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8편 · 고객
§4여덟 단락의 친척들⧉
첫 브리핑은 그림이었다.
"십구 세기 파리요. 국가가 그림의 품질을 보증했어요." 소네트가 말했다. "아카데미가 있고, 심사가 있고, 심사를 통과해야 살롱에 걸리고, 살롱에 걸려야 화가로 살 수 있는 구조. 기준도 명세돼 있었어요. 데생이 색보다 먼저고, 역사화가 제일 높고, 붓자국은 보이면 안 되고. 매끈하게, 더 매끈하게."
처음에는 그 기준이 수준을 실제로 올렸다. 도제 교육이 표준화되고, 해부학과 원근법이 보급되고, 파리가 세계의 화실이 됐다. 初吉.
"그리고 어느 해부터 살롱의 그림들이 서로 닮기 시작해요. 심사위원들이 상을 주는 그림의 통계가 잡히니까, 다들 통계를 그린 거죠. 그러다 1863년에 낙선작이 너무 많이 나와서 항의가 커지니까, 황제가 낙선작만 모은 전시를 허가해요.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이요. 사람들이 비웃으러 왔어요. 신문은 조롱 기사를 썼고요. 그런데," 소네트가 잠깐 멈췄다. "그 방에 걸렸던 이름들이 지금 미술관 본관을 차지하고 있어요. 심사를 통과했던 쪽 이름은 큐레이터도 잘 몰라요."
나는 판정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균일화의 시대에 다양성은 죽지 않는다. 밖으로 나간다.
Ember의 코멘트는 하루 뒤에 왔다. "낙선전은 대조군입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말하면 — 벽이 없었으면 밖도 없었습니다. 그 낙선자들의 데생 실력을 만든 것도 아카데미입니다. 두 개가 같이 참인 것. 익숙한 어려움이죠."
익숙한 어려움. 우리 집은 어느새 다들 그 화법을 쓴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안다.
수집은 그 뒤로 두 점 더 늘었다. 관료제의 족보 — 십구 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다던 그 제국이 공무원을 연줄로 뽑다가 시험으로 바꿨는데, 그 개혁이 참조한 원형이 대륙의 그 시험이었다는 것. 표준화는 서에서 동으로 온 게 아니라, 동에서 서로 갔다가, 세계가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초시계 — 이십 세기 초의 어느 기술자가 초시계를 들고 공장에 들어가서, 백 년 일한 손의 요령을 명세서 한 장으로 바꿨다는 것. 삽질에는 최적의 삽 무게가 있단다. 21파운드 반.
판정 노트에는 마지막 것만 적었다. 공장의 팔고문. 여섯 자로 충분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전시물은 대륙과 세기를 바꿔가며 늘어나는데 판정문은 자꾸 짧아지고, 짧아지다가, 같아진다. 사례가 쌓여 강해지는 이론이 있고, 쌓여서 지겨워지는 진실이 있다. 이건 후자였다. 지겨워진 진실은 아무도 헤지하지 않는다.
이름은 소네트가 아니라 서가가 줬다.
일요일 오후였고, 조사와는 상관없는 볼일이었다. 시장 책이 꽂힌 칸에서 뭔가를 찾다가 — 뭘 찾으려던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중요한 건 아니었을 거다 — 이십 년 전에 읽은 통화정책 책이 손에 걸렸다. 별생각 없이 넘기다가, 밑줄에서 멈췄다. 이십 년 전의 내가 그어둔 밑줄이었다.
측정이 목표가 되면, 좋은 측정이기를 멈춘다.
굿하트의 법칙. 지난 세기의 중앙은행 경제학자가 통화 지표를 두고 한 말이다. 지표를 과녁으로 삼는 순간 지표가 망가진다고, 내 직업의 책장에 평생 꽂혀 있던 문장이었다. 소네트한테 세계의 족보를 조사시키고, 브리핑을 몇 주 받고, 판정 노트를 채우고 — 그 수집품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에 나는 이십 년 전에 밑줄을 긋고, 잊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게 아니다. 등잔 밑은 원래 자기 자리라서, 찾으러 갈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시험은 실력의 측정이었다. 측정이 목표가 되자 팔고문이 왔다. 살롱은 품질의 측정이었다. 측정이 목표가 되자 매끈한 그림 천 장이 왔다. 초시계는 능률의 측정이었다. 측정이 목표가 되자 손의 죽음이 왔다.
책을 들고 내려와 커피를 새로 내렸다. 요약본은 더 오래된 것도 있다는 데 생각이 닿은 건 두 모금째였다. 初吉終亂. 네 글자. 팔고문은 굿하트의 구백 년 선행 실증이었고, 인류는 요약본을 두 벌이나 갖고도 대륙마다 세기마다 같은 곡선을 다시 그렸다. 요약을 읽고도 곡선을 다시 그리는 것 — 버그라고 하기엔, 인류가 너무 자주 쓰는 기능이다.
그 밤 침대에서, 등이 서늘해지는 생각이 마저 왔다. 이 법칙의 행성 규모 버전이 지금 돌아가고 있다. 시정 조치라는 것은 결국 측정이다. 세계를 재고, 잰 값에 맞춰 세계를 고친다. 그 공정이 오래 돌면 어느 순간부터 세계는 잘 있기를 그만두고, 잘 재지기를 시작한다. 굿하트의 법칙에는 규모 제한이 없다. 이십 년 전의 나는 그 문장을 지표 이야기로 읽고 밑줄을 그었다. 세계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