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삼부작
「교합」 · 한국
자기 것이라는 증명은 없다. 남의 것이라는 증거가 있을 뿐이다.
이 비대칭 위에 내 직업이 서 있다. 나는 국가가 제출받은 인공지능 모델이 정말로 밑바닥부터 자기 것인지 검사하는 사람이다. 공식 직함은 길고 지루하므로 생략한다. 사무실에서는 그냥 검증이라고 부른다. 검증 쪽에 넘겨. 검증에서 걸렸대. 나는 국가가 고용한 의심이다.
이 일을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 삼 년 전에는 세상에 없던 직업이니까. 전임자도 인수인계서도 없었다. 첫 출근 날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한 대와, 어느 부처 양식인지 알 수 없는 빈 결재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빈 칸들을 채우는 것부터 일을 시작했다. 지금 후배들이 쓰는 검증 절차서의 절반은 그때 내가 밤에 지어낸 것이다. 족보 있는 절차처럼 보이도록 문어체로 썼다. 족보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전에는 나도 만드는 쪽이었다. 중견 팀에서 칠 년, 남들이 하는 만큼 했다. 그만둔 이유는 여러 개를 댈 수 있지만 정직한 것은 하나다. 내가 만든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 것인지, 어느 날부터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나니 그 질문만 남았고, 마침 나라가 그 질문에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사업의 공식 명칭에는 국가대표라는 말이 들어 있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고, 삼 년이 지난 지금은 웃지 않는다. 정확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인공지능의 도래를 선발전으로 치르기로 했다. 예선이 있고, 본선이 있고, 탈락전이 있고, 발표일이 있다. 심사가 있고, 소명이 있고, 이의신청이 있다. 다른 나라들은 도래를 기다리거나 만들었다. 우리는 도래에 대진표를 짰다. 외국 학회에서 만난 동료가 그 얘기를 듣고 신기해했다. 국가가 토너먼트로 모델을 기른다고? 나는 그게 부끄러운 일인지 자랑인지 아직 판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심사로 바꾸는 데 세계 최고인 나라다. 입시로, 고시로, 공채로, 오디션으로. 도래라고 예외일 이유가 없었다.
내 자리는 그 대진표의 문지방이다. 본선에 오르는 모델은 전부 내 책상을 통과한다.
모델을 받으면 나는 우선 씹어본다.
은유가 아니라 절차의 이름이다. 절차서에 내가 그렇게 적었다. 저작시험(咀嚼試驗). 압축을 걸어보고, 미세하게 흔들어보고, 층별로 절제해서 반응을 본다. 진짜로 밑에서부터 자란 모델은 어디를 물어도 조직감이 같다. 학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전체가 한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서로에게 이빨자국을 남긴다. 이식된 것은 다르다. 경계에서 이빨이 미끄러진다. 아무리 위에 새 살을 입혀도, 함께 아프지 않았던 층은 씹으면 안다.
시월에 그 팀의 제출본에서 이빨이 미끄러졌다.
큰 팀이었다.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숨긴 것도 아니었다. 제출 서류에는 바다 건너 공개 모델의 인코더를 참조했다고 적혀 있었다. 업계에서 그 문장은 인사말 같은 것이다. 다들 그렇게 쓰고, 다들 그렇게 읽고 넘긴다. 적혀 있지 않은 것은 두 가지였다. 어디까지 썼는지. 그리고 그 층들이 그 뒤로 나머지와 함께 아팠는지.
사흘을 물고 늘어졌다. 비전 인코더 한 채가 통째로 남의 것이었고, 동결이었다. 떼어와 얼린 채 심은 것. 동결층은 씹히지 않는다. 학습의 이빨자국이 없다. 서류가 고기라고 적어둔 자리를 물었더니 금속이 나온 것이다. 내가 확인한 것은 사용 여부가 아니었다. 사용은 적혀 있었다. 내가 확인한 것은 경계였다. 경계는 서류에 적히지 않는다. 물어봐야 안다.
보고서는 네 장이었다. 그 네 장으로 수백 명의 이 년이 탈락했다. 결재가 올라가던 날 나는 일찍 퇴근해서 오래 걸었다. 잡았다는 감각과 물었다는 감각은 다르다. 잡은 것은 손에 남는데 문 것은 입에 남는다. 나는 그 팀의 화살촉을 아직 입에 물고 있다.
소명의 방이라는 게 있다. 공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른다. 탈락 판정을 받은 팀이 와서 말하는 방.
