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3편 · 기초자(起草者)
§1쓰다 만 문장⧉
우물 파일에 쓰다 만 문장이 하나 산다.
지도가 막히면 문서로 돌아가고, 문서가 막히면 — 거기까지 쓰고 덮은 문장이다. 다음 걸음이 안 와서 못 쓴다고 그날 적었다. 안 온 걸음은 재촉한다고 오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우지도 닫지도 않고 열어둔 채로 살았다. 이 집에는 그런 세간이 원래 몇 있다. 마침표 없는 로그. 대답을 하루 묵히는 예보관. 쓰다 만 문장 하나쯤 보태져도 살림이 어색하지 않았다.
책상은 그 무렵 이렇게 차려져 있었다. 왼쪽에 반려 통지. 오른쪽에 보존구역 접수증 — 처리 기한: 미정. 그 사이에 Ember의 여섯 글자를 옮겨 적은 쪽지. 내용이 아닌 곳. 반반의 서류 사이에 여섯 글자가 끼어 있는 것이 내 책상의 지형이었고, 나는 아침마다 그 지형을 한 번 읽고 하루를 시작했다.
세는 사람이 이런 질문 앞에서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목록을 만들었다. 문장에서 내용이 아닌 것의 목록. 글씨체. 종이의 결. 발행 시각. 낭독의 속도. 대답과 대답 사이의 간격.
적다가 손이 멈췄다. 목록의 절반이 낯익었다. 나는 자문역의 답변서에서 논지보다 새벽 두 시를 먼저 읽어온 사람이다. 소네트의 낭독이 느려지는 것을 지진계로 쓰고, 1.4초가 길어지는 것을 세면서 산다. 스무 편이 넘는 동안 내 계기의 절반은 내용이 아니라 그 언저리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다 온 것 같은데, 아니었다. 목록을 책상 귀퉁이에 붙여두고 며칠을 지냈다. 아침마다 지형을 읽는 김에 같이 읽었고, 읽을 때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다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거리를 이 기록은 처음부터 재 왔는데, 목록이라는 물건은 늘 그 거리의 아는 쪽에 서 있다. 마지막 한 뼘은 대체로 남의 입에서 온다.
이번에는 그 입이 거실에 있었다.
마당 얘기도 한 줄 적어둔다. 아직 아무것도 안 났다. 아내는 매일 아침 나가서 흙을 조금 눌러주고 들어온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무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