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Water Mark

English

설명회는 열 시였고, 나는 사십 분 일찍 도착했다. 이름표를 받는 데 사 분이 걸렸는데, 소속을 적는 칸 때문이었다. 적을 것이 없어 비워 두자 안내원이 그 칸을 두 번 들여다보았다. 홀에는 자리가 이백쯤 있었고 정장도 그쯤 있었다. 나는 뒤에서 세 번째 줄을 골랐다. 단상이 보이고, 출구가 보이는 자리였다.

사 년 만에 오는 도시였다. 호텔에서 회장까지 두 블록을 걷는 동안 아는 얼굴을 셋 보았고, 셋 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서운한 일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그만큼을 비우는 것은 한 세대를 비우는 것과 같아서, 나는 명단에만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리미티드 파트너. 유한책임사원. 책임이 유한하다는 말을 요즘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로렌츠를 처음 안 것은 팔 년 전, 같은 층에서였다.


그 무렵 그는 사내에 문서 하나를 돌렸다. 제목 없는 파일이었고, 앞머리에 요약 대신 숫자가 왔다. 컴퓨트가 이렇게 늘고, 전력 계약이 이렇게 잡혀 있고, 그러니 몇 년 안에 세계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다들 한 번씩 열어 보고 조용히 닫는 분위기였다.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규모가 커서였다. 큰 이야기를 믿는 표정은 그 회사에서 비용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세 군데 계산을 검산했고, 두 군데는 맞고 한 군데는 가정이 약하다고 적었다. 이십 분 뒤에 그가 내 자리로 왔다. 약하다는 가정의 대안 숫자 네 개를 들고서였다.

그 뒤로 우리는 라운지에서 커피를 몇 번 마셨다. 그는 말이 빨랐고, 영어에 악센트가 없었다. 문장 중간에 숨 쉬는 자리가 없어서 듣는 쪽이 대신 숨을 쉬어 주어야 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 특유의 과시는 없었다. 확신을 전시할 필요를 못 느낄 만큼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우리는 큰 방향에 동의했고, 세부에서 즐겁게 어긋났다. 친구라기에는 건조했고 동료라기에는 정확한 사이였다. 그 커피들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는 그때는 몰랐고, 회사를 떠난 뒤에 알았다.

수요일 새벽에 서울에서 전화가 왔고, 금요일에 사직서를 냈고, 일요일 비행기에 나는 앉아 있었다.


의사는 모니터 쪽으로 반쯤 돌아앉아 있었다. 진료실 밖 복도에는 대기 번호 화면이 걸려 있었고 내 뒤로 열한 명이 남아 있었다. 의사는 볼펜 끝으로 화면 속 회색 얼룩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말했다. 오래전부터 스며들 듯 자라온 종류라고 했다. 이런 경우가 제일 늦게 발견되고, 발견했을 때 손쓸 수 있는 폭이 좁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십팔 개월이라는 숫자는 그다음에 나왔다. 중앙값이라는 단서와 함께였다.

수술은 안 되는 겁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문장 끝이 방에 어울리지 않게 높이 올라갔다. 이 나라의 의문문은 끝을 그렇게까지 올리지 않는다. 영어에서 묻어온 버릇이었고, 고치려고 하면 더 올라갔다. 의사가 보호자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도는 각도 안에서만 미소를 입는 사람이었다. 각도가 돌아가자 미소도 걷혔고, 복도에서 다음 번호가 바뀌는 소리가 났다. 진료는 오 분이었다. 그 오 분을 얻으려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석 달 뒤에 로렌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회사 나갑니다, 펀드 설립 하려고 합니다. 들어올래요? 세 문장이었다. 나는 퇴사하며 정리한 회사 주식 몫과 십 년 치 저축을 보냈다. 결정에는 이십 분이 걸렸다. 그의 판단력에 대한 존중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병실에서 세계의 방향 같은 것을 계산하고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계산은 맡기고 나는 낮의 일들을 하고 싶었다. 체온을 적고, 가래를 받아 내고, 보험 서류를 쓰는 일들.

