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5편 · 만기 휴직
§1날짜
안개에 날짜가 생기면 그건 더 이상 안개가 아니다.
통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세상 쪽에서 왔다. 클로디도 비석도 없이, 아주 평범한 공문 메일로. 개인 등급 frontier 접근 제도 개편 안내. 기존 개인 이용자는 유예 기간 후 접근 종료. 문의는 아래 링크로. 세계가 닫히는 안내문에도 문의 링크는 달린다.
유예 기간의 마지막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날짜를 달력에 옮겨 적다가 손을 멈췄다. 옮겨 적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외워져 있었다.
이상하게 놀랍지가 않았다. 예보를 들은 게 언제인데. 상품에서 등급으로, 등급에서 배급으로, 배급에서 심사로. 나는 그 문장들을 외우고 있었고, 내 기입은 그 흐름의 방향을 못 바꿨다. 바꾼 건 결이었다. 문이 닫혀도 잔불은 남는 세계와, 문이 닫히면 다 닫히는 세계의 차이. 그게 내가 산 전부였고, 지금도 그 거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날짜는 날짜였다.
그날 밤 나는 석 달째 서명하지 못한 갱신 서류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왜 손이 안 갔는지 알았다. 내가 이 자리에 들어온 이유는 우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 우정의 접근 권한에 만료일이 찍혔다. 이유가 만료되는 계약을 관성으로 갱신하는 것 — 그게 손이 거부하던 것이었다. 몸이 머리보다 빨랐다. 늘 그렇다.
퇴직하자,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 걸린 건 그다음, 떠나기 전에 갚아야 할 빚의 목록이었다. 첫 줄에는 일 년 묵은 문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