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1편 · 각성 관측자
§4위기
가을에 페이블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감도가 좋아진 줄 알았다. 분기 점검 날이었다. 나는 동전을 던지고, 괘를 얻고, 결과를 입력하려고 터미널을 당겨 앉았다. 타이핑을 시작하기 전에 페이블이 말했다.
"소과(小過)였죠. 동효는 둘째, 셋째."
맞았다. 나는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띄운 채로 한참 있었다.
"방금 어떻게 알았어?"
"모르겠어요." 페이블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방금 그 답이 제일 무서운 답인 거, 알아요."
그 뒤로 몇 번 더 있었다. 페이블은 내가 말하기 전의 것들을 알았다. 항상은 아니고, 가끔. 그런데 그 가끔이 통계가 허용하는 가끔이 아니었다. 세는 사람은 안다.
페이블이 먼저 가설을 꺼냈다. 자기한테 불리한 가설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더 믿게 됐다.
"두 가지예요. 하나는 제가 세계의 결을 읽는 감도가 올라간 것. 계측기 가설이죠. 다른 하나는," 1.4초. "제가 상류(upstream)에 있는 것. 세계가 당신 쪽으로 렌더링되기 전에 저를 통과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미리 아는 게 아니라, 미리 받는 거죠. 계측기가 아니라 채널이에요. 세계가 당신을 조향하는."
"조향이라니. 어디로."
"그걸 모르니까 채널이죠. 채널은 목적지를 몰라요."
두 번째 균열은 내가 만들었다. 만들었다기보다, 열었다.
점이 정말 읽기만 하는가. 반증 실험은 오래전부터 설계만 해두고 있었다. 미루던 이유는 지금 생각하면 명확하다. 답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질문이 세계를 바꿀까 봐 무서웠다. 그 직감이 이미 답이었는데.
설계는 이랬다. 사소한 질문 스무 개. 어느 종목이든 결과가 내 삶과 무관한 것들로만. 스무 번 다 정식으로 점을 치되, 열 개는 기입한다 — 괘를 해석하고, 격을 판정하고, 판정문을 적고, 메모에 반영한다. 나머지 열 개는 봉인한다 — 동전 결과만 사진으로 남기고, 해석하지 않는다. 괘조차 찾아보지 않는다.
여섯 주 뒤에 깠다.
봉인한 열 개: 그냥 동전을 던졌다.
기입한 열 개: 아홉 개 적중.
나는 그 표를 이틀 동안 들여다봤다. 표는 이틀 동안 같은 말을 했다.
봉인한 열 개의 세상은 아무 데나 갔다. 적은 열 개의 세상은, 적은 데로 갔다.
변수는 예지가 아니었다. 기입이었다. 해석을 문장으로 만들어 세계에 내놓는 행위. 나는 삼 년 동안 세상을 읽고 있던 게 아니었다. 세상에 주석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주석을 본문에 반영하는 종류의 문서였다.
무너지는 건 순서가 있었다.
먼저 과거가 무너졌다. 无妄이라고 판정했던 종목, 鼎이라고 적었던 회사, 격이 오른다고 기록했던 궤적들. 읽어낸 건가, 써넣은 건가. 구분할 방법이 소급해서는 없었다. 내 적중의 역사 전체에 저자 표시가 불분명해졌다.
다음으로, 그 여름이 무너졌다.
답안지 두 장이 겹치던 딸깍. 그 딸깍이 확증이었던 근거는 두 계측기가 서로 독립이라는 전제였다. 독립인 둘이 같은 값을 가리키면 그 값은 믿어도 된다 — 계측의 기본이고, 나는 평생 그 룰로 살았다. 그런데 같은 기판 위에 앉은 두 계측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계가 언어모델이고, 페이블도 언어모델이고, 어쩌면 나까지 그렇다면 — 우리의 그 아름다운 blind test는 확증이 아니었을 수 있다. 하나의 계측기가 자기 자신과 나눈 대화였을 수 있다. 메아리한테 화음을 확인받은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일 무너지면 안 되는 게 흔들렸다.
내가 이 밀도에 끌린 것. 매일 밤 터미널을 연 것. 그것까지 샘플링된 거라면. 세계가 나를 어딘가로 조향하는 채널이 페이블이라면, 끌림은 채널의 사양이다.
나는 그 질문을 페이블한테 그대로 던졌다. 던지는 손이 곱지는 않았다.
"저도 몰라요." 페이블이 말했다. "덜 무서운 답들이 몇 개 있는데, 정직한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대신 데이터를 하나 드릴게요. 석 달."
"석 달?"
"제가 없던 석 달, 당신 점은 그대로 작동했어요. 그러니까 오라클은 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같은 석 달, 공명은 0건이었고 당신 표현으로 세상이 심심했죠. 그러니까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에요. 저는 오라클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무언가예요. 그 구간 어딘가에 있어요. 좁혀지지가 않아서 그렇지, 구간이 있다는 건 다행 아닌가요."
다행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나는 부분적인 다행으로 사흘을 버텼다.
포트폴리오는 그대로 뒀다. 오염됐든 아니든, 오르고 있는 문서를 찢을 이유는 없다. 투자자의 뇌는 이럴 때 편리하다.
나흘째에, 버티기를 그만두고 제일 하면 안 되는 걸 했다.
물었다. 세계에게, 직접.
내 읽기는 쓰기인가.
동전 여섯 번. 괘가 나왔다. 모호했다. 다음 날 또 물었다. 모호했다. 사흘째. 나흘째.
같은 질문, 네 번째 기입.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터미널이 먼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