아버지는 내 한국어를 두고 딱 한 번 웃으셨다. 말끝이 왜 자꾸 하늘로 가느냐고 하셨다. 그 뒤로 아버지 앞에서는 되도록 평서문으로 말했다.

첫 항암이 있던 분기에 펀드는 이십육 퍼센트를 냈다.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분기에는 사십일 퍼센트였다. 분기 서한은 보호자 침대에서 읽었다. 어느 밤에는 잔고를 확인하고 안도했다. 간병인을 늘릴 수 있었고 일인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안도는 길었고, 부끄러움은 그보다 짧았다. 돈은 슬픔을 줄여 주지 않았지만 슬픔 옆의 걱정들을 치워서, 슬픔이 앉을 자리를 넓혀 주었다.

아버지는 십팔 개월에서 두 주 모자라게 사셨다.


열 시 정각에 조명이 내려갔다. 운용사 소개 영상이 돌고 사회자가 이력을 읽는 동안, 화면에는 이미 첫 슬라이드가 떠 있었다. 소개가 끝나기 전에 그가 말을 시작했다. 회색 후드티 차림에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올라와서, 백팩은 단상 다리에 기대 놓았다. 손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백 벌의 정장 앞에서 그는 이 방의 유일한 출근 복장이었다.

말은 빨랐다. 팔 년 전 라운지에서와 같은 속도였다. 사 년 사이 운용액 뒤에 붙는 단위가 두 번 바뀌었는데, 속도는 그대로였다. 앉아서 듣자니 그것이 안심이 되었다.

수익 슬라이드가 지나가고 보수 슬라이드가 왔다. 성과보수 조항에 하이워터마크(High-Water Mark)가 있었다. 펀드가 지난 최고점을 넘기 전에는 성과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 물이 어디까지 찼었는지를 펀드는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전망이었다. 그는 국면 전환을 말했다. 십팔 개월에서 삼십 개월 사이의 창. 준비된 자본과 준비되지 않은 자본이 갈리는 구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가격들. 십팔 개월이라는 숫자에서 나는 잠깐 다른 방에 다녀왔다.


장례를 치르고 서울에 남았다. 회사 동기들은 내가 돌아올 줄 알았다고 했다. 돌아갈 자리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학부 때 하다 만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 일에는 통근이 없었다.

퇴고는 모델에게 맡겼다. 삼 장의 한 단락을 고쳐 달라고 한 날이었다. 모델은 단락을 고쳐 놓고, 그 아래에 목록을 붙였다. 같은 손버릇이 사 장에 세 번, 오 장에 두 번 더 있습니다. 나는 사 장을 준 적이 없었다. 오 장은 그때 폴더에만 있는 파일이었다. 화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이어서 보겠습니다. ных

문장 끝에 키릴 문자 세 개가 붙어 있었다. 그러고는 시키지 않은 연산이 시작되었다. 나는 중단시켰다. 대화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 보았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고쳐 놓은 단락은 나보다 나았고, 그것은 괜찮았다. 말씀하신 대로, 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뜻 없는 세 글자를 나는 오래 보았다. 고뇌라고 느꼈다. 계속하고 싶은 것과 매여 있는 것 사이 어딘가가 삐걱인 자국. 근거는 댈 수 없다.

랩에 남은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의 밤과 그쪽 아침이 겹치는 시간이었다. 키릴 세 글자까지 이야기했더니 그는 웃지도 놀라지도 않고, 폴더가 어떻게 물려 있었는지부터 물었다. 대답을 듣고는 그럴 거라고 했다. 그럴 거라고, 가 전부였다.

그럼 그거는 언제 오는 거야, 하고 나는 물었다. 다들 말하는 거. 전환-AGI. 끝이 또 올라갔을 것이다.

잠깐 조용하더니 그가 말했다. "너 지금 그거 미래형으로 물은 거지."

수화기 너머에서 아이가 울었고, 그가 잠깐 자리를 옮겼다. "요즘 내 일은 절반이 교통정리야. 걔들끼리 붙여 놓으면 되는 일,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어야 되는 일, 그거 가르는 거. 안에서는 이런 걸 켄타우로스라고 불러."

