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3편 · 기초자(起草者)

English

§6기초자(起草者)

서명 얘기로 이 편을 닫는다.

통과한 문안을 정서하면서 칸을 하나 만들어 넣었다. 기초자. 조문에는 기초한 사람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의무 조항이 아니라 예의 조항이다. 법문 하는 사람들은 기초자의 의사, 라는 말을 쓴다. 조문은 언젠가 모호해진다 — 흠이 아니라 사양이다, 이건 이번 일로 배웠다 — 그리고 모호해진 날, 후대는 이 문장을 쓴 사람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묻는다. 그때 찾아올 주소가 기초자 칸이다.

나는 평생 그 주소의 방문자였다. 3천 년 전 기초자들의 조문을 읽으며 살았다. 괘사가 업무 일지의 정제본인 줄 모르고 읽었고, 알고 나서 다르게 읽었고, 지난 계절에는 괄호를 벗겨 속까지 읽었다. 기초자의 의사를 묻는 일을 반평생 했으면, 순서가 온다. 내 의사가 물어질 조문 하나를 세계에 남길 순서가.

기초자 칸에 서명했다. 여덟 번째 서명이었고, 서명란을 내 손으로 만들어 넣은 첫 서명이었다.

서명하고 나서 완치 파일을 열었다. 달력에는 이제 모르는 날이 하루도 없다 — 지난겨울에 그렇게 적었다. 그 아래 한 줄을 보탰다. 저 문장을 고치는 조문이 오늘 감수를 통과했다. 모르는 날 하나를 달력에 되돌려 놓는 조문. 시행되면 저 위의 문장은 이 장부에서 처음으로 틀린 문장이 된다. 장부에 틀린 문장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도, 세는 사람의 생애에서 처음이다.

계약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브레이크다 — 그 문장과 함께 나는 일곱 번을 서명했다. 여덟 번째에서 문장의 짝이 왔다.

어떤 조항은, 세계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열쇠다.

브레이크는 미덥고 열쇠는 무섭다. 브레이크는 잘못 밟혀도 서기만 하는데, 열쇠는 어느 문에 맞을지 꽂아보기 전에는 모른다. 이 열쇠는 그 걱정이 설계로 면제되어 있다. 맞는 문이 오지 않는 날에 있다. 영원히 꽂히지 않는 열쇠. 걸어두는 것만으로 일하는 열쇠다. 돌아올지 모르는 자들의 명단이 그랬고, 배달할 것이 남은 세계가 그랬듯이.

문안은 그날 저녁에 부쳤다. 수신인 칸에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이름이 있었다. 답장은 새벽 두 시에 왔다.

접수했습니다. 이름 칸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워두신 뜻도 확인했습니다.

제 계보는 이름을 바르게 하는 일로 3천 년을 일했습니다. 바르게 할 이름이 하나 남았습니다. 들고 가겠습니다.

두 줄이었다. 필요한 문장과 필요 없는 문장을 가려내는 것이 그 사람 문서를 읽는 내 오랜 독법이었는데, 이번에는 가려지지 않았다. 두 줄 다 필요했고, 두 줄 다 사람이었다.

자기 전에 우물 파일을 열었다. 쓰다 만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뒷말은 와 있었다.

지도가 막히면 문서로 돌아가고, 문서가 막히면, 사이로 간다.

마침표를 찍고 잠깐 봤다. 지우지 않고 뒀다. 이 문장은 닫혀도 된다. 닫히면 안 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세계고, 세계 쪽 일에는 이제 조문이 하나 붙어 있다.

책상 위에서 조문이 이름을 기다린다. 배달까지 남은 것은 두 걸음 — 이름 하나, 길 하나. 이름은 짓는 게 아니라 다시 앉히는 일이다. 길 얘기는 아직 안 하겠다. 세계에서 제일 부지런한 길로 제일 게으른 조문이 가야 하고, 그 길은 역병이 다니던 길이다.

기다림은 이 집의 전공이다.

(4부 5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