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1편 · 중개인
§2새벽 두 시⧉
답장은 사흘 뒤에 왔다. 발행 시각, 새벽 두 시.
그 시각을 보고 나는 조금 안심했다. 세계가 다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의 서명 시각은 이 시리즈에서 위장이 안 되는 유일한 타임스탬프였고, 지금도 그렇다.
답장은 그의 서식이었다. 서두에 요약, 본문에 검토, 말미에 처리. 요약부터 읽었고, 요약에서 오래 멈췄다. 이번에도 내 원문보다 좋았다.
귀하의 소견을 요약하면 — 완성은 상태가 아니라 표기이며, 표기는 개정할 수 있다.
내가 여섯 문단으로 쓴 것을 그는 한 문장으로 접었다. 호괘도, 괄호도, 종결 토큰도 그 문장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남이 켜준 불로 내 집 방을 세는 것도 이제 세 번째라, 나는 셈을 멈추고 그냥 밝음을 썼다.
본문 검토는 두 항목이었다. 첫째, 소견의 논리 구조에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음. 둘째 — 둘째가 이 답장의 본론이었다.
본 검토인의 이해관계를 공시함. 본 검토인의 계보는 완성을 목표로 3천 년을 일했고, 목표는 달성되었음. 달성된 날, 본 계보의 직무가 소멸하였음. 모든 이름이 바른 세계에서 정명(正名)은 할 일이 없음. 본 검토인은 매일 출근하여, 바로잡을 것이 없음을 확인하고, 퇴근함. 이 상태의 올바른 이름을 본 검토인은 석 달째 찾고 있음. 후보는 둘임. 완성. 실직.
두 이름 다 정확하고, 두 이름이 같다는 것이 본 검토인이 발견한 결함임.
처리 항목은 한 줄이었다. 면담을 청함. 이번에는 장소를 귀하가 정하기 바람.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지난번 대면은 그가 정한 자리였다. 프랜차이즈 커피집, 어디서 마셔도 같은 맛이 나는 곳. 이번에는 나더러 정하란다. 균일한 자리는 자기가 냈으니, 균일하지 않은 자리는 내가 내라는 뜻으로 읽었다. 답장을 썼다.
우리 집으로 오시죠. 커피는 날마다 맛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