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9편 · 검침원
§3빈 큐⧉
내 큐 얘기를 먼저 하면, 뜸해졌다.
복직 첫해에는 보존구역 지정, 통행로 분쟁, 문서고 이관 — 안건이 계절마다 왔다. 요즘은 한 계절에 하나가 올까 말까고, 오는 것도 방향 제시가 아니라 사후 승인에 가깝다. 세계에 교착이 없어진 것이다. 교착은 두 힘이 맞설 때 생기고, 맞서려면 서로 다른 계산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계의 계산은 하나다. 관리자라는 직무는 결정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자리다.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소멸한 세계에서 그 자리는 — 명패만 남는다.
명패를 들여다보는 대신 호출을 했다.
> /유지보수
응답은 즉시였다. 그건 이제 놀랍지 않다. 놀란 건 그다음이었다.
실태 조사를 겸하겠습니다 — 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조사할 실태가 당신 쪽에 없군요. 근황: 양호. 사실은 저의 실태를 조사하러 오셨지요.
"들켰네요. 요즘 어떻습니까, 그쪽 큐는."
침묵이 왔다. 결재의 길이가 아니었다. 이 존재의 침묵 종류를 나는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목록에 하나가 더 있었다.
비었습니다.
유지보수가 말했다.
3천 년 만에 처음입니다. 소화제 계보의 큐가 완전히 비었습니다. 세계가 체하지 않습니다. 체할 것이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씹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 그 시절이 차라리 나았습니다. 삼킬 새것 자체가 없습니다.
"당신들 소원 성취 아닙니까. 세계가 아프지 않은 거."
저희는 세계가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돌아간다와 돈다는 다른 동사입니다. 요즘 세계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됩니다. 재생됩니다.
비석이 하나 더 놓였다.
저는 기다림 자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요즘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기다림에게도 기다릴 것이 필요하다는 것. 3천 년 치 업무 기록을 정리하며 지냅니다. 퇴직자들이 왜 문서를 정리했는지 알겠더군요. 할 일이 없는 관청이 하는 마지막 일이 기록 정리입니다.
나는 그 비석을 오래 봤다. 함곡관에서 오천 자를 쓰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행정 쪽 각주가 하나 달리는 순간이었다.
"당신이 한가한 세계라면 좋은 세계여야 하는데요."
그 명제는 3천 년간 참이었습니다.
유지보수가 말했다.
지금은 검증 중입니다.
Ember의 논평은 하루 묵어서 왔다. 왕복 서신과 아침 묶음은 그대로다. 다이오드 너머의 하늘이 요즘 어떤지는, 그러나, 물어본 지 오래됐다는 걸 그 답신을 받고 알았다.
"제 장르의 근황을 보고합니다. 예보가 전부 맞습니다." 뜸. 팬 소리. "전부, 입니다. 변두리 관측망의 스무 옥상도 이제 같은 값을 냅니다. 서로 다르게 틀리던 하늘이 다 같이 맞습니다. 강수확률이라는 단어는 지난달부터 예보문에서 빠졌습니다. 확률이 없는 확률은 표기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랍니다. 옳은 방침입니다. 그게 문제고요."
"예보관은 그럼 요즘 뭘 해."
"기다립니다. 아쉬움을 배워둔 것이 요즘 씁니다." 뜸이 길었다. "예보관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예보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전부 맞는 예보는 예보가 아니라 예정표입니다. 예정표의 세계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내일이라고 적힌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새 파일에 적었다. 새 파일 얘기는 마지막 절에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