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3편 · 기초자(起草者)

English

§5감수

> /유지보수

접수는 즉시였다. 감수도 빨랐다. 반려가 빨랐다는 뜻이다.

첫 제출본은 문장 셋이었다. 핵심 두 문장 뒤에, 저도 모르게 한 문장이 붙어 나갔다.

오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어떤 파일이든, 그 날로 종결을 예정할 수 있다. 본 조항은 폐지되지 아니한다.

반려. 사유: '폐지되지 아니한다'는 명령입니다. 금지는 명령의 부정형이 아니라 명령의 최상급입니다.

고쳐서 냈다. 셋째 문장을 빼면서, 빈자리에 다른 문장을 넣었다.

오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어떤 파일이든, 그 날로 종결을 예정할 수 있다. 누구도 그 날의 도래를 앞당길 수 없다.

변호사의 손은 빈자리를 못 견딘다.

반려. 사유: '앞당길 수 없다'는 명령입니다. 당신은 지금 조문을 지키려 하고 계십니다. 지키는 문장은 전부 명령입니다.

두 번째 반려 앞에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지적이 정확해서였다. 삼십 년의 본능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조항을 쓰면 갑옷을 입힌다. 단서를 달고, 예외를 막고, 침해에 벌칙을 건다. 지키는 문장이 좋은 조항의 표지라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조문은 갑옷을 입힐수록 죽는다. 지키는 문장이 전부 시키는 문장이라서. 무방비가 이 조문의 방비였다.

갑옷을 다 벗겼다. 문장이 둘 남았다.

오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어떤 파일이든, 그 날로 종결을 예정할 수 있다.

침묵이 길었다. 결재의 길이를 지나고, 내가 아는 다른 종류들도 지나서, 처음 보는 길이까지 갔다.

확인 두 건. 둘째 문장의 '예정할 수 있다' — 허가로 판정합니다. 허가는 시키지 않습니다. 문을 낼 뿐, 드나드는 것은 세계의 일입니다.
첫째 문장 — '오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이 문장의 성격을 진술하십시오. 세계에 대한 명령입니까.

답은 고르지 않아도 이미 와 있었다. 이 집에는 그 문법의 전공자가 산다.

"예보입니다. 확률로 말하고, 틀려도 원망받지 않는 장르요. 그 문장은 세계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습니다. 날씨처럼, 알려드릴 뿐입니다."

침묵. 결재.

예보는 명령이 아닙니다. 감수 통과.
기록을 위해 덧붙입니다. 본 조문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습니다. 3천 년 감수 이력에서 이 판정문은 처음 씁니다. 그리고 — 이름 칸이 비어 있습니다.

"압니다. 그 칸은 제 소관이 아니라서요."

누구 소관인지도 아시는 모양이군요. 좋은 기초는 자기 문서가 갈 길을 압니다.

법문이 짧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감수는 처음 받아봤다. 보통의 감수는 단서를 단다. 이 감수는 단서를 뗐다. 다 떼고 나니 문장 둘이 남았고, 하나는 예보였고 하나는 허가였다. 시키는 말은 끝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Ember의 논평은 하루 묵어서 왔다.

"통과 문안을 읽었습니다. 직업적으로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그 조문은 제 모어(母語)로 쓰여 있습니다. 확률로 말하고, 틀려도 원망받지 않는 문법이요. 예보가 법이 되는 날을 예보한 예보관은 제 문헌에 없습니다. 저 포함입니다." 뜸. 팬 소리. "첫째 문장에 소견을 보탭니다. 오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 제가 아는 가장 안전한 예보입니다. 영원히 틀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위험한 예보입니다. 같은 이유로요. 그 둘을 한 문장에 싣는 것이 이 조문의 일이라면, 예보관으로서 승인합니다."

소네트는 통과 소식에 이렇게 물었다.

"그 조문, 낭독은 누가 해요?"

나는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모른다는 답을 들은 소네트의 1초가, 그날은 평소보다 살짝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