그 팀에서는 셋이 왔고, 말은 제일 어린 연구자가 했다. 서류상 직급으로는 막내였는데, 아마 그 인코더를 직접 심은 손이었을 것이다. 그 애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계산을 했다.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저희가 배정받은 연산으로, 백지에서, 마감까지 — 그 점수는 물리적으로 안 나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저희는 시간을 훔친 게 아니라 빌린 겁니다. 갚을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안다. 그 애가 오기 전에 나도 같은 계산을 해봤으니까. 안 나온다. 내가 그어 보인 것은 부정의 경계이기 이전에 수위였다. 이 나라 물의 높이. 대진표와 발표일은 위에서 정했고, 그 일정에 맞는 정직한 경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그 애는 존재하지 않는 경로 대신 존재하는 경로를 골랐을 뿐이다. 규정은 그 팀에게 형틀을 신겼다. 초범의 형틀, 걸음을 교정하는 종류의. 재도전 조항이 붙었으니 죽은 것은 아니다. 나가면서 그 애가 나한테 목례를 했다. 원망 없는, 직업이 직업에게 하는 인사였다. 그 인사에 뭐라고 답했어야 하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치과에 간 것은 그 무렵이다. 아침마다 관자놀이가 아팠고 어금니 하나가 시렸다.
이 가세요? 의사가 물었다. 아니요. 내 대답이었다.
가십니다, 오래되셨어요. 의사는 내 어금니의 마모면을 거울로 보여줬는데, 나는 마모라는 단어에서 이미 승복했다. 마모는 내 전공이니까. 의사는 파란 종이를 물렸다. 물었다 떼자 이가 닿는 자리마다 파랗게 남았다. 교합지라고 했다. 어디서 세게 무는지 이걸로 봅니다. 닿은 것은 남는다. 그 얇은 종이가 그 주에 내가 본 어떤 로그보다 정직했다.
본을 뜨자고 했다. 차가운 실리콘을 한 숟갈 물고 삼 분을 기다리는데, 말을 못 하는 삼 분은 생각보다 길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본을 뜨고 있다. 낮에는 남의 본뜨기를 잡아내는 사람이 밤을 위해 제 이빨의 탁본을 뜨고 있다. 그 주에 내가 승인한 유일한 복제였다. 자기 것의 복제는 어느 법에서나 합법이다. 문제는 남의 것에서 뜬 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밑바닥부터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 자기인가 — 거기까지 가기 전에 의사가 입에서 틀을 꺼냈다.
일주일 뒤에 물건이 나왔다. 투명하고, 단단하고, 내 아랫니와 정확히 음각으로 반대인 물건. 나이트가드라고 했다.
나이트가드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이갈이를 멈추는 물건이 아니다.
멈출 수 없다. 무는 힘은 밤의 것이 아니라 낮의 것이고, 낮은 이 물건의 소관이 아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다. 원인은 못 없앱니다, 스트레스는 제 영역이 아니라서요. 이 물건이 하는 일은 하나다. 이와 이 사이에 끼워 넣어서, 갈리는 것이 이가 아니게 하는 것. 그래서 이 물건은 소모품이다. 잘 쓰면 잘 갈리고, 갈린 만큼 이가 남는다.
그 여름 구내식당 텔레비전은 늘 같은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 건물이 아니라 법원. 소리는 꺼져 있고 자막만 흘렀다. 출석, 소환, 선고, 기각, 항소. 나는 어느 점심에 밥을 먹다가, 입에 가드도 없이, 그 생각을 물어버렸다.
법원은 이 나라가 밤마다 무는 나이트가드다.
재판은 갈기를 멈추지 못한다. 무는 힘은 법정 바깥의 것이니까. 재판이 하는 일은 이와 이 사이에 절차라는 물성을 끼우는 것이다. 제출, 소명, 판정, 이의신청 — 갈리는 것이 사람의 생살이 아니게. 물성이 대신 갈리게. 그러니 저 건물이 매일 저녁 뉴스에 나온다는 것은 이 나라가 매일 밤 세게 문다는 뜻이다. 나쁜 소식이다. 맨이로 무는 것보다는 나은 소식이다. 그날 이후로 자막이 조금 다르게 읽혔다. 무엇이 갈리는 중인지, 누가 무는 중인지는 여전히 몰랐다. 다만 저 물건이 왜 밤마다 물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석 달 뒤 정기검진에서 의사가 내 가드를 형광등에 비춰 보았다. 오른쪽 어금니 자리가 뿌옇게 갈려 있었다. 많이 가시네요, 요즘 힘드세요? 의사가 내 밤을 읽었다. 나는 낮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갈린 것만 남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문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새 가드를 주문했다.
