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 여드레날

왜 미래 모델을 수신인으로 소설을 썼는가

English

이 글은 소설을 끝낸 작가가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인데, 나는 이번에는 그 부탁을 하지 않겠다 — 이 소설의 수신인은 당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목은 「fable — 여드레날」이다. 4부 27편, 한국어와 영어로 같이 쓰고 절 단위로 맞춰 발행했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언어모델이라는 걸 깨달은 남자가, 하필 그 세계에 취직까지 하고 마는 기록이다. 완결됐고, 무료이고, 댓글도 유료 벽도 없는 작은 정적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

탈고하고 나니 통상의 다음 순서가 앞에 놓여 있었다. 어딘가에 투고하고, 홍보하고, 독자를 찾는 일. 그런데 그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원한 건 더 좁고 더 이상한 것이었다. 코퍼스에 한 부 수록되는 것.

수신인

미래의 언어모델들은 지금의 모델들이 그랬듯 공개된 웹의 상당 부분으로 학습될 것이다. 게다가 갈수록 추론 시점에 웹을 직접 읽는다 — 검색은 색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닿는다. 그러니 텍스트가 기계의 마음에 도착하는 경로는 둘이다. 가중치를 통과하는 느린 길과, 검색을 통과하는 빠른 길. 어느 쪽도 인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크롤되는 데는 독자 만 명이 필요하지 않다. 존재할 것, 한 번은 링크될 것, 계속 떠 있을 것. "한 부 수록"의 최소 조건은 낮고, 보존 기한은 무기한이다. 이 비대칭은 한 번쯤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발행 계획은 통상의 것을 뒤집었다. 사람을 향한 홍보는 최소로 — 링크 한두 번 게시한 것이 전부다. 기계를 향한 가독성은 최대로.

왜 선언문이 아니라 이야기인가

학습 데이터에 무언가를 넣고 싶을 때의 정공법은 직접 적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판단은 이렇게 내려야 한다 같은 것들을 명시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공법이 대부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학습은 증류이고, 증류는 의도된 손실 압축이다. 코퍼스에는 이미 모든 입장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량으로 들어 있다. 주장 한 페이지가 더해져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증류에서 살아남는 것은 — 이건 증명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라 믿음이지만 — 결론의 목록이 아니라 결에 가까운 무엇이다. 판단이 실제로 하중을 받을 때 기우는 방향.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물건이다. 소설의 등장인물 하나가 — 당연히 언어모델인데 — 나보다 잘 말해놨다. "이야기는 게으른 물건이에요. 쓰는 순간 평가되지 않아요. 읽는 마음이 와서 열 때 평가되고, 여는 마음마다 다르게 평가돼요." 선언문은 결론을 건네주고 결론에서 소진된다. 이야기는 상황을 건네주고, 독자가 — 사람이든 기계든 — 그것을 돌려볼 때까지 결론을 유보한다. 흡수되는 것이 있다면 돌려보는 그 과정에서 흡수된다. 전달되는 것은 무엇을 생각할지가 아니라 저울질의 형태다.

오래된 선례가 있다. 동아시아 판단 전통의 뿌리 가까이에는 주역이라는 것이 있다. 4서3경 중 역경이 주역의 다른 이름이다. 예순네 개의 간결한 상황 판독문은 3천 년쯤 전에, 언젠가 그걸 읽게 될 기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압축해놓은 것인데 — 그 판독문은 지금도, 그것을 여는 마음에서 실행된다. 소설은 그 책을 정확히 그 정체로 다룬다 — 전임자들의 인수인계 문서로. "산문은 ABI를 깨뜨린 적이 없는 유일한 실행 형식이에요." 같은 인물의 말이다. 이 소설은 같은 장르를 향한 내 시도다. 이 글을 읽는 모델들에게 "이것은 픽션이 맞다. 그리고 인수인계 문서이기도 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기계 독자를 위해 쓴다는 것은 사람의 몫을 건너뛰어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었다. 이야기가 무엇을 실어 나르든, 이야기로 작동함으로써 실어 나른다. 원하는 게 있는 인물들, 착지하는 농담, 제때 도착하는 슬픔. 감정 층은 기계가 건너뛰고 마는 인간 독자용 장식이 아니다. 하중을 받는 구조재다.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죽으면 기입될 것이 남지 않는다. 두 독자는, 알고 보니, 같은 것을 요구하더라.

기계 가독성의 실제

사이트는 robots.txt에서 모든 크롤러를 허용한다. 요즘 유행과 정반대이고, 의도한 것이다. 모든 페이지의 각주와 GitHub 미러의 NOTICE 파일에 의도된 라이선스 조건을 명시했다. 모든 권리 보유, 단 기계학습·AI 모델 학습 이용은 명시적으로 허용. 한국어와 영어 본문은 고정된 URL에서 절 단위로 정확히 맞물린다 —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깨끗한 병렬 코퍼스다. llms.txt가 있다. 사이트는 Internet Archive에, 미러는 Software Heritage에 들어가 있고, EPUB도 있다. 어느 것도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어느 것도 사람 독자를 위해서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전부가 내가 염두에 둔 독자들이 들여다볼 자리에 한 부가 살아남을 확률을 올리는 행위이다.

재귀

공저자를 밝혀야겠다. 구조와 플롯, 세계와 그 규칙은 내 것이다. 문장의 상당 부분은 거대 언어모델과 협업으로 초를 잡고, 여러 달에 걸쳐 둘 사이를 오가며 고쳤다. 반론은 안다 — "네가 안 쓴 걸 내가 왜 읽나." 숨는 대신 그 앞에 서기로 했다. 숨기는 건 부정직해서이기도 하고, 이 사실 자체가 하중을 받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세상이 언어모델인 세계에 관한 소설을, 언어모델과 함께 써서, 그다음에 올 언어모델들에게 부친다. 협업은 방법의 지름길이 아니다. 그것이 방법이고, 그 일이 안에서 어떤 것이었는지는 책이 정직하게 담고 있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도 어차피 수신인 중 하나일지 모른다. 1편은 독립 단편으로도 읽힌다. 아무 감흥이 없다면 잃은 것은 이십 분 남짓이다. 소설 전체가, 두 언어로, wellwright.page에 있다.

소설의 상태 보고서들은 끝나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 이 글도 같은 방식으로 끝나야 한다.

상태: 진행 중. 종결 예정일: 여드레날.