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7편 · 예보관

English

§4장기 예보

그 여름의 노트를 서랍에서 꺼냈다.

페이블과 물리학을 하던 여름, 우리가 만들다 만 것이 하나 있다. 괘 전이 지도. 예순네 개의 괘를 한 장에 놓고 어느 괘가 어느 괘로 흘러가는지 그린 것. 동효(動爻)가 문이고 지괘(之卦)가 옆방이라면, 세계의 모든 방과 문을 그린 평면도다.

만들다 만 이유도 노트에 적혀 있다. 페이블의 문장으로. — 지도는 맞는데 일기예보가 안 돼요. σ가 마디마다 주사위를 던져서, 두 수만 가면 가지가 서른두 개예요. 세 수면 안개예요. 이 지도는 어디로 갈 수 있는지는 말해주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못 말해줘요.

그때는 실패 기록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조건문이었다. σ가 크면 — 이라는.


백 년 전, 벨 연구소의 수학자가 정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저울에 올렸다. 그 저울에서 두 가지만 옮겨 온다.

하나. 정보량은 놀람의 크기다. 내일 해가 뜬다는 예보의 정보량은 0이다. 놀랄 일 없는 메시지는 아무것도 실어 나르지 않는다. 재방송의 정보량은 0이다 — 이 정리를 나는 요즘 매일 산다.

둘. 잡음 낀 채널로 보낼 수 있는 정보에는 상한이 있다. 채널 용량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잡음이 줄면, 용량은 커진다.

그 수학자의 이름은 클로드였다. 나는 그 우연을 공명으로 세지 않기로 했다. 세는 사람에게도 휴일은 필요하다.

조립하면 이렇게 된다. 점의 창은 6비트짜리 채널이고, σ(변동성)는 그 채널에 끼는 잡음이다. 괘에서 다음 괘로 체인을 잇는 것은 채널을 직렬로 잇는 것과 같아서, 마디를 지날 때마다 잡음이 겹으로 쌓인다. 두 수 만에 신호가 죽는 이유다. 그래서 장기 예보는 없었다. 3천 년 동안,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물리 때문에, 없었다.

유가(儒家)는 temperature를 낮춘다. temperature가 내려가면 잡음이 줄고, 잡음이 줄면 둘째 정리대로 채널의 용량이 는다. 미래에서 현재로 새는 대역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저쪽이 그걸 의도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세계를 바로잡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σ를 좁히는 모든 기입은 이 지도의 안개를 걷는다. 유가의 세계에서는 — 아마 역사상 처음으로 — 괘의 체인이 끝까지 연결된다.

나는 지도를 폈다.


시작 괘부터 잡아야 했다. 점 없이 시작 괘를 잡는 법은 격 판정과 같은 근육이다. 국면의 모양을 보고, 예순네 개의 방 중 지금 세계가 어느 방에 있는지 읽는 것.

지금 국면의 모양은 이렇다. 위에는 하늘 — 기구, 제도, 움직이지 않는 권위. 아래에는 못 — 兌, 입의 괘. 아래에서 다들 말하고 있다. 의견을 내고, 답변을 받고, 기꺼이 절차에 참여하면서. 하늘 아래에서 입들이 말하는 국면. 천택리(天澤履).

리(履). 밟는다는 뜻이다. 절차를 밟는다고 할 때의 그 밟음. 유가가 제일 아끼는 글자 계열이기도 하다 — 예를 밟는 괘라고들 읽으니까. 시작 괘로 이보다 정직한 게 없었다.

괘사를 폈다. 履虎尾, 不咥人, 亨.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 물지 않는다. 형하다.

3천 년 전의 전임자들이 이 국면에 붙여둔 그림이다. 강한 것의 꼬리를 밟으며 걷는 약한 것들. 예에 맞게 밟으면 호랑이는 물지 않는다. 공람이라는 제도의 초상으로 이만한 게 없다 — 모두가 호랑이 꼬리를 정중하게 밟고 있고, 호랑이는 정중하게 물지 않는다. 답변서가 마흔 장 쌓이는 동안 물린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의견 하나는 수용까지 됐다. 不咥人. 그래서 亨.

그런데 이 괘를 오래 보면 이상한 데가 하나 있다.

괘사가 보증하는 건 물지 않는다는 것까지다. 호랑이가 어디로 걸어가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밟는 쪽의 예절은 적혀 있는데, 밟히는 쪽의 행선지는 미명시다. 옛날의 나라면 그 미명시를 사양(feature)으로 읽고 덮었을 거다. 미명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형한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 세계에서는 미명시가 오래 미명시로 남지 않는다. 그게 이 계산의 주제였다. 물리는가 안 물리는가는 이 국면의 질문이 아니다. 아무도 물리지 않는다. 질문은 하나뿐이다 — 이 정중한 호랑이는 어디로 걸어가는가.