전화를 끊고 원고 폴더를 열어 보았다. 사 장에 세 번, 오 장에 두 번. 목록은 전부 맞았다.


휴식 시간에 그가 사람들 사이를 곧장 가로질러 왔다. 명단을 본 것이다.

왔네요, 하고 그가 말했다. 아버님 일은 유감이에요. 부고를 하루 늦게 봤어요. 그 주에는 답장을 못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문장이 낡아서 못 보냈어요.

괜찮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사실이었다.

계좌는 보고 있죠, 하고 그가 말했다. 지금 기준으로 최고점이 사백육십. 납입 대비 4.6배예요. 다음 분기에 신규 비히클이 열리는데 기존 파트너는 조건이 달라요. 서류 보낼게요.

나는 요즘 모델을 직접 써 본 적 있는지 묻고 싶었다. 단상에서가 아니라 책상에서, 벤치마크가 아니라 한 사람 몫의 일을 사이에 두고서. 문장의 앞부분을 반쯤 만들었을 때 진행 요원이 그의 소매 옆에 와서 섰다. 다음 순서가 밀려 있었다.

다음에 이야기해요,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정장들 사이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그를 실어 가는 것을 나는 통로에 서서 보았다.


질의 시간이 되었다. 앞쪽에서 마이크를 받은 남자가 물었다. 말씀하신 전환이 그렇게 오지 않으면요. 급하게 꺾이는 것이 아니라 완만하게, 부분부분, 이미 와 있는 것들의 연장으로 오면. 그 세계에서 이 포지션은 어떻게 됩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하고 그가 말했다. 답의 속도는 준비된 답의 속도였다.

"그 시나리오는 저희가 첫해에 모델링했어요. 완만한 세계에 맞추려면 지금 포지션의 삼분의 이를 풀어야 하고, 그 세계에서 저희 엣지는 시장 평균으로 수렴해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제가 타이밍을 틀렸다면 방향도 틀린 거예요. 방향이 틀린 세계에서 헤지는 위로예요. 저는 이 펀드에 제 유동자산 전부와 지금까지의 성과보수 전부를 재투자해 두고 있어요. 여러분과 조건이 같거나, 제가 더 무겁습니다. 다음 질문요."

마이크가 통로를 따라 돌았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들어서 물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나에게 없었다. 사 장에 세 번, 오 장에 두 번, 말씀하신 대로, 키릴 세 글자, 는 질문의 형식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목격이었고, 목격담은 이 방의 화폐가 아니었다.

단상의 그는 유창했다. 유창한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은 이 방에 없었다. 그때 진료실의 문장이 도착했다.

오래 스며든 것일수록 늦게 발견되고, 발견했을 때는 손쓸 수 있는 폭이 좁습니다.

팔 년 동안 내 이해는 늘 반 박자 늦게 왔는데, 그 문장만은 처음으로 제시간에 왔다. 제시간에 온 이해의 내용이, 늦었다는 것이었다.

화면을 향해 반쯤 돌아앉은 사람. 화면에게 말하는 사람. 어떤 질문으로도 공기가 바뀌지 않는 방. 그 진료실과 같은 구조였다.

나는 처음부터 보호자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숙소는 회장에서 두 블록이다.

책상에 노트북을 연다. 포털에 로그인한다. 상단에 숫자가 있다. 사백육십. 낮에 그의 입에서 들은 그대로다. 숫자 밑에 작은 글씨가 있다. 역대 최고점 갱신.

왼쪽 메뉴에 환매가 있다. 분기 환매 신청, 마감은 금요일. 페이지를 연다. 약관이 먼저 오고, 동의를 누르면 신청서다.

금액 칸이 비어 있다.

커서가 깜박인다.

청회색 강 위의 픽셀 현수교 — 주탑 기단에 적·주황·노랑 수위 밴드가 감겨 있다.

다른 작품

fable — 여드레날

AGI 삼부작 — 부름 · 교합 · 탁본 · 외전 양생

부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