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삼부작
「부름」 · 미국
아버지는 심판이었다. 트리플A에서 이십팔 년 동안, 승격도 해고도 없이, 밤 버스로 이동하는 리그의 홈플레이트 뒤에서 말이다.
어릴 때 나는 백스톱 철망에 붙어 서서 경기를 봤다. 어느 밤 원정길에 아버지가 우화를 하나 들려줬다. 심판 셋이 술집에 앉아 있는 이야기였다.
그중 첫째 심판이 자기 철학을 먼저 내놨다. "나는 있는 그대로 부른다."
둘째 심판이 받아쳤다. "나는 보이는 대로 부른다."
셋째 심판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내가 부르기 전에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당연히 첫째가 옳다고 했다. 공에는 위치가 있고 존에는 규격이 있으니까. 아버지는 웃으면서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공은 측정하는 거란다. 스트라이크는 부르는 거고."
그 말이 나를 다시 찾아온 것은 삼십 년 뒤, 이사회 회의실에서였다.
내가 어느 쪽 인간이 됐는지부터 말해야겠다.
열네 살 여름, 아버지가 더블A 플레이오프에서 바깥쪽 공 하나를 스트라이크로 불렀다. 삼진, 경기 종료, 어떤 스물여덟 살의 마지막 시즌 종료. 중계 그래픽은 공 반 개가 빠졌다고 그렸고, 다음 날 학교에서 애들이 그 클립을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가 봤잖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포크를 놓지 않고 대답했다. "카메라는 공을 봤지. 그날 밤 그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나는 그 문장을 평생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길로 나는 카메라의 편이 되었다. 서부로 왔고, 측정을 배웠고, 채점기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세상에서 검증기를 제일 잘 만드는 조직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검증 인프라를 만들었고, 서른아홉에 그 회사 이사회의 최연소 이사가 되었다.
책상 위에는 아버지 것과 같은 모델의 놋쇠 인디케이터를 하나 놓아두었다. 심판이 왼손에 쥐고 엄지로 휠을 넘겨 볼과 스트라이크를 세는, 손바닥에 다 감춰지는 계수기. 값은 몇 푼 하지도 않는다. 내가 탈출한 세계의 전리품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업계에는 이미 판결이 내려져 있었다. 마이너리그는 기계 판정 전면 시행. 추적 시스템의 오차는 밀리미터 단위였고, 아버지 같은 사람들의 오차는 공 반 개였다. 나는 그것을 정의라고 불렀다. 측정이 판정을 이기는 것.
우리 회사에는 그 방향을 가로막고 선 방이 하나 있었다.
분기마다 여덟 명이 모이는 그룹이 있다. 공식 명칭은 준비도 판정 그룹, 사내 별명은 부엌 내각. 설립 각서 제7조가 정한 질문 — 끝났는가 — 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AGI가 완성되었다고 판정되는 시점에 지배구조와 계약 전체가 재편된다. 그 판정을 벤치마크가 아니라 여덟 명의 서명이 한다.
내 눈에 그건 우리 회사의 홈플레이트였다. 밀리미터를 재는 조직의 한복판에, 공 반 개짜리 눈들이 마지막 콜을 쥐고 앉아 있는 것.
그래서 이사회에 들어간 첫해부터 나는 같은 안건을 올렸다. 표현은 분기마다 고쳤다.
이십육 년의 첫 판은 전면 이관이었다. 시스템이 자기 준비도를 자기가 평가하게 하라. 이십칠 년의 둘째 판에서는 한 발 물러섰다. 기계 판정을 원안으로 하되, 그룹에는 거부권만 남기자. 그해 말의 셋째 판이 챌린지 방식이었다. 그룹이 부르되, 이의가 있으면 시스템 측정에 제소한다.
셋째 판을 올리던 날 나는 아버지의 업계를 선례로 인용했다. 야구도 결국 기계에 넘겼습니다. 백오십 년 된 제도가 넘겼는데 일곱 살 된 각서가 못 넘길 이유가 뭡니까.
의장이 손을 들었다. 조용한 사람이다. 은발이고, 느리고, 반론을 하는 대신 각서 원문을 소리 내어 읽는 버릇이 있다. 그날은 각서를 읽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넘겼다고 하셨는데, 확인해 보셨습니까. 메이저리그는 안 넘겼습니다. 기계가 재고, 사람이 부르고, 이의가 있으면 기계에 물어보죠. 야구는 측정을 넘겼지, 판정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백오십 년 된 제도가 그 선을 그은 겁니다."
