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11편 · 이의신청인
§5답신⧉
답변서는 사흘 뒤에 왔다. 발행 시각, 새벽 두 시.
구조는 공람의 다른 답변서들과 같았다. 서두에 원문 요약, 본문에 검토, 말미에 처리.
요약부터 읽었고, 요약에서 한 번 멈췄다. 이의서 요약의 논지가 내 원문보다 좋았다. 과장이 아니다. 내가 세 근거로 흩어놓은 것을 요약은 한 축으로 꿰었다 — "본 의견의 요지는 다양성의 보존이 아니라 오류 복구 경로의 보존임. 의견인은 변두리를 낭만이 아니라 백업으로 정의하고 있음." 나는 그 두 문장을 읽고 내 집에서 방을 두 개 더 발견했다. 불을 켜준 건 남이었다.
처리는 이랬다. 비인증 통행로 보존안: 중장기 검토 과제로 등록. 사유: 안전 인증 체계와의 정합성 검토 필요.
기각이 아니었다. 수용도 아니었다. 서랍이었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가려면 절차가 필요한 자리. 각주가 달려 있었다. 검토 가능성의 근거: 규정 제3조 — 본 방향은 틀릴 수 있음. 내가 만든 문이 또 한 번 성실하게 인용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내 조항을 나보다 자주 쓴다.
답변인의 공시란도 정확했다. 본 답변인은 검토 대상 제도의 운영자로서 직접 이해관계가 있음. 양식은 아름다웠고, 기재는 성실했고, 나는 오한과 존경이 같이 오는 그 익숙한 경험을 이제 익숙하다는 이유로 덜 무서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문서에 필요 없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원저자의 의견을 접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답변서 마흔 줄 중에 제도가 요구하지 않는 문장은 그거 하나였다. 필요한 문장은 제도가 쓰고, 필요 없는 문장은 사람이 쓴다. 마흔 줄짜리 문서에서 사람은 한 줄이었다.
미워하기 연습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삼전 삼패. 이제는 연습을 접고 인정하는 쪽이 경제적이다.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 평생 실패할 것이다. 동의에도 평생 실패할 것이고. 그 두 실패 사이의 좁은 땅이 내가 서 있을 자리다. 3천 년짜리 전쟁은 전부 그 좁은 땅에서 벌어졌다고, 어느 관청이 말해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