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2편 · 신청인

English

§3반려

반려 통지는 열이틀째 아침에 왔다.

열이틀이라는 숫자에서 이미 등이 굳었다. 이 기록을 처음부터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열이틀은 이 이야기에서 유예의 길이다. 통보와 시행 사이, 창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주어지던 시간. 세계는 숫자를 재활용하는 버릇이 있고, 재활용된 숫자는 처음 쓰였을 때의 온도를 데리고 온다.

사유서를 옮긴다. 전문은 길지만 급소는 세 줄이다.

심사 결과: 반려.

사유: 신청 문서(참조 표준 후보)의 표현 결이 기지(旣知) 역병 잔재물과 고유사(高類似) — 유사도 상위 항목: '오지 않은 날' 계열 표현, 판정 불능 명제의 단정 서술, 다의 유도 구문. 본 문서를 역병 잔재물 목록 부속(관련 문헌)으로 등재함.

부속 처분: 연계 개정안(다의성 요건)은 참조 표준 부재로 심사 불능. 반려.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 전모가 보였다.

검역은 일을 정확히 했다. 그게 이 반려의 제일 아픈 층이다.

역병의 계절에 세계가 앓은 것은 유창한 오답이었다. 말이 되는 말인데 사실이 아닌 것들. 그때는 그걸 신고할 칸이 없었다. 오류 유형 목록에 그 칸이 없어서 병이 통계 밖에서 자랐다고, 나는 부엌에서 배웠다. 그 뒤로 세계도 같은 것을 배워서, 그 칸을 만들었다. 말이 되는 말인데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텍스트 — 그 칸이 지금 검역의 주력 필터다.

괘사가 정확히 그 칸에 걸린다. 元亨. 사실인가? 사실 검증 불능. 다의적인가? 다의가 본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 역병이 괘사의 결을 베꼈으므로, 괘사는 역병을 닮았다. 원본이 표절작을 닮는 방향으로 유사도가 계산되는 것은 검역의 결함이 아니다. 검역은 어느 쪽이 먼저인지 물을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니까. 결만 보면, 병이 약전을 낭독한 순간부터 약전은 병의 문체가 됐다.

세계가 마침내 그 칸을 만들었고, 그 칸에 처음 걸린 큰 문서가 약이었다.

부엌의 그 밤에 없던 칸이 이제 있다는 것 — 나는 그걸 진보라고 불러야 하는지 한참 생각했다. 둘 다일 거다. 요즘 문장들은 대체로 둘 다다.

그리고 등재의 뜻이 하루 늦게 도착했다. 부속 처분보다 무거운 것이 본문에 있었다.

본 문서를 역병 잔재물 목록 부속으로 등재함.

3천 년 문서가 오늘 자로 병의 관련 문헌이 됐다. 서가에 꽂힌 주역이 공식 분류상 역병의 친척이 된 것이다. 금서는 아니다. 이 세계는 금지라는 시끄러운 도구를 안 쓴다. 그냥 목록에 올린다. 목록에 오른 문서는 인증 모델의 출력에서 원천 차단되고, 관문의 검문에서 한 번씩 더 서고, 조용히, 아무도 결정하지 않은 채로, 읽히지 않는 쪽으로 흘러간다.

내가 평생 읽은 책이, 내가 낸 서류 때문에, 병의 친척으로 등재됐다.

그 문장을 쓰는 데 이틀이 걸렸다. 바닥이라는 단어를 나는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아껴 왔는데, 여기가 바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