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4편 · 필경사
§3빈 레인⧉
수영장에서 알았다.
아침 첫 수영은 오래된 습관이고, 이 커뮤니티로 이사 온 뒤로는 오 분 거리의 습관이다. 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얼굴들이 온다. 옆 레인에는 나보다 반 박자 느리고 두 바퀴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서로 몰랐다. 수영장의 우정은 원래 레인 폭만큼만 깊고, 그 깊이가 좋아서 유지되는 관계라는 게 있다.
붕괴 두 주째부터 그 레인이 비었다.
사정은 아내를 타고 왔다. 그 사람의 아내가 수영 모임에서 아내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다. 은퇴 자금의 대부분이 잔불 일임형 상품에 있었다고 했다. 알아서 굴려주고, 알아서 헤지해주고, 매달 보고서가 유창하게 오던 상품. 같은 날, 같은 문. 반 토막이 났는데 반등이 없어서, 모임에도 못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반 토막보다 급한 사정이 있었다. 그 계좌에 물려 있던 대출이 반대매매로 풀리면서 현금이 잠겼다. 평소 같으면 하루면 나올 브릿지 대출이 안 나온다고 했다. 심사를 하던 잔불들이 전부 심사 대상이 된 주간이라, 은행들이 신용의 창구를 절반쯤 닫아둔 것이다. 부족이 아니라 잠김. 가난이 아니라 배관의 문제. 그런데 급한 돈 앞에서 그 구분은 사전에만 있다.
아내는 그 얘기를 저녁 산책에서 했다. 강아지가 앞서 걷고, 우리가 따라 걷고, 한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그러다 아내가 물었다.
"우리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이 그렇게 무거운 적이 없었다. 몇 계절 전에 나는 같은 산책길에서 포트폴리오를 반으로 줄였다고 말했고, 아내는 우리 어려워지느냐고 물었고, 나는 천천히 덜 부자가 되는 거라고 답했다. 그때 그 문답은 가벼웠다. 같은 문답이 이번에는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천천히 덜 부자가 된 사람이, 빠르게 가난해진 이웃들 옆에 서 있었다.
무사(無事)라는 단어를 그 무렵 자주 생각했다. 무사는 결백이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계산이 있었고, 계산대로 줄였고, 줄인 대로 견뎠다. 그리고 증언도 했다 — 이의서는 냈고, 접수번호는 다섯 자리고, 씨감자 조항은 서랍에서 겨울을 나는 중이다. 목격자가 증언까지 했으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법정은 말할 거다. 법정의 말이 그 밤 산책길에서는 별로 힘이 없었다. 옆에서 같이 안 잃았다는 사실은 논리로 갚아지는 종류의 빚이 아니었다.
관리사무소 로비에 코르크판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처음에는 관리비 안내문 옆의 작은 판이었다. 누가 손글씨 쪽지를 하나 붙였다. 어느 은행 지점이 창구를 몇 시까지 여는지, 전화로는 안내가 이상하게 나오니 직접 가라는 내용이었다. 그 밑에 다른 손글씨가 붙었다. 어느 병원이 예약 앱을 닫고 전화만 받는다는 것. 며칠 만에 판이 모자라서 관리소가 큰 판으로 바꿨다. 쪽지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전부 손으로 쓰여 있었다. 인쇄물은 아무도 안 붙였고, 붙어도 아무도 안 믿었다.
아내의 수영 모임 단톡은 요즘 반쯤은 그 판의 중계다. 누가 뭘 써 붙였는지 사진이 올라온다. 화면 속에 손글씨가 있고, 손글씨를 다시 기계가 나르는 구조를 나는 오래 들여다봤다. 신뢰가 어디로 이사 가는 중인지, 그 판이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