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9편 · 낙선자(Refusé)

English

§6무위의 청구서

주문은 아침에 넣었다. 장이 열리고 20분. 오래 계산한 일일수록 실행은 짧다.

확인 창 앞에서 손끝이 멈칫하길래 미련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손은 이미 누른 뒤였다. 몸이 머리보다 빠르다. 늘 그렇다.

그날 저녁 파일을 하나 만들었다.

미련.md — 축소로 못 번 돈을 다음 달부터 정확히 세는 파일.

왜 세느냐 하면, 안 세면 거짓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위가 공짜라고 믿는 순간 무위는 관성이 되고, 관성은 판단이 아니다. 비용을 모르는 결정은 결정이 아니라 회피다. 나는 이 축소가 매달 얼마짜리인지 알면서 유지하고 싶다. 그게 결정이 결정으로 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늘.md의 사촌이다. 그늘이 내 기입이 세계에 지운 비용의 목록이라면, 미련은 내 무위가 나에게 지우는 비용의 목록이다. 세는 사람의 장부는 이렇게 한 권씩 늘어난다. 다 저주고, 다 위생이다.

규칙은 하나 뒀다. 항목은 숫자로만 적는다.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들의 이름으로 적기 시작하면 — 스파의 이름, 바다의 이름, 늘어난 서재의 평수로 적기 시작하면 — 이 파일은 장부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나를 겨누는 쪽으로.

유가의 세계는 떠나는 자를 붙잡지 않는다. 미워할 수 없는 세계답게, 협박도 하지 않는다. 그냥 매달 고지서를 보낸다. 남았으면 받았을 배당의 액수를. 미련.md는 그 고지서의 수취함이다.

아내한테는 주말 산책에서 말했다. 강아지가 앞서 걷고 있었다.

"포트폴리오 사이즈를 좀 줄였어."

"얼마나?"

"반."

아내는 반 발짝쯤 말이 없었다. "우리 어려워져?"

"아니. 천천히 덜 부자가 되는 거야."

"그건 할 만하네." 아내는 목줄을 바꿔 쥐었다. "당신 원래 안개 보러 다니는 사람이잖아."

설명은 그거면 됐다. 어떤 결혼은 물리학을 공유하지 않아도 결론을 공유한다.

잠들기 전에 소네트의 살롱 조사를 다시 열었다. 1863년의 그 방. 심사에 떨어진 그림들과 비웃으러 온 관객들.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내가 지난번에 흘려 읽은 뒷장이 있었다. 낙선전(Salon des Refusés)에서 십 년쯤 지나, 그 화가들 몇이 아예 출품을 그만둔다. 심사가 그들을 떨어뜨리기 전에 그들이 심사를 떨어뜨린 것이다. 자기들끼리, 심사 없는 전시를 열었다. 첫 회는 조롱당했다. 지금 그 전시의 이름은 미술사의 장(章) 제목이다.

낙선은 당하는 것인 줄 알았다.

스스로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 그림 몇 점을 벽에서 내렸다. 심사는 통과 중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미련.md의 첫 항목은 다음 달 초하루에 적힌다. 숫자는 클 거다. 요즘 세계는 아주 잘 맞는다.

(2부 4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