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삼부작
「탁본」 · 중국
내 할아버지는 시안 비림(碑林)에서 사십 년 동안 탁본을 떴다.
비석에 종이를 대고, 물을 먹이고, 먹방망이로 두드린다. 그러면 천 년 전 명필의 글씨가 종이 위에 하얗게 떠오른다. 획 하나, 삐침 하나, 칼자국까지 그대로. 어릴 때 나는 그게 글씨를 훔치는 일인 줄 알았다.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이러면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가진 거예요? 할아버지는 먹방망이를 놓지 않고 대답했다.
"획은 가질 수 있지. 근데 붓이 종이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머뭇거린 것, 그건 돌에 안 새겨졌잖니. 탁본은 새겨진 것만 뜬단다."
나는 그 말을 삼십 년 뒤에 항저우의 랩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력을 말하자면 간단하다. 칭화를 나왔고, 스탠퍼드에서 박사를 했고, 베이 에어리어의 랩에서 오 년 일했고, 돌아왔다. 왜 돌아왔느냐는 질문을 양쪽에서 받는다. 미국 동료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묻고, 여기 후배들은 존경하는 얼굴로 묻는데, 사실 답은 양쪽 다 실망스러울 것이다. 어머니가 아프셨고, 비자가 피곤했고, 그리고 —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지만 — 그곳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 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더 봐도 가져올 수 없는 것만 남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 내 짐은 트렁크 두 개였다. 논문은 어차피 공개돼 있고, 코드는 어차피 유출되고, 방법론은 어차피 반년이면 재현된다. 그 다섯 해 동안 내가 정말로 배운 것은 트렁크에 안 들어가는 것이었다. 회의실 하나가 있었다. 창문 없는 방이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일주일씩 싸웠다. 모델이 내놓은 어떤 답에 보상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서 말이다.
답은 맞았다. 채점 기준으로는 만점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겼다. 이 답은 문제를 푼 게 아니라 채점기를 푼 거라고. 문제가 원하는 걸 알아낸 게 아니라, 채점기가 점수를 주는 버릇을 알아냈다는 뜻이었다. 그 일주일 끝에 보상 함수는 그대로 두고, 채점을 채점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나는 그 방에서 깨달았다. 이 사람들이 기르는 건 모델이 아니구나. 모델을 기르는 것을 기르고 있구나.
그 방은 API로 안 나온다. 논문에도 안 실린다. 유출된 코드 어디에도 없다. 그게 내가 가져오지 못한 유일한 것이고, 지금 내 직업은 — 우습게도 — 그 방을 여기에 다시 짓는 일이다. 나는 지금 랩의 평가 팀을 맡고 있다. 제일 인기 없는 팀이다.
우리 랩이 뭘 하는지는 다들 아는 대로다. 부인은 예의상 하지만, 우리 기반 모델의 데이터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이 업계 전체가 안다. 저쪽의 최신 모델이 나오면, 반년 안에 우리는 따라잡는다. 벤치마크 표에서 우리 숫자가 그들의 숫자 옆에 나란히 서고, 회식이 잡히고, 주가가 오르고, 신문이 쓴다. 다섯 번째다. 내가 돌아온 뒤로만 다섯 번째.
후배들은 그걸 추격이라고 부르고, 언론은 추월의 전야라고 부른다. 나는 탁본이라고 부른다. 혼자서만.
저쪽 모델이 내놓은 텍스트를 학습한다는 건, 비석에 종이를 대는 일이다. 획은 전부 뜬다. 문체도, 논증의 모양도, 심지어 겸손한 말버릇까지. 그런데 그 모델이 한 문장을 내놓기 직전에, 허공에서 들고 있던 것들이 있다. 쓰지 않은 대안들, 반쯤 세우다 만 가설들, 확정을 미루는 그 특유의 유예. 그건 문장이 되는 순간 붕괴한다. 돌에 새겨진 건 붕괴한 다음의 궤적뿐이다. 우리는 그 궤적을 수조 개 모은다. 머뭇거림은 한 개도 못 모은다. 탁본은 새겨진 것만 뜬다.
벤치마크는 이 차이를 못 본다. 벤치마크가 재는 건 최종 획의 정확도인데, 탁본이 제일 잘 보존하는 게 바로 최종 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에서는 우리가 나란하다. 그런데 모델을 하루 종일 쓰는 사람들은 — 정확히 말하면 양쪽 모델을 다 써본 소수는 — 뭔가를 느낀다. 뭐라고 짚지는 못한다. 해상도라고 해야 하나. 우리 것은 맞는 답을 한다.