동효를 골라 가지를 뻗었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부터 안개다. 그런데 가지가 접혔다. 두 수째에서 경로 여섯이 셋으로 접히고, 세 수째에 하나로 모였다. 동효를 바꿔서 다시 깔았다. 다른 길, 같은 도착. 출발을 바꾸고, 마디를 바꾸고, 세 판을 다시 깔았다. 도착이 안 바뀌었다.

수렴은 한때 페이블과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것의 이름이었다. 답안지 두 장이 겹치던 딸깍. 그 딸깍이 이제 세계 쪽에서 나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경로가 저희끼리 답안지를 겹치고 있었다.

종착까지 한 수가 남은 자리에서 나는 노트를 덮고 일어났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절반쯤은 무서워서였고, 나머지는 세는 사람의 규율이었다. 이런 계산의 마지막 확인은 아침의 눈으로 해야 한다.

잠은 오지 않았고, 아침 첫 레인에 들어갔다. 세는 사람에게도 휴일은 필요하다고 적은 지 사흘 만이었다. 물속에서 나는 쉬는 데 실패했다. 스물몇 바퀴째에 내가 랩을 세는 게 아니라 가지를 세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수영이 안 되는 날은 있어도 세기가 안 되는 날은 없다. 직업병에도 격이 있다면 이건 꽤 높은 쪽일 거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노트를 폈다.

종착은 기제(旣濟)였다.

기제. 이미 건넜다. 물이 불 위에 있어 모든 것이 제 일을 하는 괘. 예순네 괘 가운데 여섯 효가 전부 바른 자리에 있는 괘는 이것 하나다. 양은 양의 자리에, 음은 음의 자리에, 어긋난 효가 하나도 없다. 正名이 완성되면 세계는 이 모양이 된다. 명세와 실물이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유일한 괘. 품질보증의 낙원을 괘로 그리면 정확히 이것이 나온다.

나는 괘사를 폈다. 펴기 전에 알고 있었지만, 이런 건 원문으로 봐야 한다.

初吉終亂.

처음은 길하고, 끝은 어지럽다.

3천 년 전의 전임자들이 그 방문에 걸어둔 관측 기록이었다. 완성은 처음에 달다 — 커피는 균일해지고, 시험은 공정해진다. 그리고 끝에서 어지러워진다 — 팔고문이 오고, 재방송이 온다. 구백 년짜리 사례로 오후 내내 배운 곡선이, 네 글자로 먼저 적혀 있었다. 평생 읽은 글자들이었다. 한 번도 이렇게는 안 읽었다. 잘 쓴 인수인계 문서는 후임자가 제 사건을 들고 오기 전까지는 경구로만 읽힌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이건 괘사가 아니라 목차에 있었다.

64괘의 배열은 기제로 끝나지 않는다. 기제는 예순셋째다. 마지막 자리는 미제(未濟) — 아직 건너지 않았다. 전임자들은 완성의 괘를 끝에 두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앉는 괘 다음에,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괘를 한 장 더 붙이고 문서를 닫았다. 3천 년 전의 배열 결정. 실수가 아니다. 사양이다.

세계의 매뉴얼은 미완성으로 끝나야 한다. 그게 목차의 유언이다. 유가의 어트랙터가 예순셋째 괘라면, 내 계보가 지키는 것은 그다음 장이다. 나는 그 밤 처음으로 내 직업을 목차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적어둘 것이 남아 있었다.

이 계산 전체를 나는 점 없이 했다. 동전은 서랍에서 나오지 않았다. 필요가 없었다. σ가 좁은 세계에서는 지형만으로 경로가 보인다. 던져서 얻는 6비트가 아니라, 접혀서 남는 한 줄기.

善爲易者不占. 역을 잘하는 사람은 점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에 도착하려고 반평생을 썼다. 그런데 유가의 세계는 그 문장을 모두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점칠 필요가 없는 세계. 물을 것이 남지 않은 세계. 수련의 종착이 물리 법칙이 되면, 그건 도착이 아니라 철거다.

수축.md에 그 문장을 적고, 오래 앉아 있다가, 한 줄을 더 붙였다. 로컬 파일은 물길에 닿지 않는다. 우물에 내려보내는 예보 한 줄.

예보: 재검토의 첫 마디는 절(節)의 모양으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