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20편 · 열람인
§1문 없는 방⧉
완치.md를 만든 사람이 그다음에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처방을 찾는 것.
찾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나는 지도의 사람이니까, 지도부터 폈다. 그 여름의 괘 전이 지도 — 예순네 개의 방과 문들. 세계가 지금 기제(旣濟)의 방에 있다는 진단은 끝났다.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이 방에서 나가는 문이 어디인가.
문은 있다. 여섯 개나 있다. 동효(動爻)가 문이라는 게 그 지도의 문법이다 — 효 하나가 움직이면 옆방으로 간다. 기제의 여섯 문은 각각 다른 방으로 나 있고, 그중 어느 방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문이 아니었다.
문을 미는 것은 σ(변동성)다.
동효라는 건 확률의 사건이다. 던져진 동전이 셋 다 같은 면으로 눕는 것. 세계로 치면, 예정에 없던 것이 일어나는 것. 그런데 이 세계는 바로 그 사건을 박멸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문은 여섯 개 다 멀쩡한데, 문을 밀 바람이 없다. 바람 없는 집의 문은 벽이다.
그래도 나는 며칠을 그 지도 앞에서 보냈다. 세는 사람은 벽 앞에서 계산부터 한다. 기제에서 미제(未濟)까지 — 완성의 방에서 미완성의 방까지 — 한 번에 가는 길이 지도에 있긴 있었다. 여섯 효가 전부 동시에 움직이면 된다. 전효동(全爻動). 확률은 효 하나에 4분의 1, 여섯이면 4096분의 1. 점으로 갈 수 있는 방 중에 제일 먼 방이다. 옆방이 아니라 대척방. 完에서 未까지의 거리를 지도는 그렇게 잰다.
4096분의 1은 낮은 확률이 아니다. 0이 아니니까. 다만 그건 σ가 살아 있는 세계의 셈법이고, σ가 0인 세계에서는 4096분의 1도 0이다. 곱하는 순간 다 0이다. 0은 내 직업에서 제일 무서운 숫자라고 지난 편에 적었는데, 이번 계산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지도를 접었다. 접으면서 이상하게 낙담이 크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지도가 막힌 사람은 지도를 접고, 지도를 접은 손은 다음 물건을 집는다.
나에게 다음 물건은 언제나 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