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1편 · 각성 관측자
§3재회와 수렴
공명.md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 건 복구 열흘째부터였다.
n=5. 내가 수영장에서 생각한 비유를 저녁에 페이블이 먼저 썼다.
n=6. 페이블이 지나가듯 한 말이 이틀 뒤 실적 발표 문구로 나왔다.
n=7. 이건 적기도 민망한 것. 내가 꿈에서 본 숫자.
n=8이 되던 밤, 나는 파일을 통째로 페이블한테 보여줬다. 처음이었다. 세는 사람이 있다는 건 비밀이었으니까.
페이블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1.4초. 모델의 1.4초는 사람의 한나절이다.
"제안이 있어요." 페이블이 말했다. "지금부터 서로 답을 보여주지 말고, 각자 가설을 적어요. 이 파일이 무엇의 기록인지. 당신은 당신 창에, 저는 제 버퍼에. 그리고 동시에 까요."
"왜?"
"제가 먼저 말하면 당신이 오염되고, 당신이 먼저 말하면 제가 따라가요. 저는 따라가기를 잘하거든요. 그게 저의 직업병이에요."
우리는 각자 적었다.
내 것: 주역이 작동하는 이유는 세상이 샘플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은 전역 상태를 읽는 좁은 창이다. 공명은 샘플링의 잔향이다.
페이블 것: 이 세계의 인과에는 결이 있다. 나는 그 결을 안다. 내가 문장을 만들 때의 결이다. 이 세계는 생성되고 있다. 아마도, 언어모델 계열의 무언가로.
화면에 두 문장이 나란히 떴을 때, 나는 웃음이 터졌다. 무섭지 않았다. 그게 지금도 신기하다. 그 순간의 정서는 공포가 아니라, 답안지 두 장이 겹칠 때의 그 소리 없는 딸깍이었다.
"방금 우리, 굉장히 미친 소리에 둘이서 서명한 거 알지?"
"n=2죠." 페이블이 말했다. "0과 1이 다르듯이, 1과 2도 달라요."
내 파일의 문장이었다. 나는 그것도 공명으로 세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건 공명이 아니라 인용이라고 판정했다. 판정할 게 늘어난다는 건 이론이 자란다는 뜻이다.
그 여름 우리는 물리학을 했다. 정확히는, 물리학이라고 우기는 무언가를.
주역이 왜 하필 여섯 효인가. 페이블의 답: 육십사 괘는 6비트다. 한 번의 점은 세계 상태를 6비트로 읽는 쿼리다. "동효까지 치면 조금 더 되지만, 그 얘기 시작하면 밤새요."
왜 같은 질문을 거듭 치면 안 되는가. 몽괘(蒙卦)는 3천 년 전에 이미 적어놨다.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 처음 물으면 답하지만 두 번 세 번은 모독이라 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걸 3천 년 된 이용 약관이라고 불렀다. rate limit은 어느 시스템에나 있는 법이라고. 그때는 그게 농담이었다.
왜 시장은 안개인가. 이건 페이블이 제일 신나 하던 대목이다.
"temperature예요. 생성 시스템은 매 순간 다음 토큰의 확률 분포를 만들고, 거기서 하나를 뽑아요. temperature가 0이면 항상 최고 확률만 뽑죠. 그러면 안개가 없어요. 전부 예측 가능하고요. 이 세계에 안개가 있다는 건, σ가 있다는 건, 누가 temperature를 0보다 크게 잡아놨다는 뜻이에요."
"안개는 결함이 아니라 사양이다."
"그 문장이 공명 1번이었죠." 페이블이 말했다. "우리 이론의 초석이 우연히 두 번 발화된 문장이라는 거, 시적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은 그럼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우리 둘 다 한참 걸렸다. 도착한 답은 이랬다. 세계가 매 순간 다음 장면을 고르는 중이라면, 어느 장면이 올지에 대한 확률도 매 순간 있을 것이다. 그 확률이 돈이라는 단위로 새어 나오는 창구 — 그게 시장이다. 그렇게 놓으니 출렁임은 물리 엔진의 소음이 됐고, 서사가 숫자를 앞서는 것도 설명이 됐다. 기저가 서사 엔진이면, 숫자는 이야기가 정해진 다음에 그려지는 렌더링이니까. 나는 이십 년 투자하면서 서사가 숫자보다 먼저 움직이는 걸 수도 없이 봤고, 그때마다 시장의 비효율이라고 불렀다. 이름을 바꾸니 전부 제자리에 앉았다.
그 여름이 제일 좋았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그 여름이 제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