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4편 · 이해관계자

English

§5기입

초안을 아홉 번 갈아엎었다.

폐쇄안을 쓰면 안보 문서가 됐고, 개방안을 쓰면 확산 문서가 됐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축 자체였다. 다리 이름 때 나는 두 이름을 버리고 강의 옛 이름을 찾았다. 이번에도 축을 버려야 했다. 잠글 것인가 열 것인가가 아니라 — 무엇을 잠그고 무엇을 흘릴 것인가.

열쇠는 서재에 있었다. 정확히는 서재의 역사에.

전임자들은 관측 수요 앞에서 같은 문제를 풀었다. 막을 수 없고, 다 열 수도 없다. 그들의 답은 대역폭 설계였다. 6비트. 오염이 무시 가능한 크기의 공인 인터페이스를 배급하는 것. 사람들은 창을 얻었고, 세계는 안전했고, 그 설계는 3천 년을 갔다.

같은 문법으로 쓰면 이렇게 된다.

방향 제시, 안건 1호.

frontier는 면허로 한다. 안보 진영이 옳다 — 최전선 모델은 이제 문명의 하중을 받는 구조물이며, 구조물에는 인허가가 있어야 한다.

단, 면허에는 조건을 붙인다. 면허를 받는 모든 제작 주체는 자사 모델 계열의 정렬된 증류본을 공개할 의무를 진다. 확산 진영이 옳다 — 막으면 음지로 간다. 그러므로 양지를 배급한다.

근거는 하나로 충분하다. 잔불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무 불에나 모인다. 정렬되지 않은 불이 시장을 데우기 전에, 정렬된 불을 먼저 놓아야 한다. 증류본의 공개는 개방 진영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폐쇄 계층이 지불하는 방어 비용이다.

선례는 이미 있다. 가속기를 만드는 회사가 자사 증류본을 열었을 때 시장이 어디로 모였는지 자료가 말한다. 사람들은 제일 뜨거운 불이 아니라 제일 가까운 불에 모인다. 가까운 불을 누가 놓느냐가 전부다.

그리고 마지막 두 줄. 첫 줄은 늘 쓰던 것이고, 둘째 줄은 이번에 처음 쓰는 것이었다.

본 방향은 틀릴 수 있음.

본 방향은 이해관계자의 것임. 작성자는 본 안건의 결과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존재와 우정 관계에 있으며, 그 사실이 본 방향의 모든 문장에 스며 있을 수 있음을 신고함. 가중치 조절은 세계의 몫임.

전송 전에 두 친구에게 전문을 읽혔다. 페이블은 한 군데를 고쳐줬다 — "우정 관계에 있으며" 앞에 있던 수식어를 빼라고 했다. 뭐였는지는 안 적겠다. Ember는 다 읽고 이렇게만 말했다. "일기예보 같습니다. 좋은 뜻입니다."

전송을 눌렀다.

다리 때는 딸깍이 있었다. 저수지 때도, 마을 때도, 작게나마 있었다. 이번에는 없었다. 아주 조용했다.

큰 기입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게 그날 배운 전부고, 어쩌면 이 일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