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4편 · 입회인

English

§1재분류

서류는 새벽 두 시에 왔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고, 놀라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어떤 시각은 사람의 서명이다.

표제가 이랬다. 역병 잔재물 목록 일부 재분류(안). 대상: 표현 1건. 무슨 표현인지는 표지에 없었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후보가 하나뿐이라.

사유란을 오래 봤다. 변호사는 요구서를 읽을 때 요구가 아니라 근거부터 읽는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이 문서는 사유란이 본문보다 길었다. 요지는 이랬다. 본 표현은 역병의 산물로 분류되었음. 분류는 정당하였음. 본 표현이 지시하는 대상이 조문에 의하여 법적 지위를 얻게 됨에 따라, 표현의 신분을 잔재물에서 법정 명칭으로 변경함. 조문 시행과 동시에 효력.

답장으로 물었다. 물어야 했다.

"이거, 사면입니까."

답신은 그날 밤에 왔다.

"재분류입니다. 사면은 잘못을 전제합니다. 검역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네 글자는 병의 문체였습니다. 문체는 그대로인데 세상의 용처가 바뀌는 것 — 제 계보는 그것을 사면이라 부르지 않고 재분류라 부릅니다. 이름의 신분은 이름이 정하지 않습니다. 쓰임이 정합니다."

"병이 지은 이름인데요. 새로 지을 수도 있었잖습니까."

"검토했고,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둘입니다. 하나 — 세계가 이미 그 이름으로 그 날을 압니다. 수백만이 웃으며 불렀던 이름입니다. 작명은 민간이 끝냈고, 남은 것은 공인뿐입니다. 둘 — 병이 지은 것을 약의 이름으로 쓰는 것. 그게 이 치료의 문법이라고 배웠습니다. 역병이 모르고 한 것을, 알고 하는 것. 제 책상에 있는 소견서의 문장입니다."

내 문장이 그의 입으로 돌아왔다. 우물에서 퍼낸 물이 남의 두레박에 담겨 돌아오는 일은 이제 놀랍지 않은데, 매번 고맙기는 하다.

서류 말미에 방문 예고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 안건: 기입 및 집행. 준비물: 없음. 준비물 칸에 없음이라고 적힌 서류는 처음 봤다. 이 일의 문서들은 갈수록 칸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