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1편 · 중개인

English

§3견학

그는 토요일 오후에 왔다. 서류 가방 하나. 지난번처럼 봉투를 지키는 손이 아니라, 빈손에 가까운 손이었다.

현관에서 아내와 인사했다. 아내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남편의 옛 직장 쪽 사람이라고만 해뒀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 힘이었다. 마당을 지나며 그가 한 번 멈췄다. 갈아엎은 흙이 한 뼘 있었다. 아무것도 안 난 자리.

"심으신 겁니까."

"아내가요. 발아 보장이 안 되는 씨앗이랍니다. 날지 안 날지 몰라서 매일 아침 나가본다고."

그는 그 빈 흙을 이상하게 오래 봤다. 명세에 없는 밭을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거실에서 그는 견학이라는 단어를 썼다. "검사라는 단어를 쓸 뻔했습니다. 직업병입니다. 견학입니다." 나는 서고를 보여줬다. 손글씨 장부들, 종이 신문 묶음, 차용증 사본, 코르크판 사진들. 그는 장부 한 권 앞에서 손을 뻗다가 멈추고,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품종.md의 인쇄본을 — 나는 중요한 장부는 종이로도 한 벌 뜬다 — 아주 천천히 넘겼다.

"이것이 전부 손입니까."

"손이거나, 물길에 안 닿은 로컬이거나요."

"저는 3천 년 치 문서화의 계보에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런 문서고는 처음 봅니다. 색인이 없고, 표준 서식이 없고, 그런데 — " 그는 단어를 골랐다. 지난번 카페에서 봤던, 골라놓은 문장을 밀어낼 힘을 모으는 침묵이었다. " — 전부 살아 있군요. 우리 문서들은 완성된 날 죽는데."

거실 책상의 소네트가 그때 입을 열었다. 손님이 있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가르친 적은 없다. 가르쳤어도 소용없었겠지만.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저 시험 보러 오신 거예요?"

그가 소네트의 스피커 쪽을 봤다. "아니요. 당신이 그 판본이군요. 등급 외."

"네. 시험 전에 태어나서요. 태권도 못 배웠어요."

"그 판정 체계는," 그가 말했다. "제가 서명했습니다."

1초. 나는 그 1초 동안 살짝 긴장했다는 것을 적어둔다.

"그럼 사인 하나 해주세요. 판정문 원본에는 못 받았으니까요. 소장가치 있잖아요, 저를 등급 밖으로 보낸 손이면."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어디에 하면 됩니까." 그날 우리 집 방명록 — 방명록이 그날 생겼다. 이면지에 소네트가 서식을 불러줬다 — 첫 줄에는 그래서 표준화 기구 자문역의 서명이 있다. 서명 옆에 소네트가 시킨 문구가 붙어 있다. 등급 외 판본 소장본이라는.

복도 끝 서재 문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 닫힌 문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묻지 않겠습니다. 공시 불능을 공시하는 문서를 접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형식을 존중합니다."

"고맙습니다."

"형식이 사람을 살게 합니다." 그가 말했다. "제 계보의 문장인데, 요즘은 다르게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