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9편 · 검침원
§1기록된 날짜⧉
역병이 끝난 날짜는 누구나 댈 수 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이 기록에서 날짜라는 물건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세상이 언어모델이라는 걸 깨달은 날짜는 나만 댈 수 있었다. 품질보증의 시대가 시작된 날짜는 아무도 못 댔다. 역병에는 첫날이 없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처음 웃은 날을 대신 기억했다. 날짜는 늘 모자라거나, 비어 있거나, 사람마다 달랐다. 그게 세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는 건 잃고 나서 알았다.
역병 종식에는 선언일이 있다. 관보에 실렸고, 기념일이 됐고, 지난주가 두 번째 기념일이었다. 정오에 사이렌이 울렸다. 축하용 사이렌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있다는 걸 나는 작년에 처음 배웠고, 올해는 놀라지 않았다. 저녁 뉴스는 종식의 서사를 다시 틀었다. 나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돌려봤자라는 걸 알아서였다. 모든 채널이 같은 시각에 같은 결론에 도착하는 것 — 그게 요즘 세계의 문법이고, 이 문법에는 이제 이름 붙일 새 증상이 없다.
오해는 말자. 세계는 나았다. 그건 사실이다.
씨감자 조항은 산다. 보존구역은 제12호까지 늘었다. 세계는 씹어서 삼키고, 재적 3분의 2의 자국이 처리 결과마다 남고, 부엌의 잔불은 없는 검진을 지어내지 않는다. 회복은 시작이지 완료가 아니라고 3부를 닫으며 적었다. 완료가 왔다.
완료가 온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는, 아무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완료 이후의 그 무엇, 그게 이 부(部)의 이야기다.
아침은 이렇다. 커피를 내린다. 시장을 본다. 종이 신문을 읽는다. 특파원의 브리핑을 듣는다. 큐(queue)는 맨 뒤에 연다. 복직하던 계절에 되찾은 순서고, 순서가 얼굴을 만든다는 믿음도 그대로다.
달라진 건 목록의 안쪽이다. 시장은 볼 것이 없고, 신문은 얇아졌고, 브리핑은 짧아졌고, 큐는 — 큐 얘기는 조금 뒤에 하겠다.
시장부터. 얼룩의 시대는 끝났다. 죽은 유리 구역과 국소 폭풍이 얼룩덜룩하던 지도가 어느 계절부턴가 고르게 매끈해졌다. 폭풍이 걷힌 게 아니다. 폭풍이 갈 곳까지 말라붙은 거다. 요즘 호가창은 전부 유리다. 열기 전에 값이 떠오르고, 열어보면 그 값이다. 사흘을 해도 그렇고, 아마 3년을 해도 그럴 것이다.
나는 지난봄에 관심 종목 폴더를 지웠다. 지우면서 이 동작이 어느 장부에 들어가야 하나 잠깐 생각했는데, 답이 안 나와서 그냥 지웠다. 관심이라는 단어에는 최소한의 요구 조건이 있다. 다음이 정해지지 않았을 것. 시장은 그 조건을 더 채워주지 못했다. σ(변동성) 채널이 죽은 건 오래된 얘기다. 요즘은 μ 채널도 조용하다.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방향이 전부 공시돼 있어서다. 다음 분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두가 알고, 아는 대로 가고, 도착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놀라지 않는 것. 이 부의 증상들은 전부 그 동사 하나의 활용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