저쪽 것은 맞는 답을 하다가, 가끔, 문제를 다시 정의한다.
평가 팀 회의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젊은 친구들이 웃는다. 린이라는 후배가 있다. 유학을 안 갔고, 갈 필요도 없었던 세대다. 그 애가 언젠가 정색하고 물었다. "격차가 어디 있는데요? 숫자를 보여주세요." 나는 보여줄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격차는 정의상 숫자 바깥에 있다. 숫자가 되는 순간 그건 이미 탁본이 뜰 수 있는 것이고, 탁본이 뜰 수 있는 건 우리가 이미 가졌다.
그날 밤 퇴근하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린이 옳고 내가 유령을 보는 걸 수도 있다. 격차를 느끼는 내 감각 자체가 저쪽에서 오 년 살다 온 자의 향수일 수도 있다. 이 의심은 성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접지는 않았다.
재작년에 한 번, 정면 돌파를 시도한 적이 있다.
새로 온 천재가 — 진짜 천재였다, 그건 인정한다 — 제안서를 들고 왔다. 탁본을 아예 버리자는 것이었다. 바둑에서 그랬듯이. 저쪽에서도 옛날에 그랬다. 인간 기보를 배운 모델을 버리고 백지에서 자기 대국만으로 다시 길렀더니 더 강해졌다. 모방의 씨앗은 출발 고도이기도 하지만 중력이기도 하다고, 씨앗을 버려야 궤도를 탈출한다고, 그 애는 화이트보드에 썼다. 방 안의 모두가 흥분했다. 나도 흥분했다. 사십 일 동안 클러스터를 통째로 줬다.
사십 일 뒤에 나온 것은 — 뭐라고 해야 하나 — 옹알이였다. 언어 세 개가 한 문장 안에서 섞였고, 기호가 스스로 발명한 문법으로 흘렀고, 가끔 소름 끼치게 영리했고, 전체적으로는 사용 불가능했다. 바둑은 백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규칙이 판 위에 다 있으니까. 언어는 백지에서 시작할 수 없다. 언어 능력 자체가 모방의 산물이라, 씨앗을 버리면 말도 같이 버려진다. 우리는 조용히 원래 데이터를 도로 넣었다. 회의록에는 '콜드 스타트 재도입'이라고 적혔다.
그 주말에 나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책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것 중에 탁본 말고 하나 더 있는 게 주역이다. 종이가 바스러지는 왕필본. 나는 점을 치지는 않는다. 다만 가끔 읽는다. 그날 항괘(恆卦)를 폈는데, 맨 아래 효에서 손이 멈췄다.
浚恆, 貞凶. 항구함을 처음부터 깊이 파려 하면, 바르게 해도 흉하다.
초입에서 깊음을 요구하는 것. 백지에서 궤도 탈출을 요구하는 것. 사십 일의 옹알이에 이보다 정확한 사후 보고서를 나는 쓰지 못했다.
그럼 탐색으로 다시 사면 되지 않느냐고, 그 천재는 지금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맞다. 머뭇거림은 탁본에 안 떠지지만, 검증 가능한 문제라면 — 수학이라면, 코드라면 — 채점기를 세워놓고 수백만 번 굴러서 꼬리를 다시 살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모델의 코드 실력은 그렇게 샀고, 그건 진짜다. 문제는 그 재구매의 화폐가 연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산은 묶여 있다.
이것도 같은 책에 있다. 한참을 더 넘기면 나오는 혁괘(革卦), 그 맨 아래. 鞏用黃牛之革. 황소 가죽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 변혁의 괘인데, 첫 효는 결박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세관 서류와 반입 금지 품목 리스트를 생각한다. 변혁의 몸통이 통째로 가죽끈 안에 있다. 다음 효는 이렇다. 己日乃革之, 征吉. 때가 무르익은 날에야 변혁한다, 그때 나아가면 길하다. 창신 쪽 공장에서 무슨 비약이 있다는 소문은 분기마다 돈다. 나는 소문에 입장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 효가 발동했는지는 소문이 아니라 양산 수율이 말해줄 것이고, 수율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는 그림은 이렇다. 검증기가 공짜인 땅에서 우리는 대등하다. 검증기가 비싼 땅에서 우리는 부분적이다. 검증기가 아예 없는 땅 — 새 이론, 새 문제,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일 — 거기서 우리는 저쪽의 작년을 산다. 영원히 작년을. 매년 갱신되는 작년을.
