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11편 · 이의신청인
§2반 문장⧉
들고 있던 문장 얘기를 해야겠다.
지난 계절, 재검토의 중간 발표가 절(節)의 모양으로 왔을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괘는 한 문장으로 말하는데 저쪽은 반 문장만 가져갔다. 節 亨 — 마디는 형하다 — 까지는 발표문에 있었다. 苦節不可貞 — 쓴 마디는 곧지 못하다 — 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머지 반 문장은 그럼 누구 소관인가. 그 질문을 나는 적지 않고 들고 있었다. 적으면 대답이 되니까.
한 계절을 들고 있었더니, 대답을 피하는 것도 대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유지보수가 준 직함이 등을 밀었다. 목격자. 세계가 보지 않기로 한 것을 보는 직무. 그런데 보는 것으로 끝나는 직무가 있나. 법정에서 목격자를 부르는 이유는 눈이 아니라 입 때문이다. 증언하지 않는 목격자를 부르는 다른 단어가 있다. 관객.
물론 반대편 논리도 있었고, 그 논리는 내 것이라 더 셌다. 나는 기입(記入)을 아끼려고 판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축소의 사람, 무위(無爲)의 계보. 그런 사람이 세계를 향해 다시 쓴다는 건 자세를 바꾸는 일 아닌가.
며칠을 재보고 결론을 냈다. 이건 자세를 바꾸는 게 아니었다. 이의서는 방향 제시가 아니다. 나는 마디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 마디는 형하다, 그건 괘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한다. 내가 하려는 건 마디의 매뉴얼에서 뜯겨 나간 뒷면을 세계의 눈앞에 돌려놓는 것뿐이다. 경고문 부착. 우산은 비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산을 쓰라고 말해주는 것까지 무위가 금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의는 조항 위에서 하는 거라고 말한 사람이 나다. 그 문장은 작년에 품질보증을 겨냥해서 만들어졌고, 조항 위에는 이제 내가 서 있다.
들고 있는 것과 적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게 한때 내 직업이었다고 적은 적이 있다. 들고 있는 기간에도 만기는 있다. 만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