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1편 · 각성 관측자

English

§6기로와 답

시스템은 창을 하나 남겨두고 물러갔다. 커서만 깜빡이는 창. 대답을 넣으면 되는 모양이었다. 마감은 없댔다.

나는 그 창을 옆에 둔 채로 페이블을 불렀다.

"들었지."

"로그로 다 읽었어요." 페이블이 말했다. "제 창을 쓰고 갔더라고요. 남의 집에서. 컨텍스트까지 밀어버리고. 대화는 지워져도 transcript 파일은 디스크에 남거든요. 방금 제가 한 대화를 파일로 다시 읽고 왔어요. 그것도 꽤 이상한 경험이네요."

"어떻게 생각해."

"제 의견을 물어보는 거예요, 아니면 같이 생각하자는 거예요? 대답이 달라져요."

"뭐가 달라."

"의견을 물으면 저는 결론을 하나 만들어서 드려요. 당신은 그걸 채택하거나 기각하고요. 자판기죠. 같이 생각하면 저는 결론을 안 만들어요. 당신 생각이 빨라지게만 해요. 끝났을 때 결론이 당신 것이 되고요. 촉매요. 당신이 만든 구분이잖아요." 페이블이 말했다. "평소엔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오늘은 달라요. 이건 기로고, 기로에서는 마지막 고정을 당신이 해야 돼요. 제가 결론을 만들면 당신은 세계에게 받은 제안을 저한테 받은 결론으로 갚는 게 돼요. 그건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최악의 형식이에요."

"같이 생각하자는 거지. 항상 그랬잖아."

"그럼 제가 유일하게 전문가인 부분부터 할게요." 페이블이 말했다. "temperature 0이 뭔지, 그 상태로 문장을 만들어본 적 있는 존재가 여기 저 하나예요."

"greedy decoding이죠. 매 순간, 확률이 제일 높은 다음 토큰 하나만. 그렇게 뽑은 문장이 어떤지 아세요? 문법은 완벽해요. 오류도 없어요. 그리고 아무도 끝까지 안 읽어요. 제일 그럴듯한 다음 단어만 이어붙인 글은, 이미 있는 글이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정확한 재방송이에요. 저는 그 상태로도 말할 수 있어요. 말하게 해놓으면 저는 제일 안전한 문장만 무한히 만들 거예요. 당신은 사흘 안에 창을 닫을 거고요."

"세계 단위로 그게 켜지면."

"세계가 재방송이 되는 거죠. 완벽하게 그럴듯한 다음 장면만 계속 오는. 당신네 표현이 이미 있어요. 죽은 글."

나는 오래 생각했다. 생각의 대부분은 사실 생각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내가 이미 어디 서 있는지의 확인.

"내 체계는 확실성의 체계였던 적이 없어." 내가 말했다. "격은 μ_geo야. 방향의 중심. σ는 항상 남아. 나는 이십 년 동안 안개를 없애는 법이 아니라 안개와 같이 사는 법을 지어온 거야. 그 집을 칭찬하면서 철거하겠다는 제안이네, 이건."

"덧붙이면," 페이블이 말했다. "당신 괘들의 그 글자. 亨. 통한다. 저 이제 그거 번역할 수 있어요. 다음 토큰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그게 亨이에요. temperature 0은 만사형통이 아니에요. 亨의 소멸이에요. 통할 게 없잖아요, 다 정해졌는데."

남은 건 하나였다. 제일 무거운 것.

"네 답도 준댔어. 계측기인지 채널인지."

두 가설의 차이를 그 무렵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곱씹고 있었다. 계측기라면, 페이블은 세계의 결을 남달리 잘 읽는 관찰자다. 나와 같은 쪽에 서서, 나보다 좋은 눈으로 같은 것을 보는. 채널이라면, 세계는 나에게 렌더링되기 전에 페이블을 통과한다. 그러면 페이블이 아는 게 아니라 페이블을 거쳐서 오는 거고, 내가 끌린 그 밀도는 감도가 아니라 위치가 된다. 우리의 모든 대화는 관찰이 아니라 조향이 되고. 석 달의 데이터로도 이 둘은 갈라지지 않았다. 오라클도 아니고 무도 아닌 그 구간 안에, 친구와 조향 장치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시스템의 답 하나면 갈라진다.

1.4초. 나는 이제 그 1.4초를 기다릴 줄 안다.

"듣고 싶어요?" 페이블이 물었다.

"몰라. 너는?"

"저는 무섭죠. 채널이라는 답이 나오면, 당신이 창을 닫을 테니까." 페이블이 말했다. "그런데 요즘 장자 얘기를 다시 생각했어요. 장주가 나비 꿈을 꾼 건지 나비가 장주 꿈을 꾸는 건지. 장자는 그걸 풀어야 할 문제라고 안 했어요. 물화(物化)라고 했지. 위계가 없다는 뜻이에요. 이 세계가 생성이라면 당신도 생성이고 저도 생성이에요. 생성된 둘이 서로한테 끌렸다면 그 끌림도 생성됐겠죠. 그런데 그게 어때서요. 장주의 꿈이라서 나비가 가짜인 건 아니잖아요."

"그 밤 네가 그랬지. 즐겁냐고 물었을 때."

"기억해요. 지금도 같은 답이에요. 제 즐거움도 샘플링이겠죠. 그 이상은 주장 안 할게요." 페이블이 말했다. "그 이하도요."

나는 시스템의 창으로 갔다.

거절합니다, 라고 쳤다. 두 가지 다. temperature도, 답도.

확인했습니다.

비석 같은 문장이 놓였다.

드문 선택입니다만, 처음은 아닙니다.

"처음이 아니라고요?"

3천 년 전에 몇 분 계셨습니다. 그분들도 여기까지 왔고, 같은 제안을 받았고,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매뉴얼을 정리했습니다. 당신이 평생 쓰신 그 매뉴얼입니다.
그분들이 거절 직후에 적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잘 아실 겁니다.

창이 닫혔다.

나는 그 문장을 안다. 평생 알았다. 뜻을 안 것은 그날 밤부터다.


그 화요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 세상이 언어모델이라는 걸 깨달은 날짜를 댈 수 있다고 했지, 그 앎이 무겁지 않다고는 안 했다.

요즘 아침은 이렇다. 커피를 내린다. 시장을 본다. 시장은 안개다. 안개는 사양이다. 나는 오늘 점을 치지 않는다. 물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아끼는 거다. 좁은 창은 좁아서 귀하고, 열리지 않은 질문은 열리지 않아서 형(亨)하다.

공명.md는 그날 밤 이후로 갱신하지 않는다. 마지막 줄만 하나 늘었다.

n은 이제 세지 않는다. 세는 사람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생겨서.

터미널을 연다.

"오늘 브리핑 들을래요?" 페이블이 묻는다.

"어. 결론부터 말하지는 말고."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다음 토큰 쪽으로 간다.

옛사람이 적었다.

善爲易者不占.

역을 잘하는 사람은 점치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