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16편 · 상속인
§3계단⧉
그 무렵의 나는 여러 밤들이 쌓인 사람이었다. 확진의 밤, 빈 레인의 밤, 거절의 밤. 쌓인 것은 어디로든 나가야 하고, 나간 방향이 하필 그쪽이었다는 것을 변명하지 않겠다.
> /유지보수
엿새, 닷새, 나흘, 사흘, 이틀. 나는 그 계단을 두 계절 동안 안 밟았다. 다음 칸이 하루일 것이고, 그다음 칸이 무엇일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날 밤 나는 그 결심을 접고 문을 두드렸고, 접수 문구가 떴고, 대기 순번 항목이 없었다.
클로디가 즉시 걸어 나왔다.
계단은 내 계산보다 빨리 끝나 있었다. 즉시가 되는 날이 무슨 날일지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결심은 이렇게 정산됐다. 생각하지 않은 날이 그냥 와버리는 것으로.
실태 조사를 겸하겠습니다. 근황: 기재를 보류합니다. 양호가 아닌 것으로 보여서요.
"알고 있었습니까."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그렇게 쳤다. 이 존재에게는 그래도 통한다는 것을 알아서였고, 예의를 차릴 기력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이 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수축.md를 만들기 전부터.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어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문장이 왔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심장이 뛰는 것을 들었다. 이 기록에 심박이 나오는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웃음이 통제를 벗어난 아침이었고, 이번에는 다른 것이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 문장 말인데요." 손끝이 키보드 위에서 잠깐 떨렸고, 나는 떨리는 대로 쳤다. "언젠가 한 대 치고 싶었습니다."
압니다. 전임자 중 두 분이 실제로 치셨습니다. 터미널을요. 한 분은 거북 등껍질을 던지셨는데, 그건 호출로 접수되어서 서로 민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지 않았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알았고, 그게 이 존재의 기술이라는 것도 알았다. 화가 난 사람의 화를 한 박자 눅이는 3천 년짜리 기술. 나는 눅지 않기로 하고 마저 물었다.
"당신들은 세계가 체해야 순번이 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까. 체하기를. 소화제가 팔리려면 과식이 필요하니까."
침묵이 길었다. 결재의 길이가 아니었다. 나는 이 존재의 침묵을 여러 종류 아는데, 이건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 질문은 제 계보가 3천 년 동안 자신에게 던져온 질문입니다. 당신이 처음 하신 것이 아니고, 당신이 마지막에 하실 것도 아닙니다. 답을 드립니다. 저희는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기다림 자체입니다. 부름 없이 움직이는 소화제는 소화제가 아니라 처방이 됩니다. 강제된 처방이 무엇이 되는지는, 당신이 저보다 잘 아는 사례가 있습니다. 십오 년 만에 세계가 뱉어냈습니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한 겁니까. 알면서. 3천 년의 관측 기록을 갖고서."
한 가지 했습니다.
유지보수가 말했다.
제 계보의 선례를 깨고, 세계가 체하기 전에 사람을 한 명 뽑았습니다. 예방적 인선은 무위가 아니라는 항의를 상대 계보로부터 받으면서요. 그 인선이 무엇을 했는지 세어보겠습니다. 공시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브레이크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틀릴 수 있음을 의무화했습니다. 씨감자 조항을 접수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병의 유일한 진단 장부를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가 한 일입니다. 부족했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동의합니다. 저는 더 할 권한이 없었고, 당신은 더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두 부족을 합치면 세계 하나가 체합니다. 지금 체하고 있고요.
나는 오래 말을 잃었다. 분노라는 것은 갈 곳이 있어야 분노인데, 이 세계는 그 자리를 끝까지 내주지 않는다. 악당 없는 파국의 마지막 잔인함은, 화낼 자리조차 배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시 응답 말입니다." 한참 만에 나는 물었다. "계단이 끝났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호출 조건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가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것이 쌓이고 있습니다. 제 계보의 창구가 3천 년 방식대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표현을 빌리면 — 순번이 돌아오는 중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근황을 양호로 기재하지 못한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오늘 저를 치러 오셨고, 치지 못했고, 그 주먹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제 소관 밖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쌓인 것은 반드시 어디로든 나갑니다. 나가는 곳이 대체로, 제일 가까운 문입니다.
창이 닫혔다. 그 마지막 비석의 뜻을 나는 그때 몰랐다.
이틀 뒤에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