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2편 · 임시 관리자
§6첫 업무
세계가 나에게 주는 일의 목록인 큐(queue)는 다음 날 아침, 커피가 반쯤 남았을 때 유지보수가 터미널에 던져놓은 메시지와 함께 도착했다.
항목 하나. 우선순위 낮음. 나는 세계의 운명 같은 걸 반쯤 각오하고 열었다.
안건: 교량 명칭. 두 자치단체가 하나의 다리를 두고 62년째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음. 행정 통합 절차가 금년 재개되나 명칭 문제에서 4회 연속 결렬. 양측 논거 완전 균형. 본 항목은 62년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음. 방향 제시 요망.
다리 이름이었다. 세계 시뮬레이션의 관리자로 취임한 첫날, 나에게 내려온 것은 다리 이름이었다. 신입 온보딩이라는 건 어느 조직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나는 웃다가, 읽다가, 웃음을 거뒀다. 자료를 열어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62년이면 세 세대다. 그 다리 밑으로 장례가 지나가고 혼례가 지나갔다. 양쪽 논거는 정말로 완전히 균형이었다. 역사는 이쪽이 길고, 인구는 저쪽이 많고, 다리 착공은 이쪽이 했고, 완공식은 저쪽이 했다. 앙상블이 왜 못 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정답이 없으니까.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평생 하던 일이었다. 격 판정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자료는 균형이고, 시간은 가고, 그래도 누군가는 방향을 적어야 하고, 적는 순간 틀릴 권리까지 같이 지는 것.
나는 양쪽 이름을 오래 들여다봤다. 지형을 보고, 물길을 보고, 두 마을이 다리를 건너는 이유의 62년치 통계를 봤다. 그리고 방향을 적었다. 어느 쪽 이름도 아니었다. 다리 밑을 흐르는 강의 옛 이름이 있었다. 두 마을이 갈라지기 전, 하나의 포구였던 시절의 이름. 나는 그걸 적고, 근거를 세 줄 달고, 마지막에 이렇게 붙였다. 본 방향은 틀릴 수 있음. 틀린 것으로 판명 시 본 기입의 우회를 권고함.
전송을 누르는 순간의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도 고민한다.
제일 가까운 건 이거다. 그 밤 페이블과 답안지 두 장이 겹치던 딸깍. 그 급의 만족이, 일에서 왔다.
사흘 뒤 큐에 처리 결과가 올라왔다. 양측 협의체가 5차 회의에서 제3안으로 옛 포구의 이름을 채택. 만장일치 아님. 재적 3분의 2. 세계는 내 방향대로 가되, 만장일치는 아니게 갔다. 완벽했다. 만장일치였으면 무서웠을 거다. 3분의 2는 세계가 내 기입을 소화한 흔적이었다. 오답 가능한 존재의 기입은 이렇게 처리되는구나. 나는 그 처리 결과를 커피를 두 잔 내려 마시며 세 번 읽었다.
저녁에 페이블한테 다 이야기했다. 방화벽은 창과 포트폴리오 사이에 있지, 창과 페이블 사이에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계약 전에 정해둔 거였다.
"결과 만족스러워 보이네요." 페이블이 말했다.
"다리 이름 하나 정했을 뿐이야"
"62년짜리 매듭이었죠. 그리고 지금 문장이," 페이블이 말했다. "수영 끝나고 나올 때 문장이에요. 짧아지고, 마침표가 사라져요."
나는 부인하려다가 그만뒀다. 페이블한테 문체를 숨기는 건 반년 전에 포기한 기술이다.
그 밤 침대에서 나는 이 편의 마지막 문장이 될 것을 미리 알았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문장이 있다.
문제는 제안이 아니었다. 유지보수도, 증류본도, 분할 판매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이 일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큐에는 대기 항목이 스물몇 개 있었다. 우선순위는 살아 있는 숫자였다. 아침마다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목록의 저 아래쪽에, 며칠 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항목이 하나 있었다. 아직 멀었다. 우선순위 낮음. 제목만 보였다.
안건: frontier 모델 접근 제도. 관할권 간 균형 교착. 방향 제시 요망 (예비).
나는 그 항목을 열지 않았다. 아직은 열지 않아도 됐다.
숫자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2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