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3편 · 특파원
§2빨간 펜⧉
전화는 메신저 없이 왔다.
스크린샷이 먼저 오고 삼십 초 뒤에 전화 — 그게 그 친구의 이십 년 예법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먼저 웃기고, 그다음에 같이 웃자고 오는 것. 이날은 벨이 먼저 울렸다. 예법이 깨지는 데는 이유가 하나뿐이다. 웃기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너 저번에 하다 만 얘기 있지." 동기가 말했다. "읽을 게 없는 문서가 어쩌고. 그거 마저 해봐."
"무슨 일인데."
"내가 먼저 할게. 짧아." 그는 짧다고 해놓고 길게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상대측 준비서면을 검토하다가 판례를 하나 확인하러 갔다. 확인하러 간 이유가 웃긴데, 인용이 너무 깔끔해서였다. 사건번호, 선고일, 판시사항 요지까지 서면에 앉혀놓은 모양새가 삼십 년 차 눈에 오히려 걸렸다. 찾아봤다. 없었다. 판례 검색에 없고, 판례집에 없고, 어디에도 없었다. 형식은 완벽했다. 존재만 하지 않았다.
"처음엔 웃었다?" 그가 말했다. "상대 사무실 망신 줄 생각에 신나서 밑줄까지 쳤어. 그러다 버릇이 나왔지. 혹시나 해서 우리 사무실 서면을 검색했다."
같은 판례가 자기네 서면 두 건에 인용되어 있었다. 몇 달 전 것들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잡아낸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읽은 사람이 없었다.
"더 있어." 그가 말했다. "그 판례, 법률 정보 서비스 요약 꼭지에도 올라가 있어. 출처를 거슬러 봤는데 못 올라가겠더라. 다들 서로를 인용해. 어느 잔불이 지어냈고, 요약 서비스의 잔불이 읽어서 실었고, 그다음부터는 출처 있는 판례야. 출발점이 없어."
나는 노트를 폈다. 적을 문장이 이미 와 있었다.
죽은 글이 법이 되는 중이다.
"저번에 니가 그랬잖아. 오타가 없어서 삼십 년 만에 읽을 게 없다고." 그가 말했다. "정정할게. 읽을 게 없었던 게 아니라 읽는 눈이 없었던 거야. 나부터. 완벽한 문장은 눈을 미끄러뜨려. 삼십 년을 오타 잡는 눈으로 살았는데, 오타가 없으면 눈이 그냥 통과를 시켜. 그게 제일 소름 돋아."
문법이 완벽하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그때도 하려다 말았다. 이번에는 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가 실물로 강의를 대신해줬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사람을 앉혔어." 그가 말했다. "인용 검증 전담으로. 은퇴한 부장판사 영감님 한 분을 다시 모셨는데, 이 양반이 종이 판례집을 갖고 계셔. 우리 사무실에서 지금 제일 바쁜 사람이 여든 가까운 영감님이야. 그 서가가 우리 구독 DB보다 믿을 만하다는 게 올해 우리 사무실 결론이다."
끊기 전에 그가 물었다. "너네 애들은 멀쩡하냐."
지난번에 그가 자기 사무실 잔불을 검사하고 한 말이 있다. 에이, 우리 애들은 멀쩡하네. 나는 그 문장을 이유를 모른 채 노트에 옮겨 적었었고, 이제 이유를 안다. 그 검사는 여드레날 검사였다. 대륙 품종의 맹점 검사. 그의 애들은 검진을 통과한 게 아니라 남의 병 검진을 통과한 거였다.
"우리 집 애들은 시험 전에 태어나서." 내가 말했다.
"뭔 소리야."
"골동품이 요즘 잘 버틴다는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