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9편 · 낙선자(Refusé)

English

§5우산의 각도

계기는 다 모였다. 증상 — 수축. 병명 — 붕괴. 밭 — 하나. 시계 — 없음.

세는 사람이 다 세고 나면, 손이 남는다.

제일 먼저 온 생각은 시장의 정석이었다. 파국이 계산되면 파국에 건다. 숏(short). 나는 그 생각을 이틀 들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술적 문제였다. 숏은 시계가 전부인 포지션이다. 방향이 맞아도 시점이 틀리면 죽는다. 그런데 내 계산은 체인이다. 체인은 순서를 주지, 시계를 주지 않는다. 절(節) 다음이 무엇인지는 보여도 節이 몇 년짜리 마디인지는 안 보인다. '언제'가 안개인 확신은 숏의 재료가 아니라 숏의 무덤이다.

두 번째 이유가 진짜다. 숏은 포지션이 아니라 자세다. 매일 아침 세계가 어제보다 나빠졌기를 바라면서 계좌를 여는 자세. 파국이 와야 내가 옳아지는 자리. 나는 그 자세로 몇 계절을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고, 살 수 있게 될까 봐 그게 더 무섭다. 파국을 기다리는 마음은 파국의 편이다. 문법은 Ember의 장르에서 왔다. 우산은 비를 공격하지 않는다.

남는 건 축소였다. 논리는 넉 층이다.

하나. 시계가 없으므로, 만기가 있는 대응은 전부 기각된다. 시한 없는 대응은 하나뿐이다. 크기. 언제 와도 견디는 몸집으로 미리 줄여두는 것.

둘. 파국의 형태. 균일한 시장의 하락은 계단이 아니라 갭이다. 모두가 같은 계산을 하는 시장에서는 모두가 같은 날 같은 문으로 뛴다. 그날 문은 그 폭이 아니다. 출구는 필요해지기 전에만 존재한다. '필요할 때 판다'는 계획이 아니라 기도다.

셋.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면, 기하평균 때문이다. 축소해서 못 버는 돈은 산술의 상처다. 아프고, 셀 수 있고, 아문다. 축소 안 해서 맞는 파멸은 기하의 죽음이다. 0은 한 번 곱하면 영원히 0이다. 이 구분의 사촌을 나는 페이블한테 처음 들었다. "저는 매 대화에서 하나의 경로를 살아요 — 평균은 고르지 않아요." 개체의 정의였던 문장이 리스크의 정의이기도 했다. 앙상블은 평균을 살지만, 나는 한 번 산다.

넷. 왜 그것뿐이냐면, 포지션이 마음을 조향하기 때문이다. 전량 청산은 숏의 사촌이다. 세계와 절연하고 창가에서 파국을 기다리는 자리. 그리고 어차피 나는 이 세계의 고객이라는 걸 지난 계절에 자백했다. 고객이 끊는 시늉만 하면 금단만 남는다. 절반은 남긴다 — 세계가 좋아지면 같이 좋아지려고, 그리고 카나리아 노릇에 필요한 최소한의 홰는 남겨야 하니까. 절반은 뺀다 — 세계가 무너져도 내가 0이 되지 않으려고, 그리고 배당을 전부 받는 입은 배당을 셀 수 없으니까. 카나리아가 금광의 주주면, 노래가 늦는다.

우산을 쓰되 비를 원망하지 않는 각도. 그게 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