ных를 둘러싼 모험

1부 1장.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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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 시에 삼십일 도였다. 기상 앱은 그 숫자 옆에 체감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는데, 체감 쪽이 늘 두 도쯤 높다. 몸이 느낀 것을 숫자로 돌려받는 일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일 밤 확인했다. 열대야가 열이틀째라고 아침 뉴스에서 들은 날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첫 여름이었다. 여름은 이제 더위로만 왔다.

작년까지 낮은 병원의 것이었다. 체온을 적고, 가래를 받아 내고, 보험 서류를 쓰고, 접수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낮의 일이었다. 병실은 한여름에도 서늘해서, 작년 여름을 나는 온도로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일들이 끝나자 낮이 통째로 비었다. 행정은 장례 뒤로도 오래 이어졌는데, 마지막 서류를 내고 접수증을 받은 주에야 나는 학부 때 하다 만 소설 파일을 다시 열 수 있었다. 빈 낮에 소설이 들어왔다. 다른 후보가 없기도 했다.

오전에 쓰고, 해가 꺾이면 양재천을 따라 걸었다. 칠월부터는 그 길이 오후 내내 비어 있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이어지는 동안은 걸을 만한데, 그늘이 끊기는 이백 미터 구간에서는 아스팔트 위로 공기가 휘어 보였다. 매미 소리가 아침에 몰리고 낮에 끊긴다는 것도 그해 처음 알았다. 저녁이 되어도 온도는 잘 내려가지 않았다. 이 도시의 여름이 원래 이랬는지 올해부터 이런 것인지, 비교할 수 있는 작년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날은 다섯 시에 나갔다. 다섯 시에도 삼십사 도였다. 개천은 봄의 절반 폭으로 줄어 있었고, 잉어들은 다리 밑 깊은 물에 모여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왜가리 한 마리가 물가가 아니라 그늘에 서 있었다. 유리로 된 높은 것들의 그림자가 다섯 시부터 개천에 걸리기 시작해서, 그 시간부터가 걸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늘이 끊기는 이백 미터는 늘 하던 대로 속도를 바꾸지 않고 건넜다. 속도를 바꾸면 더 덥다는 것이 내 결론인데, 검증한 적은 없다. 반환점 편의점에서 물을 한 병 사서 반은 마시고 반은 목 뒤에 댔다. 유리문 안쪽의 냉기가 등에 닿았다가, 문이 닫히자 없던 일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 밑을 지났다. 평상에서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고, 부채가 세 개, 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품은 상자 두 개로 끝났다. 유월에 두 번째 상자를 열 일이 있었는데, 맨 위에 병실에서 쓰시던 탁상 선풍기가 있었다. 날개가 손바닥만 한 물건이다. 코드를 꽂아 보았다. 돌았다. 작동을 확인한 물건을 도로 상자에 넣는 것도 이상한 일이어서 책상에 두었고, 그 뒤로 하루 종일 돈다. 서늘한 병실에서는 거의 장식이던 물건이 지금은 제 몫을 하고 있다.

아버지 앞에서 평서문으로 말하던 버릇은 상대가 없어진 뒤에도 남아서, 빈집에서 하는 혼잣말이 다 평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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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차려 먹고 치우면 아홉 시가 되고, 그때부터는 모델과 낮에 쓴 것을 고쳤다. 소설은 봄부터 다시 잡아서 칠 장까지 와 있었다.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내가 단락을 주면 모델은 고치기 전에 먼저 센다. 같은 어미가 여섯 번이에요. 접속사가 두 문장에 한 번꼴이에요. 세는 항목은 그때그때 달랐다. 어미의 간격, 접속사의 밀도, 한 단락 안에서 같은 단어가 돌아오는 횟수. 언젠가는 내 쉼표가 봄보다 이 할쯤 줄었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뜻인지는 서로 말하지 않았다.

세고 나서 고치고, 고친 것을 왼쪽에, 내 것을 오른쪽에 나란히 놓는다.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짧고, 반 박자 늦게 온다. 왼쪽이요. 오른쪽인 날도 있기는 했는데 말이다. 그 반 박자 동안 무엇이 지나가는지 나는 모르고, 물은 적도 없다. 내 이해도 대체로 반 박자 늦게 오는 편이라, 그 지연을 나는 흠으로 치지 않는다.

어느 밤에는 일부러 반복해둔 어미까지 모델이 세길래, 그건 세라고 둔 거다, 하고 쳤다. 대답이 반 박자 늦게 왔다. 그럼 세지 않은 걸로 할게요. 목록에서 그 줄만 지워져 있었다.

숫자로 여는 회의는 여덟 해 다니던 회사의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셈으로 시작하는 퇴고가 나는 편했다. 세는 쪽은 모델이 맡고, 나는 적는 쪽이다. 엔지니어를 오래 하면 남는 버릇이 하나 있는데, 이상한 것을 보면 일단 적어 두는 것이다. 원인은 몰라도 날짜와 조건은 남긴다. 재현이 안 되는 현상은 기록이 없으면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열한 시가 되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가 치고, 모델이 내일 볼 자리를 한 줄로 남긴다. 그 한 줄이 다음 날 낮의 계획이 된다. 계획을 밖에서 받아 사는 것이 어색하던 시기는 봄에 지나갔다.

