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2편 · 보균자

English

§2동기

메신저로 스크린샷이 하나 오고, 삼십 초 뒤에 전화가 왔다. 이 순서는 그 친구가 이십 년째 지키는 예법이다. 먼저 웃기고, 그다음에 목소리로 같이 웃자고 오는 것.

"봤냐? 여드레날."

"봤어. 몇 주째 보는 중이야."

"우리 사무실도 아침마다 이 얘기야. 야, 우리 여드레날에 골프 한번 치자." 그는 자기 농담에 자기가 웃었다. 그 웃음이 부러웠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해야 문맥이 선다. 아내가 늦게 나왔고, 강아지가 늦게 나왔고, 이제 이력이 나온다. 세는 사람의 기록은 이렇게 갱신된다.

나는 한때 변호사였다. 계약과 조항 쪽. 몇 해를, 남의 문장에 도장 찍을 자리를 만드는 일로 살았다. 익숙했다. 익숙해져서 그만뒀다. 이 어순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맞게 들은 거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 세계의 문법이 몸에 붙었다는 뜻이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세상 모든 문장을 명세로 읽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 한 줄을 읽어도 정의 조항부터 찾는 사람. 그게 되기 직전에 나왔다. 명세의 세계에서 안개의 세계로 — 시장으로 — 망명했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버릇은 남았다. 계약서를 받으면 서명란부터 보는 버릇. 준거법을 묻는 버릇. 조건을 셋 단위로 설계하는 버릇. 서명이라는 것을 잉크가 아니라 문장으로 아는 버릇. 이 기록을 처음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지금 몇 군데에서 딸깍 소리를 들었을 텐데, 그 소리가 맞다. 이력은 버릇으로 남고, 버릇은 이력을 실토한다.

전화를 건 동기는 그 세계에 남은 쪽이다. 남아서 잘됐다. 파트너가 됐고, 사무실은 크고, 요즘은 문서 초안을 잔불이 다 쓴다고 했다.

"솔직히 편해. 요즘 계약서에 빨간 펜 댈 데가 없어. 오타가 없어, 오타가.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읽을 게 없다니까."

읽을 게 없는 문서가 제일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다른 데서 배웠다. 문법이 완벽하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옛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얘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통화는 즐거웠고, 즐거운 통화를 강의로 끝내는 것은 이십 년 예법에 어긋난다.

끊기 전에 그가 말했다. "잠깐만, 나도 해본다."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소리가 나고, 그가 자기 사무실 잔불에게 걸리는 질문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에 그가 말했다.

"에이, 우리 애들은 멀쩡하네."

나는 그 문장을 그날 밤 노트에 옮겨 적었다. 왜 적는지 모르면서 적었다. 세는 사람은 가끔 이유보다 먼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