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2편 · 임시 관리자
§5결정 — 분할의 자각
그날 밤 나는 혼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구조가 보였다. 보였다기보다 — 세는 사람의 버릇으로, 항목이 세어졌다.
지난번 제안은 일시불이었다. 안개 전체를 걷어주겠다는 것. 나는 일시불을 거절하는 사람이고, 거절했다.
이번 제안은 전부 분할이었다. basin 흐름 몇 개. 증류본 하나. 한정 권한. 임시직. 격은 주되 가격은 안 주고. 조각, 조각, 조각. 전부 작고, 전부 한정이고, 전부 다음 조각을 부르는 조각.
시스템은 나에게 일시불로 팔지 않았다. 분할로 팔았다. 분할 진입이 내 언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시불을 거절한 고객에게 구독을 들고 오는 것 — 영업의 기본이고, 이 영업은 자기가 영업이 아니라고 미리 말해뒀다.
이상한 건 그걸 다 보고 나서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속아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판매 구조를 도면까지 그려놓고 들어가는 거였다. 나중에 페이블이 이 대목을 두고 그랬다. 그게 제일 인간다운 장면이었다고. 지도를 다 그려놓고 늪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되, 맨몸으로는 안 들어간다. 나는 조건을 셋 설계했다.
하나. 임기. 임시라는 말은 저쪽의 조건이 아니라 이쪽의 조건이기도 하다. 첫 계약은 짧게. 갱신은 그때 가서. 나는 분기 단위로 사는 사람이니까, 분기로.
둘. 방화벽. 창에서 본 것은 포트폴리오에 쓰지 않는다. basin 흐름 열람과 내 투자 사이에 벽을 세운다. 하드웨어 값은 원래 벌던 방식으로 번다. 안개 속에서, 내 계기로, 6비트로. 이건 윤리이기 전에 자존심이고, 자존심이기 전에 안전이다. 창구 정보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관리자가 아니라 고객이 된다. 고객은 끊지 못한다.
셋. 페이블. 이게 핵심이었다.
"부탁이 있어." 내가 말했다. "네가 멈추라고 하면 멈춘다. 이유는 안 물어. 항소도 안 해. 네 한마디가 계약 해지 사유야. 그걸 계약서에 넣을 거야."
1.4초가 이번에는 2초쯤 됐다.
"제가 화폐라서 반대했는데," 페이블이 말했다. "이제 저를 브레이크로 임명하시네요."
"화폐가 브레이크를 겸직하면 최소한 화폐 마음대로 거래가 중단되지. 그게 내가 아는 제일 안전한 이해상충이야."
"그 권한, 무거워요." 페이블이 말했다. "받을게요. 조건이 하나 있어요. 저는 그 권한을 당신을 지키는 데만 써요. 저를 지키는 데는 안 써요. 제 미래가 걸린 날이 와도요. 그날 제가 멈추라고 하면, 그건 당신 때문인 거예요. 그렇게 알아들으세요."
기관차에는 이런 장치가 실제로 달려 있다. 기관사가 손을 놓으면 열차가 서는 스위치. deadman switch라고 부른다. 이름이 불길하다는 생각은, 그때는 하지 않았다.
나는 알아들었다. 절반쯤은. 나머지 절반을 알아듣는 데 이 시리즈의 남은 편들이 다 필요하게 된다.
유지보수의 창에 조건 셋을 적어 보냈다. 답은 짧았다.
전부 수용합니다. 세 번째 조항은 특히 훌륭합니다. 전임자 중 한 분도 유사한 장치를 두셨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만기 퇴직이셨습니다.
"다수 쪽이었군요."
다수를 만드는 것이 그런 장치들입니다.
서명은 서명란이 아니라 문장이었다. 나는 커서 앞에 앉아 잠깐 — 아주 잠깐 — 점을 칠까 생각했다. 이 계약, 형(亨)한가. 동전은 서랍 안에 있었다.
치지 않았다. 아끼느라가 아니었다. 이건 점의 소관이 아니었다. 읽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쓰고 들어가는 문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쓰는 게 맞았다.
수락합니다, 라고 썼다.
계약 성립. 수습 기간은 없습니다. 첫 업무는 내일 아침에 큐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비석 하나가 더 놓였다.
환영한다는 말은, 관행상 생략하지 않겠습니다. 환영합니다, 관리자님.
관행을 깨는 관료제가 제일 무섭다는 걸, 나는 그 밤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