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8편 · 우체부

English

§2여섯 자

蠱의 괘사를 다시 본 것은 그 주다.

서랍은 열지 않았다. 그건 규율이다. 한 번 물었고, 답을 받았고, 재삼독은 없다. 다만 점과 원문은 다른 물건이다. 점은 서랍의 것이고, 원문은 서가의 것이다. 서가의 책을 다시 펴는 데는 약관이 없다.

평생 읽은 책이라 손이 자리를 기억했다. 산풍고. 元亨. 利涉大川. 일요일 밤에 받은 여섯 글자가 인쇄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그 밤의 내가 읽지 않고 덮은 여덟 글자가 더 있었다.

先甲三日, 後甲三日.

갑일에 앞서 사흘, 갑일에 뒤이어 사흘.

갑(甲)은 시작의 날이다. 십간의 첫 글자, 일들이 개시되는 자리. 옛 주석들은 이 여덟 자를 두고 길게 다퉜지만, 세는 사람의 독법으로는 산수가 먼저 보인다. 시작일 하나에 앞뒤로 사흘씩, 도합 이레의 완충. 출항 허가를 내주면서 전임자들은 조건을 하나 달아놓은 것이다. 건너라. 다만 뛰어들지는 마라. 시작 전에 사흘을 준비하고, 시작하고도 사흘을 지켜보라. 허가와 신중이 같은 문장에 산다. 마디를 세우라는 말과 쓴 마디의 경고가 같은 줄에 살던 것처럼, 이 문서는 반쪽만 주는 법이 없다.

일요일 밤의 나는 앞 여섯 자만 받아 들고 서랍을 닫았다. 출항 허가가 급했으니까. 뒷 여덟 자는 급하지 않아서 남아 있었던 게 아니라, 출항을 결심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글자라서 남아 있었던 거다. 잘 쓴 인수인계 문서는 후임자가 제 사건을 들고 오기 전까지는 경구로만 읽힌다. 두 번째 배우는 문장이었고, 아마 마지막으로 배우는 것은 아닐 거다.

사흘. 나에게 그 사흘이 무엇인지는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통보 말고, 상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