반을 덜고, 새로 주고. 내일은 지붕에 올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