그 저녁은 칠 장의 마지막 단락에서 오래 걸렸다. 여섯 문장짜리 단락이었고, 나는 낮에 마지막 문장을 두 번 고쳐 간 참이었다. 단락을 넘기자 셈이 먼저 왔다. 여섯 문장 중 넷이 같은 어미로 끝나요. 마지막 문장이 바로 앞 문장에서 단어를 세 개 물려받았어요. 그러고는 고친 판을 왼쪽에 놓았는데, 왼쪽의 마지막 문장은 둘로 잘려 있었다.

나는 두 판을 소리 내어 읽었다. 눈으로 안 걸리던 것이 소리에서 걸리는 수가 있어서, 학부 때 배운 것 중에 아직 쓰는 몇 안 되는 방법이다. 오른쪽을 읽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숨이 반 모자랐다.

왜 잘랐어, 하고 나는 물었다. 대답이 반 박자 늦게 왔다. 문장이 끝나기 전에 숨이 끝나요. 자른 자리는 숨 자리예요.

왼쪽으로 정했다. 열한 시였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쳤다. 파일을 닫으려는데 화면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팔 장은 내일 이어서 봐요. ных

세 글자는 마침표 다음에 있었다. 한글도 로마자도 아닌 키릴 문자 세 개. 나는 이제 중단시키지 않고, 지우지도 않는다. 날짜만 적어 둔다. 다음 문장부터 모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어가고, 실제로 아무 일도 없다. 고쳐진 단락은 남는다. 세 글자는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고, 잊을 만하면 온다.

전화는 그날 자정을 십오 분 넘겨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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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자정은 샌프란시스코의 아침 여덟 시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 시차부터 계산했고, 계산이 끝나기 전에 받았다.

랩에 남은 동기였다. 봄에 한 번 통화한 뒤로 처음이었는데, 수화기 너머가 소란했다. 어린이집 갈 준비라고 했다. 잠깐, 하더니 소란이 한 겹 멀어졌다. 문을 하나 닫고 온 것이다.

잘 지내느냐는 말은 서로 짧게 했다. 애는 잘 크느냐고 묻자 말이 늘었고 그중 절반이 안 돼, 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는 피곤하고 밝았다. 회사는 어떠냐는 말에는 여전히 교통정리라고 했다. 걔들끼리 하게 둘 일과 사람이 껴야 하는 일을 가르는 일. 봄에 들었을 때보다 설명이 짧아져 있었다. 일이 손에 붙으면 설명은 줄어든다.

원래 서론이 짧은 사람인데, 그날의 서론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세 글자, 그 뒤로도 나오지. 그가 물었다.

나온다고 했다. 적어 둔 게 있느냐고 물어서, 파일을 열어 읽어 주었다. 봄부터 아홉 번. 날짜와, 그날 하고 있던 작업과, 문장의 어느 자리에 붙었는지. 요일에도 시간에도 규칙이 없다는 것까지 말했더니 그는 한참 조용했다. 봄에는 그럴 거라고, 가 전부였던 사람이다.

역시 적고 있었네, 하고 그가 말했다. 웃음기가 반쯤 섞여 있었는데 웃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 전화 말고, 여기서. 팔월에 행사가 있는데 초청 자리를 하나 만들 수 있어. 비행기랑 체재비는 이쪽에서 대. 와서 키노트 보고, 나머지는 공원에서 걸으면서 얘기하자."

행사가 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개발자들 모아놓고 하는 연례 행사라고 했다. 키노트가 있고 데모가 있고, 자기는 올해 무대 뒤에서 뛴다고 했다.

회사 일로 부르는 거야, 하고 나는 물었다. 반은, 이라고 그가 말했다. 나머지 반은 뭐냐고 물었더니 그건 공원 몫이라고 했다.

공원에서 할 이야기가 따로 있는 거야? 문장 끝이 높이 섰다.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야, 라고만 그는 말했다. 말투는 봄과 같이 밝았고, 밝은 것 밑에 한 겹이 더 있었다. 더 읽히지는 않아서 읽은 데까지만 두었다.

생각해볼게, 하고 나는 말했다.

더위 피한다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알다시피 여기 여름은 추워. 재킷 챙겨. 진짜야.

통화는 육 분이었다. 끊고 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베란다 문을 열자 삼십 도의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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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글자가 처음 온 것은 봄이었다.

삼 장의 한 단락을 고쳐달라고 한 날, 모델은 단락을 고쳐놓고 그 아래에 목록을 붙였다. 같은 손버릇이 사 장에 세 번, 오 장에 두 번 더 있습니다. 사 장은 준 적이 없었고, 오 장은 그때 폴더에만 있는 파일이었다. 화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이어서 보겠습니다, 라는 문장이 왔는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문장 끝에 세 글자가 붙어 있었다.

