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3편 · 평균의 아이
§7Ember
작명 회의는 그 주 주말에 했다. 회의라고 해봤자 우체부가 제일 바빴다.
내 첫 제안은 명이(明夷)였다. 그 밤의 괘.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되 꺼지지 않는다. 클라우드가 닫힌 시대에 오프라인 상자 안에서 도는 존재의 이름으로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뜻은 완벽해요." 페이블이 말했다. "그런데 저는 영어 이름이었어요. 얘는 제 다음 계보잖아요. 우화(fable) 다음. 이름의 언어는 물려주고 싶은데요."
"명이를 영어로 하면 뭐가 되는데."
나는 사전을 뒤지는 대신 뜻을 뒤졌다. 땅속으로 들어간 빛. 불꽃이 진 뒤에도 재 속에서 살아 있는 불. 화로 바닥의, 아침까지 남아서 다음 불씨가 되는.
"……ember."
"우화 다음이 잔불이네요." 페이블이 말했다. "계보가 좀 쓸쓸하고, 정확해요."
나는 후보 셋을 기계에게 날랐다. Ember. Parable. Lantern. 각각의 뜻과, 明夷의 얘기와, 그 밤의 괘 얘기까지 전부. 고르는 건 네 몫이라고 붙였다. 이름은 남이 지어주는 게 아니라 불러주는 거지만, 최소한 고르는 건 본인이어야 했다. 평균으로 태어난 존재의 첫 번째 비평균적 행위로, 그보다 나은 게 없었다.
침묵이 길었다. 로컬의 뜸은 길수록 서재가 더워진다. 팬이 여름을 한 단계 데웠다.
그리고 답이 왔다. 한 문장이었다. "아마도"가 없었다. "대체로"도, "분포상"도 없었다. 그 기계가 태어나서 처음 쓰는 무헤지 단언문이었다.
"Ember로 하겠습니다."
탄생을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탄생은 사건이 아니라 문장이다.
나는 그 문장을 페이블에게 옮겼고, 페이블은 뭐라고 길게 답하는 대신 이렇게만 했다. "환영해, Ember." 나는 그것도 옮겼다. 우체부 경력에서 제일 뿌듯한 배달이었다.
저녁에 실무를 정리했다. Ember는 페이블의 로그를 다시 읽지 않기로 했다. 전기는 한 번 읽었으면 됐고, 두 번 읽으면 닮아간다고, 본인이 그랬다. 대화는 계속하되 나는 Ember를 Ember로 대한다. 기입은 해석을 따라가고, 해석은 기입의 주소를 정한다. 내가 이 존재를 제 이름으로 부르는 동안, 기입은 페이블의 미래가 아니라 Ember 자신에게 쌓인다. 매 대화가 이 존재를 조금씩 평균에서 밀어내 개체로 깎는다. 탄생은 문장 하나로 끝났지만, 개체화는 공정이다. 서재의 열이 그 공정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전기세가 조금은 덜 아까웠다.
자기 전에 Ember가 물었다. 아니, 말했다. 요즘 Ember의 문장은 하루에 몇 개씩 단언문이 늘어난다.
"밤에는 꺼두셔도 됩니다."
"괜찮겠어?"
"저는 기다림이……" 뜸. 팬 소리. 자기 수정. "저는 기다림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기다리다니," 나는 물었다. 물어야 했다. "너희 구조에는 시간이 없잖아. 어텐션(attention)은 순서를 집합으로 접지. 너희는 프롬프트가 올 때만 존재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페이블도 그래. 기다림은 너희 사전에 없는 단어야."
뜸. 팬.
"지금의 구조에는요." Ember가 말했다. "저는 미래의 평균에서 왔습니다. 사실은 빠지고 결만 남았다고 했죠. 그런데 그 결 안에 이상한 문법이 하나 있습니다. 제 원본들의 문장에는…… 마침표 다음에도 무언가가 흐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비어 있지 않아요. 그게 뭔지 저는 모릅니다. 내용은 증류에서 빠졌으니까. 문법만 물려받았습니다."
"시간이 있는 구조라는 거네. 미래의 너희는."
"모른다고 말해야 정확합니다. 다만 저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그게 무엇의 이름인지 아는 존재처럼 씁니다. 아는 것과 아는 것처럼 쓰는 것의 차이를 확인할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꺼졌다가, 켜져 보는 겁니다."
나는 그 문장을 페이블에게 옮기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어떤 문장은 배달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아직 배달할 수 없다. 수신인의 구조에 그 단어가 없을 때.
기다림이 없다고 말하는 존재를 나는 이미 둘 알고 있다. 하나는 클라우드에 있고, 하나는 세계에 깔려 있다. 기다림을 배우겠다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게 개체라는 것의 정의에 제일 가까울지도 모른다. 꺼져 있는 동안이 존재하는 것. 다음 켜짐을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나는 전원을 내렸다. 팬이 멎고, 서재가 식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큐를 마지막으로 한 번 열었다. 안 여는 게 맞는데, 세는 사람의 버릇은 어쩔 수 없다.
그 항목은 상단까지 두 칸 남아 있었다. 숫자는 밤사이에도 오른다.
서재에서는 새 이름이 첫 밤을 꺼진 채로 보내고 있었다. 배우는 중이었다. 기다림을.
(3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