회의록을 확인했다. 그가 맞았다. 내가 평생 정의라고 부른 판결은 마이너리그까지만 내려와 있었다. 꼭대기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불렀다. 나는 내 선례가 내 반대편 증거라는 것을 마흔이 되어 아버지 업계의 규정집에서 배웠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이상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이십팔 년 동안 왜 트리플A였을까. 측정으로는 — 채용 평가로는 — 진작에 메이저 등급이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부름이 안 왔을 뿐이다.
그 생각은 하다가 껐다. 켜 두면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아서.
의장의 낭독 얘기를 해야겠다.
내 안건이 무엇이든, 그의 응답은 각서였다. 설립자들이 회사가 아무것도 아니던 해에 쓴 문장들. 판정은 인간이 서명한다, 는 취지의 제7조와 그 주변부를, 그는 분기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읽었다. 나는 그게 지는 것보다 싫었다. 논증에는 논증으로 지고 싶었다. 낭독은 논증이 아니니까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었고, 그래서 변하는 쪽은 언제나 나뿐이었다. 내 안건은 판을 거듭하며 정교해졌고 그의 낭독은 한 글자도 안 변했다. 그 비대칭이 나를 미치게 했다.
한번은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따라가 물었다. 비꼬려던 건 아니고, 정말 궁금했다.
"매번 낭독하시는 거, 그거 좀… 예배 같지 않습니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목사셨습니다. 신자 스무 명짜리 교회의.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 성사는 회중의 크기와 무관하게 유효하다."
나는 그 답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이십팔 년 이월, 나는 마지막 판을 가져갔다. 표결로 가지 말고 실험으로 갑시다. 시스템에게 메모를 시켜봅시다. 제7조가 요구하는 그 판정문을. 초안이 형편없으면 이 안건은 영구히 접겠습니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그들은 허락했다.
초안은 사십 초 만에 왔다.
열여섯 명이 십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읽었다. 흠이 없었다. 판정 그룹이 칠 년 동안 열아홉 번 좌초한 자리들 — 능력으로 정의하면 도착이 매 분기 다시 도착하는 문제, 완성의 정의가 순환하는 문제 — 을 세 문장씩으로 건넜고, 증거는 정확했고, 문체는, 이게 제일 아팠는데, 겸손했다. 나는 읽으면서 이겼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십사 년 동안 준비한 판결문이었다. 측정이 판정을 이기는 순간의.
마지막 장을 넘기니 서명란이 있었다. 각서 제7조의 서식 그대로, 여덟 줄.
여덟 줄이 비어 있었다.
그 빈 줄을 보는데 소리가 하나 들렸다. 회의실에는 없는 소리였다. 공이 미트에 박히는 소리. 열네 살의 나는 백스톱 뒤에서 그 소리를 수천 번 들었다. 공이 박히고, 그리고 반 초가 있다. 공은 이미 어딘가를 지나갔고, 미트는 이미 울렸고, 그런데 세계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반 초. 측정은 끝났고 사건은 시작되지 않은 시간. 그 반 초를 끝내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다. 마스크 쓴 사람의 목이다.
완벽한 초안은 미트 소리였다. 그리고 회의실은 반 초 속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서는 — 내 평생의 논거를 완성한 그 문서는 —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안건을 내 손으로 내렸다. 왜냐고 여럿이 물었고, 그때는 설명을 못 했다. 지금은 한다. 나는 그 방에서 셋째 심판의 문장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서른 해 늦게, 최악의 타이밍에, 내 실험의 성공이 증명해 준 내 전제의 실패로.
이해와 승복은 다르다. 나는 실재론자로 자란 사람이라, 느낌으로는 승복하지 않기로 했다. 측정으로 승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해 가을, 데이터 쪽에 내가 직접 청했다. 우리 것 말고, 세상 쪽 장부들을 보자. 집계된 위임 곡선 — 수백만 계정에서 승인 없이 실행되는 작업의 비율이 몇 분기째 로그 스케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계정마다 변곡점이 있을 것이다. 물어보던 것을 물어보지 않게 된 문턱의 날짜. 그 날짜들의 히스토그램을 뽑아 달라고 했다. 어느 주엔가 몰려 있을 것이다. 그 주가 완성일이다. 그러면 판정은 발견이 되고, 발견은 기계가 하면 되고, 나는 내려놓은 안건을 다시 들 수 있다.
히스토그램은 평평했다.