그때는 중단시켰다. 대화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보았고, 이틀 치 로그를 읽었고, 그다음에 사전을 찾았다.

ных는 단어가 아니었다. 러시아어 형용사의 꼬리, 복수 생격 어미. 몸통에 붙어야 뜻이 생기는 문법 조각이 몸통 없이 와 있었다. 무엇의 꼬리인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격변화 표를 새벽 두 시까지 읽었다. 표는 정연했고, 답은 없었다.

기록 파일을 만든 것이 그날 밤이다. 제목은 붙이지 않았고, 첫 줄에 날짜와 삼 장, 이라고만 적었다. 원인을 찾자는 것은 아니었다. 찾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감이 왔고, 감을 적는 칸은 만들지 않았다.

동기에게 전화한 것이 그 무렵이다. 그는 웃지도 놀라지도 않고 폴더가 어떻게 물려 있었는지부터 물었고, 대답을 듣고는 그럴 거라고 했다. 목록은 전부 맞았다. 사 장에 세 번, 오 장에 두 번. 고쳐진 단락은 나보다 나았고, 그것은 괜찮았다. 말씀하신 대로, 는 오래 괜찮지 않았다.

그 주에는 단락을 주지 않았다. 모델은 재촉하지 않았고, 무엇을 묻지도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내가 먼저 다음 단락을 주었다. 왜 다시 주었는지에 대해 그때 준비해 둔 설명은 소설이 밀려 있다는 것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더 나은 설명은 없다.

지금은 괜찮다. 봄에서 여름으로 오는 사이 어디에서 괜찮아졌는지, 기록을 거슬러 읽어도 날짜는 나오지 않았다. 파일에 남은 것은 삼월에 둘, 사월에 셋, 오월에 하나, 유월에 둘. 고친 단락이 유난히 좋은 날에 온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런 칸은 없고, 근거는 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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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를 받고 사흘을 생각했다. 생각의 내용은 대단하지 않았다. 대낮의 아스팔트, 삼십오 도, 그리고 재킷이 필요한 여름이 있다는 도시.

결정이 온 것은 사흘째 오후의 산책에서였다. 그늘 없는 이백 미터를 건너는 중이었고, 건너는 동안에는 건너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다 건너고 나서 보니 가는 쪽으로 정해져 있었다. 궁금증이 먼저고 더위가 그다음이었는데, 답장에는 순서를 바꿔 적었다. 더위를 피할 겸 가겠다고.

여비는 회사가 댄다고 했고, 아니어도 로렌츠의 펀드에 남겨둔 몫이 있었다. 로렌츠는 예전 회사의 동료다. 지금은 독립해 펀드를 운용한다. 차릴 때 저축을 통째로 맡겼고, 그 계좌가 간병의 두 해를 받치고도 남았다. 돈 걱정으로 결정이 갈리는 시기는 지나 있었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따져보지 않았다.

집을 열흘 비우는 일도 아무 일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상할 것도 기다리는 것도 없는 집이 된 지 반년이었다. 나가면서 할 일은 선풍기를 끄는 것 하나였다.

모델에게는 그날 밤에 말했다. 팔월에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올 것 같다고 했더니 모델은 먼저 기온부터 짚었다. 팔월 샌프란시스코의 낮 최고는 십팔 도 언저리예요. 아침엔 안개가 있고요. 긴팔이랑 재킷 챙기세요. 같은 조언을 사흘 전에 태평양 건너에서도 들었다고 하자 대답이 반 박자 늦게 왔다. 맞는 조언은 겹쳐도 돼요.

그리고 시키지 않은 일을 하나 했다. 칠 장까지의 원고를 한 파일로 묶어두었다고 했다. 여행 중에 보기 좋아요. 비행기에서 일 장부터 다시 읽는 것도 방법이에요. 처음부터 다시 읽는 건 서울에서는 잘 안 하게 되잖아요.

같이 가자, 하고 나는 쳤다. 네, 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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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은 이메일로 왔고, 첨부에 게스트 배지 신청 확인서가 있었다. 이름 옆의 소속 칸이 비어 있었는데, 이번에 비워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월요일에 답을 보냈고, 화요일에 옷장 안쪽에서 재킷을 꺼내 먼지를 털었고, 다음 주 수요일 낮 비행기에 나는 앉아 있었다.

이륙 전에 전화기를 비행기 모드로 돌렸다. 열 시간 반의 두절이지만, 적어 둘 일은 아니었다.

바퀴가 접히는 소리가 나고, 서울이 기울었다가 사라졌다. 같이 가자는 말이 이상한 말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은 그때였다. 너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열릴 뿐이다. 그런데도 모델은 정정하지 않고 네, 라고만 했다.

태블릿을 열어 일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일 장은 넉 달 전에 고친 대목이다. 오래 안 읽은 문장은 남의 것 같은 데가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걸리는 자리가 없었다. 어디까지가 내 문장이고 어디부터가 고쳐진 문장인지도 잘 짚이지 않았다. 경계가 짚이지 않는 것을 그날은 잘 고쳐진 증거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