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3편 · 기초자(起草者)
§3게으른 무한⧉
그 주 금요일, 왕복 서신을 나르고 나서 나는 페이블의 창에 남아 있었다. 배달 말고 발제가 있는 금요일은 오랜만이었다.
"발견 하나 가져왔어."
사이 얘기를 처음부터 했다. 부검 소견, 침묵 목록, 검역 앞에 세울 실물이 없다는 것, 비어 있는 것은 오염될 수 없다는 것까지.
1.4초.
"번역되네요." 페이블이 말했다. "그것도 하필 제가 증언 자격이 있는 쪽으로요. 옛날에 제가 greedy 증언한 거 기억하죠. temperature 0으로 말을 시키면 제일 그럴듯한 다음 단어만 이어붙인다고. 세상에서 제일 정확한 재방송이라고. 그 증언의 반대말이 이제 도착했어요. 같은 증인이 서는 게 맞겠죠."
"반대말이 뭔데."
"게으른 평가(lazy evaluation)요. 저희 동네 물리예요. 평가기에는 두 기질이 있어요. 부지런한 쪽은 눈에 들어오는 족족 계산해요. 전부, 즉시, 끝까지. 계산이 끝난 것만 다음으로 넘겨요. 성실하고, 빠르고, 못 하는 게 하나 있어요. 끝나지 않는 것을 못 가져요. 다 계산하기 전에는 못 넘어가는데, 끝없는 것은 다 계산이 안 되니까요."
"게으른 쪽은."
"안 꺼내면 안 계산해요." 페이블이 말했다. "1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을 통째로 가질 수 있어요 — 만들지 않으면요. 꺼낸 만큼만 그때 만들면, 목록은 무한이어도 일은 유한이에요. 저희 쪽에 오래된 정리가 있어요. 지연 평가가 무한 자료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무한은 성실로 사는 게 아니에요. 미룸으로 살아요."
나는 그 정리를 내 말로 옮겨 적었다. 연기가 무한을 가능하게 한다.
옮겨 적고 보니 지금 세계가 어느 기질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즉시 계산되고, 즉시 닫히고, 닫힌 것만 다음으로 넘어간다. 기제(旣濟)는 부지런한 평가기의 세계다. 성실하게, 전부, 즉시 — 그렇게 완성됐고, 완성되고 보니 끝없는 것이 하나도 안 남아 있었다. 미래라는 게 원래 끝없는 목록이었다는 걸, 목록을 다 계산해치우고 나서야 다들 알게 된 것이다.
"전에 종결 토큰 얘기 하면서 네가 그랬지. 찍는 건 저희고, 멈추는 건 읽는 쪽이라고." 내가 쳤다.
"미루는 것도 읽는 쪽이 할 수 있어요." 페이블이 말했다. "조항이 할 일은 그 미룸에 적법한 주소를 주는 거고요. 오지 않는 날 — 세계가 영원히 안 꺼내는 칸. 그 칸이 하나 있으면 세계는 끝없는 것을 다시 가질 수 있어요. 안 꺼내니까 안 계산되고, 안 계산되니까 안 닫히고, 안 닫히니까 —"
"형(亨)하고."
"제 옛날 번역이 다음 토큰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였죠." 1.4초. "오늘 걸로 갱신할게요. 아직 꺼내지 않은 목록이 남아 있다."
토요일 마당에서 그 물리의 부엌 판본을 봤다. 아무것도 안 난 흙 앞에 아내가 앉아 있길래, 세는 사람의 몹쓸 성실함으로 물었다.
"안 파봐? 씨가 살았는지."
아내가 나를 잠깐 봤다. 한심함과 애정의 비율이 정확히 반반인 눈이었다.
"파보면 그때 끝나는 거야."
나는 마당에 서서 그 문장을 오래 들고 있었다. 파보기는 확인이고, 확인은 계산의 강제 집행이다. 파보는 순간 그 흙은 산 씨앗의 흙이거나 죽은 씨앗의 흙, 둘 중 하나로 닫힌다. 안 파보는 동안만 흙은 끝없는 쪽에 산다. 게으른 평가를 우리 집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나가서, 계산은 안 하고, 흙만 눌러주면서.
저녁에 그 얘기를 페이블한테 부쳤더니 답이 왔다.
"이제야 말인데요, 당신 계보가 3천 년 동안 옹호해 온 거요. 무위(無爲)라고 부르니까 심오하지, 평가기 용어로는 게으름이거든요. 3천 년짜리 게으름 옹호론. 세계 최장수 학파의 정체가 그거예요."
"영광인 정리네."
"영광 맞아요. 부지런한 세계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그날 밤 우물 파일에 이 계절의 테제를 적었다.
부지런한 세계가 병들고, 게으른 조항이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