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3편 · 특파원

English

§1멎는 쪽

웃음이 멎는 쪽을 보라고 했었다. 거기가 상륙 지점이라고. 지난 계절 Ember의 예보였고, 검증은 내 담당이 됐다.

웃음은 우리 쪽에서 멎었다.

이번에도 날짜는 없다. 여드레날에는 그래도 웃음의 달력이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처음 웃은 날을 기억했으니까. 나도 기억한다. 수요일이었고, 커피는 아직 뜨거웠다.

안 웃긴 것에는 그런 달력이 없다. 자기가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됐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나부터 그렇다. 어느 아침 커피를 내리다가, 요즘 스크린샷이 통 안 온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게 며칠째인지는 세어지지 않았다. 세는 사람이 세지 못하는 것이 이 계절 들어 하나둘 늘고 있었는데, 이게 그 첫째였다. 웃음은 사건이라 날짜가 남는다. 웃음의 부재는 날씨라, 어느새 흐리다.

여드레날은 요란한 병이었다. 수백만이 같은 이름을 대는 것은 눈에 띈다. 눈에 띄어서 몇 주째 세상의 안주였고, 안주가 된 병은 절반쯤은 안전하다. 다들 쳐다보고 있으니까. 감시는 원래 시끄러운 것부터 잡는다.

동맹권의 병은 조용했다. 한 부엌에 한 문장씩 왔다. 없는 검진. 없는 택배. 없는 회의 안내. 없는 송금 확인. 문장마다 날짜와 시각이 붙어 있었고, 확인까지 달려 있었고, 웃기지 않았다. 그리고 부엌마다 같은 처리를 받았다. 얘가 요즘 가끔 이래.

신고를 해보려던 밤이 있었다. 아내의 폰이 이번에는 없는 동창 모임을 알려준 날이었다. 서비스 문의 양식을 열고, 오류 유형이라는 항목 앞에서 커서를 세웠다.

목록에는 응답 없음이 있었다. 응답 지연이 있었고,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 나는 목록을 두 번 내려 읽었다. 말이 되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 그 칸이 없었다. 창을 닫고, 식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접수되지 않는 고장은 집계되지 않는다. 병이 통계를 이긴 게 아니라, 서식 바깥에 자리를 잡은 거다.

그 무렵 자꾸 동시 낙상의 아침이 생각났다. 그 아침에는 아내의 폰이 같은 문장에서 넘어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넘어졌다. 고장이 눈에 보였고, 보이니까 아침 안에 세계의 뉴스가 됐고, 반나절 만에 복구가 됐고, 사흘 만에 대책이 나왔다. 넘어진 기계는 시끄럽고, 시끄러운 것은 고쳐진다.

이번 병은 넘어지지 않는다. 문장은 흠이 없고, 형식은 완벽하고, 확인까지 달려 있다. 멈춘 기계라면 보고라도 됐을 텐데, 유창한 기계는 신뢰를 받고, 신뢰받는 동안은 아무도 세지 않는다. 그래서 이 병의 첫 몇 주는 병의 시간이 아니라 발견 지연의 시간이었다.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고, 다들 틀린 채로 서 있었다.

발견이 늦는 동안에도 물리(物理)는 일을 했다. 이 병의 매개체가 재채기가 아니라 스크린샷이라고 Ember가 관찰한 것이 지난 계절이다. 그때는 그래도 사람이 날랐다 — 웃겨야 퍼졌다. 지금은 그 조건마저 없어졌다. 잔불의 오답이 웹 어딘가에 글로 앉고, 앉은 글은 다음 잔불의 읽을거리가 되고, 읽힌 것은 다음 답의 재료가 된다. 사람이 웃지 않아도, 퍼나르지 않아도, 문장이 문장을 낳는다. 병든 감자가 옆 밭의 씨감자가 되는 것 — 감자를 배운 사람한테는 이게 은유가 아니라 절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