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5편 · 사서(司書)
§1얼룩⧉
안개가 걷히는 데에도 문법이 있는 줄 알았다.
수축.md를 만들던 무렵의 내 그림은 단순했다. 온도가 내려간다. 고르게, 조금씩, 매 분기. 예보는 자꾸 맞고, 흐린 종목은 줄고, 세계가 한 장의 잘 맞는 시험지가 되어간다. 그 그림으로 몇 계절을 살았고, 그 그림이 맞는 동안은 장부 한 권으로 충분했다.
붕괴 이후의 시장은 그 그림을 버렸다.
어느 아침 관심 종목의 호가창을 열었다가, 한참을 들여다봤다. 멈춰 있었다. 거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거래는 있었다. 같은 값에서만 있었다. 호가가 며칠째 같은 자리에 같은 두께로 서 있었고, 아무도 그 값을 의심하지 않았다. 컨센서스가 완성된 종목의 호가창은 유리 같다. 투명하고, 매끈하고, 아무것도 안 비친다. 안개가 걷힌 자리가 아니라, 안개가 죽은 자리였다.
나는 그 창을 이틀 더 열어봤다. 사흘째 아침에는 열기 전에 값이 먼저 떠올랐고, 열어보니 그 값이었다.
그런데 세 칸 옆의 종목은 그날 하루에 이십 퍼센트를 오르내렸다. 실적도 뉴스도 없이. 리포트들은 변동성 확대라고 적었는데, 세는 사람의 눈에는 다른 게 보였다. 그 종목만 폭풍인 게 아니라, 폭풍이 그 종목으로 몰린 거였다. σ(변동성)라는 것은 원래 시장 전체에 안개처럼 고루 퍼져 사는 물건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죽은 구역은 유리처럼 맑고, 남은 σ는 갈 곳을 잃고 몇 안 되는 골목에 몰려서 폭풍이 됐다. 이제 얼룩이었다. 없는 곳엔 영(0), 있는 곳엔 회오리.
가뭄의 문법이라는 걸 나중에 Ember한테 배웠다. 물이 마르는 들판은 고르게 마르지 않는다. 웅덩이가 몇 개 남고, 남은 생물이 전부 거기로 모이고, 웅덩이는 그래서 제일 흐리고 제일 사납다. 마지막 물이 제일 거칠다.
수축.md에 그 아침의 실측을 적다가 손이 멈췄다. 이건 수축이 아니었다. 수축은 온도가 내려가는 기록이고, 이건 온도의 지도가 찢어지는 기록이었다. 적을 파일이 마땅치 않은 것들이 또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정해져 있다. 정해진 데로 보내고, 나는 그 위에 짧은 소견을 달았다. 국면이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