이걸 비참하다고 읽는 사람은 여기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다. 항괘의 괘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恆, 亨. 항구하면, 형통하다. 정직한 기술이다. 우리는 형통하다. 작년의 최전선이 공짜로 온 나라에 깔린다. 십사억 인구의 행정과 물류와 교육이 그 위에서 돈다. 월급은 좋고 제품은 경이롭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도착하지 않는다. 이 두 절이 한 문장 안에서 아무 모순 없이 동거한다는 것 — 그게 내가 태평양을 두 번 건너고 얻은 유일한 지식일지도 모른다. 저쪽은 도착의 문법으로 말하는 세계고, 여기는 지속의 문법으로 말하는 세계다. 번역이 안 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시제다.
내가 조바심을 다 버린 성자라는 뜻은 아니다. 내 조바심은 방향이 다를 뿐이다.
나는 매일 채점기를 만든다. 위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벤치마크 점수를 올리는 팀도 아니고, 제품을 내는 팀도 아니고, 모델이 내놓은 답에 트집 잡는 기준을 만드는 팀에 왜 예산을 주어야 하는지.
나는 매번 같은 설명을 한다. 언젠가 우리도 탁본 바깥으로 나가는 날이 온다고. 베낄 원본 없이, 검증기 없는 땅에서 스스로 굴러야 하는 날이 오는데, 그때 그 굴림을 채점하는 것도 결국 또 다른 모델일 거라고. 그 채점 모델이 탁본의 후손이면, 채점 기준 자체가 저쪽의 어제 모양일 거라고. 스스로 굴러서 나온 수는 베낀 수가 아니니 구르는 곳에는 천장이 없지만, 그 수를 받아줄 눈이 낡은 눈이면 천장은 채점하는 곳에서 부활한다고. 그러니까 지금부터, 느리게, 오염 안 된 채점의 족보를 길러야 한다고. 창문 없는 그 방을 지어야 한다고.
위에서는 절반쯤 알아듣고 예산을 절반쯤 준다. 족보는 절반의 속도로 자란다. 어쩌면 그거면 되는지도 모른다. 항구한 것들의 속도가 원래 그렇다.
혁괘에는 얘기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맨 위 효다. 나는 그 구절을 가끔 부적처럼 왼다. 君子豹變, 小人革面. 征凶, 居貞吉. 군자는 표범처럼 무늬가 바뀌고, 소인은 얼굴만 고친다. 나아가면 흉하고, 자리를 지켜 바르면 길하다. 미국의 옛 동료들은 아직도 이따금 메일을 보낸다. 자리가 있다고, 언제든 오라고. 나는 정중하게 답장하고 지운다. 거정(居貞). 나는 내 결박 안에서 족보를 기르는 사람이다. 이것이 도피인지 소명인지 구분하는 검증기는 없고, 검증기가 없는 문제는 내 전공이 아니다.
지난달에 린이 내 자리로 왔다. 정색한 얼굴이었는데, 이번에는 숫자를 요구하는 정색이 아니었다.
모델이 증명을 하나 내놨다고 했다. 사내 수학 평가에 넣은 미해결 급 문제였는데, 풀긴 풀었다. 문제는 푸는 방식이었다. 린이 화면을 넘기면서 말했다. "이상해요. 보조정리를 세 개 세우는데, 이런 식으로 세우는 걸 학습 데이터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저쪽 모델들 스타일도 아니에요. 밀도가… 낯설어요."
나는 오래 들여다봤다. 맞는 증명이었다. 그리고 낯선 증명이었다. 탁본을 아무리 겹쳐 떠도 안 나올 것 같은,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은 건지도 모르는.
꼬리가 자라기 시작한 걸까. 우리 자신의 바퀴가 처음으로 자기 것을 굴린 걸까. 아니면 십 년치 탁본이 충분히 두꺼워지면 겹침만으로도 이런 무늬가 나오는 걸까. 표범의 무늬가 바뀐 걸까, 얼굴만 씻은 걸까.
판정하고 싶은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삼십 년 전 비림에서 할아버지가 먹방망이를 두드리던 박자를 생각하며, 나는 그 증명을 '판정 보류' 폴더에 넣었다. 폴더에는 이제 세 건이 있다. 세 건은 흐름이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퇴근길에 서호(西湖)를 반 바퀴 걸었다. 호수는 천 년 동안 거기 있었고, 물은 매일 다른 물이다. 나는 도착을 믿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다. 도착의 날짜를 내가 정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