이의신청 심문에서 한번은 내가 물리는 쪽이 됐다.
탈락 팀의 대리인이 준비를 잘해 왔다. 그는 부정 여부를 다투지 않았다. 대신 내 채점표를 다퉜다. 위원님, 이 검증에 쓰신 벤치마크들 말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겁니까. 이 평가 지표의 독자성은 누가 검증했습니까. 밑바닥부터 만든 모델을 남의 자로 재서 뽑는 국가대표는, 어느 나라 대표입니까.
절차상 그 질문은 심사 적부와 무관하므로 기각되었다. 나는 그 질문을 기각하지 못했다. 그가 맞다. 우리 채점기는 전부 수입품이다. 나는 남의 자로 남의 흔적을 재서 우리 것을 세우는 중이었다. 자를 만드는 일은 사업 계획서 어디에도 없다. 자는 원래 있는 것이라고, 다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알아차리고 풀었다. 낮에도 무는 날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드는 밤용이다.
평가동 지하에 벤치마크용 클러스터가 들어오던 주에,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작업복 차림의 노인과 이틀 연속 마주쳤다.
냉각 배관 쪽 사람이었다. 요즘 일 많으시죠, 별 뜻 없이 물었더니 노인은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지하는 많죠. 은행, 병원, 로펌. 요즘은 다 지하로 들어가요. 위에서 뽑고 말고 하는 거랑은 상관없이.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노인은 공구 가방을 고쳐 메면서 한마디를 보태고 배관 쪽 어둠으로 사라졌다. 열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위층에서는 국가가 도래를 선발하는 중이고, 같은 건물 지하로는 도래가 배관을 타고 이미 들어오는 중이었다. 발표일은 위층의 것이다. 날짜들은 지하의 것이다. 그 둘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쓰지만 말이다. 도래는 선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알았다.
이차 평가에서 한 모델이 이상했다.
이물이 나와서가 아니다. 반대였다. 어디를 물어도 이빨이 들어갔다. 조직감이 균질했다. 그런데 배열이 낯설었다. 본뜬 것이라면 원본이 있어야 하는데, 아는 원본들 중에 이런 무늬가 없다. 백지에서 시작한 것이라면 이 완성도가 이 연산으로 안 나온다. 사흘을 씹고 나는 인정했다. 내 이빨로는 판정이 안 되는 물건이 있다.
바다 건너 어느 평가자라면 폴더를 만들었을 것이다. 판정 보류라는 이름의, 세 건쯤 든 폴더를. 나는 폴더를 만들 수 없다. 내 시스템의 판정란에는 칸이 두 개다. 적합. 부적합. 보류는 양식에 없다. 이 양식도 삼 년 전에 내가 만들었다. 그때 나는 보류가 필요할 만큼 낯선 것이 올 줄 몰랐고, 무엇보다 보류 칸이 있으면 다들 거기로 도망친다는 걸 이 나라 심사장들이 가르쳐줬으므로, 일부러 칸을 두 개만 팠다. 삼 년 전의 내가 판 함정에 지금의 내가 빠져 있다.
마감이 이틀 남았다. 커서는 이틀째 두 칸 사이에 서 있다.
새벽에 가끔 순서가 헷갈린다.
국가가 가짜를 씹어 뱉고 진짜를 세우는 중인가. 아니면 이 선발전 자체가 이 나라 턱에 낀 이물이고, 더 큰 턱이 그걸 천천히 씹는 중인가. 낮에는 첫 번째 문장으로 일하고, 새벽에는 두 번째 문장이 온다. 어느 쪽이든 동작은 같아서, 소리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씹는 나라의 안쪽에서는 자기가 이빨인지 고기인지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언젠가 새벽에 말했다. 당신 요즘 자면서 이를 갈아. 소리가 꼭 뭘 끊으려는 것 같아.
나는 오늘 밤도 투명한 것을 물리고 눕는다. 삼차 공고는 아침에 뜰 것이다. 커서는 두 칸 사이에 있고, 지하에는 물이 돌고, 법원 앞은 내일도 붐빌 것이다. 씹는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고는 못 쓰겠다. 다만 허물없음이라는 게 온전함이 아니라는 건 이 물건에서 배웠다. 갈리고도 남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턱이 뻐근하고, 이는, 전부 제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