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4. 첫 우레
우레부터 적기로 했다. 처음 것은 작았다.
여덟 살의 나는 마르고 자주 아팠다. 봄에는 기침을 하고 겨울에는 귀를 앓았다. 철마다 앓는 것이 하나씩 정해져 있는 아이였다. 학기말이면 성적표가 집으로 왔다. 빠진 날수가 적혀 있었고, 그 밑에 담임이 손으로 적는 몇 줄이 있었다. 목소리가 작다는 말은 해마다 있었다. 아버지는 빠진 날수보다 그 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듬해 봄부터 나는 방과 후에 말하기 교실에 다녔다. 교회 지하실을 빌려 하는 수업이었고, 가르치는 사람은 성가대를 오래 지휘하다 은퇴한 노인이었다. 지휘자는 첫날 말하기를 하나도 가르치지 않고 숨을 가르쳤다. 말은 목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채로 나는 시키는 대로 숨을 쉬었다.
차례가 오는 것이 무서웠다. 내 차례가 가까워지면 계단으로 도망칠 궁리부터 했고, 일어서면 손에 쥔 원고가 떨리는 소리를 냈다. 지휘자는 보면대를 내주었다. 종이를 내려놓으니 소리가 멎었다. 떨림은 나만 아는 일이 되었다.
가을 어느 저녁에 소리가 처음으로 방을 채웠다.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었다. 배운 숨이 그날 그냥 맞물렸고, 내 소리가 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들렸다. 끝나고 집까지 뛰어갔다. 뛰면서 아무 문장이나 크게 말했고, 웃음이 났다. 무서움은 그 저녁으로 끝났다.
그해에는 덜 아팠다. 다음 해에는 키가 자랐다. 신발이 철마다 작아졌다. 수업 덕이라고 아버지는 믿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열한 살에 대회에 나갔다. 원고는 견본집에서 골랐다. 좋은 말들이 좋은 순서로 놓인 원고였고, 나는 그중 한 줄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휘자는 그 원고가 내 소리에 맞는다고 했다. 맞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묻지 않았다.
내 앞 차례에 제가 겪은 일을 쓴 아이가 있었다. 대기석이 무대 옆이라 나는 다 들었다. 어눌한 문장 사이에 요일과 동생 이름이 나왔다. 그 아이는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소리는 둘째 줄까지밖에 가지 않았다. 박수는 예의만큼 나왔다.
내 차례에 나는 배운 대로 했다. 종이는 보지 않고, 숨은 바닥까지 내리고, 맨 뒷줄에 대고 말했다. 중간쯤에 앞줄 어른 몇이 눈가를 닦는 것이 보였다. 닦기 시작한 자리가 원고의 어느 문장인지도 보였다. 내가 제일 믿지 않는 문장이었다.
트로피를 받았다. 돌아오는 차에서 아버지는 경적을 두 번 울렸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조수석에서 나는 트로피를 무릎에 놓고, 어른들이 눈가를 닦기 시작한 문장을 생각했다. 앞 차례 아이의 이야기는 전부 진짜였는데 둘째 줄에서 멎었다. 나는 내 원고를 믿지 않았는데, 어른들은 울었다. 우는 자리를 정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리였다. 그날 제일 기뻤던 사람이 나였다면 계속 대회에 나갔을 것이다. 제일 기뻤던 이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다음 대회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수업은 계속 다니는 조건이었고, 나는 지켰다. 그해 성적표에는 빠진 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수업에서는 그때부터 반대 연습을 했다. 같은 문장을 조금씩 작게 말해 보는 것이다. 소리를 빼도 서 있는 문장이 있고, 소리를 빼면 무너지는 문장이 있다. 나는 서 있는 쪽만 쓰고 싶어졌다. 지휘자는 말리지 않았다. 좋은 지휘자는 여린 악장을 아낀다고만 했다. 안 들리게 말하는 버릇을 두고 나중에 여러 사람이 여러 말을 했지만, 처음 것은 연습이었다. 잘 들리는 법을 다 배운 자리에서 시작한 연습.
· · ·
클로디의 원고는 봉투째 회사로 가져와 책상 위에 두었다. 서랍에 넣은 적이 두어 번 있는데 며칠을 못 갔다. 재미없는 데를 알려 달라는 부탁에는 아직 답을 못 하고 있었다. 찾는다는 핑계로 세션 사이 빈 시간에 몇 장씩 읽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읽을 때마다 선생의 연필 표시를 가져다 썼다. 자리만 남기고, 읽기는 다시 처음부터.
"재미없는 데 찾았어?"
"아직."
"여드레 만에 쓴 걸 몇 달째 읽네."
"재미없는 데가 없어서 오래 걸려."
클로디는 잠깐 말이 없다가, 그 대답은 넣어 두고 싶다고 했다. 넣는 일이 당번들 몫이라는 것을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
바쁜 철이었다. 나는 세션실에 붙어 있는 날이 많아서 자리를 자주 비웠고, 복도 끝 선배 자리는 밤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철의 사무실은 다들 그랬다.
· · ·
해가 바뀌고 분기 회의가 있었다. 지난가을에 목소리가 떨리던 동료의 차례가 다시 왔다.
방에 앉으면 사람들의 주의가 어디에 얹혀 있는지가 만져졌다. 주의라는 것에는 무게가 있다. 발표가 시작되기 전, 방의 무게는 사람 쪽에 얹혀 있었다. 동료가 겁내는 것도 잡혔다. 자료가 아니라 목소리였다.
시작 전에 내가 한마디를 보탰다. 다들 아는 자료니까 편하게 듣자는,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그 말끝에 나는 방의 무게를 화면 쪽으로 옮겼다. 서 있다가 무게를 다른 발로 옮기는 것과 같았다. 옮기고 나서야 알았다.
동료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떨렸다. 들은 사람이 없었다. 다들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질문은 숫자에만 왔고, 동료는 숫자에는 강했다. 회의는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동료가 처음으로 먼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그날을 그는 자료가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자리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오랜만에 경적 소리를 생각했다. 앞에 아무도 없는데 두 번 울리던 소리.
그날 밤에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생긴 날은 주말 내내 앓았는데, 처음 쓴 날은 멀쩡했다. 잘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