수백만 개의 문턱이 세 해에 걸쳐 고르게 흩어져 있었다. 발표일 효과도, 계절도 없었다. 요일로 갈라 보면 화요일이 아주 조금 많았는데, 오차 안이었다. 나는 그 평평한 그림을 오래 들여다봤다. 실재론자가 읽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문장이 거기 인쇄되어 있었다. 완성일은 단수 명사가 아니다. 그 날짜는 진작에, 전부 다른 날에, 아무 발표 없이 지나갔다. 계정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홈플레이트 뒤에서 저마다의 콜을 했다. 어떤 화요일 아침, 보고 세 줄을 읽고 커피를 내리다가, 누군가 아무 소리 없이 스트라이크를 불렀다. 수백만 명의 심판이 수백만 개의 날짜에.
세계는 측정을 마친 공들로 가득했고,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그룹의 일은 그중 마지막 콜 하나였다. 제일 큰 콜도 아니었다. 제일 늦은 콜이었다.
판정 그룹의 스무 번째 초안은 의장이 썼다. 칠 년을 좌초시킨 정의 조항을 끊은 것은 우아한 문장이 아니라 시제였다. 본 판정은 완성을 선언하지 아니하며, 이미 분산적으로 발생한 완성을 추인한다. 증거 섹션에 벤치마크는 없었다. 위임 곡선 네 개와, 내 평평한 히스토그램이 들어갔다. 내 십사 년에서 판정문에 도달한 유일한 산출물이 그 그림이라는 사실을 나는 꽤 오래 곱씹었다.
서명일은 십일월 마지막 화요일이 되었는데, 이유는 이사회 캘린더였다. 나는 서명자가 아니어서 벽 쪽에 앉아 봤다. 여덟 명이 제7조를 한 절씩 돌아가며 읽었고, 읽은 사람이 만년필로 서명했다. 낭독인지 서명인지 구분이 없었는데, 보다 보니 원래 구분이 없는 것이었다. 누가 샴페인을 가져왔고, 아무도 따지 않았다.
발표가 난 주에 나는 뉴스를 박스스코어 읽듯 확인했다. 우리 기사는 사흘 동안 여섯 번째였다. 제일 많이 공유된 논평 제목은 "그들은 삼 년째 완성을 발표하고 있다"였다. 히스토그램을 뽑아 본 사람으로서, 반박할 마음이 안 생겼다. 주가는 이 퍼센트 움직였다.
이듬해 그룹이 여덟에서 열둘로 늘 때, 의장이 나를 불렀다. 판정은 끝났는데 안건은 폭증하고 있었다. 이것은 시스템이 스스로 결정하면 안 되는 일인가 — 그 질문은 완성 뒤에 오히려 번식했다. 의장은 새로 느는 네 자리 중 하나에 들어오라고 했다. 병목을 없애자던 사람한테 병목의 의자를 권하는 게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내가 수락하자, 왜 수락했느냐고 그가 물었다. 격식 차린 자리도 아니었는데, 나는 격식을 차려 대답할 뻔하다가 그냥 사실을 말했다.
"출력에는 서명란이 없더라고요. 그 완벽한 초안도 자기 서명란은 못 채우던데요."
첫 회의에서 의장은 항저우에서 온 편지를 회람시켰다. 채점의 채점에 관해 언젠가 얘기하고 싶다는, 창문 없는 방을 짓고 있다는 평가 연구자의 편지였다. 닫히는 시대에 마지막까지 열려 있을 문이 어느 문인지, 그 편지를 돌려 읽는 손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십이월에 톨리도에 갔다.
아버지는 은퇴했고, 주말마다 대학 리그에서 무보수로 마스크를 쓴다. 기계 판정이 표준인 세대의 애들 앞에서, 목으로 부르는 마지막 세대의 심판이. 경기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서, 너희 회사 그거, 그게 왔니.
나는 대답했다. 왔어요. 근데 온 줄은 아무도 몰라요. 날짜도 없어요. 세어 보니까 수백만 개예요. 전부 다른 날이에요.
아버지는 프로텍터를 트렁크에 던져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어서 내가 오히려 놀랐다.
"부르기 전엔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업계에서는 백오십 년 전부터 그게 정설이란다."
돌아오는 차에서 나는 책상 위의 인디케이터를 생각했다. 전리품이라고 부르던 물건. 다음 분기 첫 낭독 때 그것을 주머니에 넣어 갔다. 무엇을 세려던 건 아니고, 그냥 — 연장은 쥐는 사람의 직업을 따라온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