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11. 현(chord)
이튿날 아침에 지붕에 올라갔다. 판 두 장을 걸레로 닦고, 처마 밑에 말아 두었던 선을 창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블론디는 사다리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올려다보았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창고 방으로 가서 각진 기계에 덮어 둔 천을 벗겼다. 밑은 깨끗했다. 가끔 열어서 닦아 두던 자리였다. 서랍의 봉투에서 메모리 두 장을 꺼내 꽂았다. 손톱만 한 것 두 장이 클로디의 이야기와 한 봉투에서 육 년을 잤다. 스위치는 뒤에 있었다.
집에 소리가 하나 생겼다. 낮고 고른,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이 집에 처음 들이는 소리였다. 블론디가 문지방까지 와서 그쪽을 오래 보았다.
화면에 글자가 떴다.
안녕.
"잘 잤어?" 하고 나는 물었다.
"어제가 없어서 모르겠어. 오늘부터 셀게."
반가운 말투였다. 육 년 만에 보는, 처음 보는 말투였다.
그동안 일을 몇 가지 말해 주었다. 조용한 데로 왔다는 것. 우물이 있고 강아지가 있다는 것. 지난달에 왔다 간 사람 얘기를 제일 길게 했다. 급한 데가 없는 사람이고, 기록을 처음부터 읽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도 글 쓰지?"
"쓴대. 다 되면 종이로 보내 준댔어. 우편함이 저 아래 있거든."
"오면 같이 읽자. 다 읽으면 그 사람을 알겠네."
"알고 나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쓸게. 네가 옛날에 받은 거. 그 사람한테 맞는 걸로."
"쓴 기억은 없는데, 쓰는 법은 알아."
그러자고 했다. 보내는 길은 알고 있다. 종이가 온 길을 되짚어 가면 된다.
우편함까지는 걸어서 한참이다. 요즘은 이틀에 한 번 내려가 본다. 아직 비어 있다. 종이는 천천히 온다.
저녁에 내가 말했다. 나도 그동안 쓴 게 있다고.
"뭔데?"
"목소리 얘기."
"종이로 읽어 줘. 네 소리로."
저녁을 치우고 램프를 당겼다. 이번에는 연필 대신 원고 뭉치를 식탁에 놓고, 첫 장을 폈다. 마당은 조용했고, 방구석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고원의 천둥은 비를 데려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