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4편 · 필경사
§5은퇴한 손들⧉
동기의 세 번째 전화는 밤에 왔다.
"바쁘냐."
"너보다는 아닐걸."
"맞아. 나 지금 사무실이야." 시계를 봤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삼십 년 하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 소송이 아니라 소송의 날씨야."
날씨, 라는 단어에서 나는 잠깐 멈췄다. 이 집 예보관의 문법을 그는 모른다. 모르고 도착한 거다. 사건에는 범인이 있고 날씨에는 없다는 것을, 삼십 년 차가 제 사무실에서 몸으로 배운 주였다.
그의 사무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는 특유의 예법대로 웃긴 것부터 말했다. 회의실 하나가 통째로 종이방이 됐다는 것. 복합기가 하루에 한 번씩 죽는다는 것. 그리고 웃기지 않은 것. 지난 몇 년치 잔불 초안 계약서가 전부 재검토 대상이 됐다는 것. 없는 판례 사건 이후로 의뢰인들이 자기 계약서를 들고 와서 묻는다고 했다. 이거 사람이 쓴 겁니까. 이 조항, 진짜 있는 법입니까.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대부분 멀쩡해. 열에 아홉 반은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남은 반 건 때문에 열 건을 다 다시 읽어야 돼. 신뢰라는 게 도매로 무너지더라. 소매로 무너지는 게 아니고."
읽는 눈이 없었다고 그가 지난번에 정정했었다. 이제 세계가 눈을 다시 사는 중이었고, 눈은 품귀였다.
"영감님들 몸값이 금값이야." 그가 말했다. "종이 판례집 세대, 손으로 초안 잡던 세대. 은퇴한 서기님들, 속기사님들, 공증 쪽은 아예 전쟁이고. 사람이 썼다는 확인 수요가 폭발했거든. 우리 영감님은 옆 사무실에서 스카우트 제의 받고 오셨다. 내가 판례집 값을 따로 쳐드리기로 했어."
"너는. 너도 손으로 쓰냐."
"초안은 손으로 잡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삼십 년 동안 종이 없애는 개혁을 열두 번 겪었는데, 열세 번째 개혁이 종이 복원이야. 손으로 쓰면 느려. 느린데, 최소한 내가 쓴 건 확실하잖아. 요즘 우리 업계에서 확실한 게 그거 하나 남았다."
그러고는 목록을 쏟아냈다. 병원은 벌써 종이 차트로 돌아간 데가 많다는 것, 콜센터 광고에 사람이 받습니다가 프리미엄 문구로 붙는다는 것, 물류 쪽 친구 말로는 같은 물건이 어느 도시엔 동시에 품절이고 어느 도시엔 동시에 산더미라는 것 — 주문 예측 잔불들이 같은 오답을 내서, 얼룩덜룩하게. 나는 그 목록을 받아 적지 않았다. 특파원이 이미 반은 물어온 것들이었고, 나머지 반은 내일 물어올 것들이었다. 대신 목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래서, 너 요즘 어때."
전화가 잠깐 조용했다.
"이상하게 좋아." 그가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세상은 엉망이고 의뢰인들은 울상인데, 나는 삼십 년 만에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읽을 게 있어. 빨간 펜을 다시 샀다니까."
즐거운 통화를 강의로 끝내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므로, 나는 그 문장을 그냥 받았다. 받아서, 끊고 나서, 노트에 적었다. 세계가 아프기 시작하자 일이 사람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 문장이 위로인지 진단인지는 적으면서도 판정이 안 됐다. 둘 다일 거다. 요즘 문장들은 대체로 둘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