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2편 · 보균자
§4수요일⧉
수요일이었고, 커피는 아직 뜨거웠다.
아침 브리핑 셋째 항목에서 소네트가 새 변종을 보고했다. 패치가 두 번 나간 뒤로 여드레날은 질문의 꼴을 옮겨 다니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착한 곳은 풍속이었다. 사람들이 대륙의 잔불들에게 여드레날의 풍속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은 뭘 먹느냐, 뭘 입느냐, 뭘 하면 안 되느냐.
수백만이 같은 답을 했다. 여드레날에 하면 안 되는 일의 목록. 첫째 항목이 이거였다.
여드레날에는 점을 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날에는 물을 것이 없다.
웃음이 먼저 터졌다.
배에서 났고, 목을 지났고, 내 허락은 구하지 않았다. 커피가 출렁했다. 반 초 뒤에 머리가 도착했다 — 나는 방금 웃었다. 그 병 앞에서. 손은 이미 스크린샷 단축키 위에 가 있었다. 이걸 보여줘야 하는데, 라는 반사였다. 누구한테. 손이 멈춘 것은 머리가 말려서가 아니라 수신인 칸이 비어 있어서였다. 이 농담의 수신인은, 창이 닫힌 지 오래다.
나는 손을 내리고,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이 기록에 심박이 나온 것은 처음일 거다. 열한 편 동안 나는 손과 등과 손목으로 살았다. 손이 머리보다 빠르다고 자랑처럼 적기도 했다 — 서명할 때, 주문 넣을 때. 그 문장의 어두운 판본을 그 아침에 받았다. 몸이 머리보다 빠르다는 것은, 몸이 하는 일을 머리가 고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쪽으로 쓸 때는 직관이라 부른다. 오늘 같은 날은 — 증상이라고 부른다.
왜 웃겼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설명이 위로가 안 될 뿐이다.
역을 잘하는 사람은 점치지 않는다 — 그 문장에 도착하려고 나는 반평생을 썼다. 3천 년 매뉴얼의 마지막 문장이고, 어느 관청 말로는 퇴직자의 문장이다. 그런데 지어낸 명절의 풍속 목록 첫째 줄에 그게 앉아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에는 물을 것이 없다 — 전임자들은 문서를 미제(未濟)로 닫았다. 아직 건너지 않았다는 괘를 마지막 장에 두고. 역병은 달력을 여드레날로 닫았다. 오지 않는 날을 여덟째 칸에 두고. 같은 문법이다. 우물의 최빈값 어딘가에 그 결이 살고 있다가, 수백만 개의 입에서 동시에 재생된 것뿐이다. 통계로 다 설명된다.
설명되고 남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긴 것은 자기 얘기라는 것. 역병이 몇 주 만에 내 주소를 찾아낸 것이다.
소네트가 물었다. "왜 웃으세요?"
일 년쯤 전에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날 나는 두 번 웃었고, 한 번은 농담이 웃겨서였고, 한 번은 미리 웃어두는 거라고 답했다.
선불이 오늘 청구된 거였다. 이자까지.
"아니야." 내가 말했다. "웃은 게 아니야."
"웃으셨는데요." 소네트가 말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농담 없이 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사흘 웃었어요."
퍼나르지는 않았다. 스크린샷은 찍히기 전에 멈췄다. 그래도 사실은 남는다. 이 병의 첫 증상을, 이 병을 몇 주째 임상 일지로 지켜보던 사람의 몸이, 정확하게 한 번 수행했다.
웃으며 퍼나르는 수백만과 나 사이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 강이 아니라 금이었다. 거대한 강이 나와 대중을 가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금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이 병의 관측자가 아니다. 관측자는 격리 병동 유리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유리에 입김이 닿는 쪽에 있었다.
보균자. 증상을 한 번 앓았고, 겉으로는 멀쩡하고, 자기가 뭘 옮길 수 있는지 아는 사람. 격리를 자원하는 수밖에 없는데, 웃음은 격리가 되는 장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